20대 대선이 남긴 과제 “국민통합·화합의 정치”

이윤정
2022년 03월 13일 오후 2:23 업데이트: 2022년 03월 13일 오후 2:23

역대 최소 표차로 당락 갈려…“사실상 나라 두 동강”
비호감 대선·사라진 배우자·0선 대통령…새로 쓴 선거사
박명호 교수 “정치개혁 실종…독점·배제의 정치 경계해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남긴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민통합과 화합의 정치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로 3월 10일 열린 ‘20대 대통령 선거 평가와 과제’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박명호 교수는 이번 대선에 대해 “참 특이한 대선이었고 앞으로도 상당히 화제가 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0.7%로 당락 갈려…“나라 두 동강”

박 교수는 우선 역대 최소의 표차로 당락이 갈린 대선이었다는 점을 꼽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윤석열 당선인의 득표율은 48.56%(1639만4815표)로, 47.83%(1614만7738표)를 얻은 이재명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다. 두 사람의 표차는 0.73%p, 24만7077표에 불과하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지난 19대 대선까지 가장 적은 표차로 당락이 갈린 경우는 1997년 제15대 대선이었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 차이는 39만557표, 득표율 차는 1.53%p였다.

이를 두고 박 교수는 “‘진영 대결의 격화’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우리나라가 두 동강이 난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세대로도, 지역으로도, 남녀노소로도 확연하게 갈라져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며 “이는 앞으로 윤 당선인의 국정운영에 상당히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3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 발표가 화면에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대선은 ‘비호감 대선’으로도 평가된다. 박 교수는 “폭로와 녹취록의 선거였다”며 “대장동 녹취록부터 김건희 녹취록, 김혜경 녹취록, 김만배 녹취록에다 당선인 확정 이후에도 대장동 특검 실시 여부를 놓고 지금까지도 서로 고소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과거 대선에서도 상대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전은 있었지만 이번 대선에서 유독 심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인지 KBS·MBC·SBS 방송 3사가 이날 투표 종료와 함께 공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49.3%는 ‘대통령 후보로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투표했다’고 답했다. ‘만족스럽다’는 답변은 47.6%였다.

박 교수는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응답한 유권자가 거의 절반에 가깝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새로 쓴 선거사 기록

‘사라진 배우자’ 역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박 교수는 “두 후보자의 배우자가 모두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결국 서로 퉁치면서 선거일까지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지난 2월 15일 시작됐지만, 윤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와 이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 씨 모두 공개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각종 의혹으로 ‘배우자 리스크’의 당사자가 된 상황에서 결국 마지막 유세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투표도 남편과 따로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배우자 김혜경 씨(좌), 윤석열 당선인 배우자 김건희 씨(우) | 연합뉴스

박 교수는 윤석열 후보의 당선부터가 이례적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을 사퇴한 지 1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에 공식적으로 입문한 건 작년 6월 29일이므로 대통령이 되는 데 딱 8개월 걸렸다. 대단히 드문,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일”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윤 당선인은 여러모로 선거사에 새 기록을 썼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최초의 ‘0선’ 대통령이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최초다. 26년 검사 인생 외길을 걷다 처음으로 도전한 선출직 선거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 교수는 ‘여론조사의 홍수’도 언급했다. 그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출된 지난해 11월 5일부터 여론조사 공표 금지 직전인 지난 3월 2일까지 총 360개의 여론조사 있었다”며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 회사가 90개에 육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론조사기관들의 출구조사 결과가 다 틀렸다”며 “이런 면에서 여론조사가 정말 필요한가, 도움이 되는가, 사람들을 더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회의가 든다”고 했다. 아울러 “윤 후보와 이 후보의 지지율이 동률을 기록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며 이 또한 여론조사에서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보기 드문 사례로 짚었다.

이번 대선의 특징이자 과제로 권력 심판의 주기가 빨라졌다는 점도 꼽았다. 그는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럽다”고 전제한 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는 ‘10년 주기설’이 있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진보와 보수가 10년 단위로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봤는데 이번에 5년 만에 교체됐다. 시민들의 권력 심판 시기가 상당히 빨라졌다는 점은 여야를 불문하고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이걸 어떻게 잘 관리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 전시된 역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 | 연합뉴스

“정치개혁 실종…‘정치신인’이 오히려 강점될 수도”

박 교수는 이번 대선과 관련해 ‘정치 개혁의 실종’도 지적했다. 그는 “정치개혁은 야당의 무기인데 통합 정부, 정치 개혁, 연합 정치 같은 말이 국민의힘에서 끝까지 나오지 않았고 공약에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권교체론에만 기댄 게 아닌가”라며 “정권교체 위에다 정치 교체를 컨셉으로 잡았으면 훨씬 더 미래 비전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 게 정치의 힘”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에 따르면 정치개혁은 통상 외부 압력이 있거나 정치적 이해관계 또는 필요에 따라 이뤄진다. 지금까지는 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정치 개혁이 좀 어렵다고 봤지만, 세 번째 경우가 생길 수 있게 됐다. 그게 바로 ‘윤석열의 정치’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뭔가 구체적이지 않고 지금처럼 백지상태일 때, 특별히 고민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정치 개혁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윤 당선인이 잘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많다”면서 “(정치)신인이라는 것도 좋은 조건 중 하나인 것 같고 지금이 정치 개혁을 하기에 가장 쉬운 시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 부분에서 우리가 정치 발전을 이뤄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갈등, 대립, 교착 이런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며 윤 당선인을 향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덧붙여 선거 제도를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제도 개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지만 내각제처럼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총리”라며 “윤 당선인의 정치력과 정치개혁의 비전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걸 어떻게 구체화해 나갈 것이냐에 대한 시간표와 제도 설계 능력이 필요하다. 이게 안 되면 경제 사회적 갈등 해결도 쉽지 않다”고 조언했다.

“국민통합 필수…진보·보수 떠나 ‘성공한 정권’ 나와야”

박 교수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국민통합’을 당부했다. 특히 독점과 배제의 정치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51%가 윤석열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24만 표밖에 못 이겼기 때문에, 다시 말해 상대방도 1600만 표를 얻었기 때문에 그걸 충분히 대우해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1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임시국회 개회식에서 의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투표율과 상관없이 상대 후보보다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은 다수의 국민들이 배제되지 않게 하려면 다수결로 승자 독식하는 대선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독점의 정치, 배제의 정치로 인해 정치적 포용은 불가능했고 다수결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도 우리나라가 최악의 현실 형태를 보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사회적 갈등은 정치적으로 전혀 관리되지 못했다. 독점의 정치에서 대립과 교착의 의회 정치, 정당 집단주의, 무책임 정당제가 나온다.”

박 교수는 “잘못하면 우리 국회도 당장 교착 상태에 빠질 수 있고 대통령과 국회가 대립하거나 각자 제 갈 길을 가게 될 수도 있다. 국회에서, 민주당에서 협조를 안 해주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하다못해 부동산 대책을 하나 내놔도 법률을 재개정해야 하는 게 많다. 이게 쉽지 않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반쪽의 1600만 표를 얻은 당선자가 100%의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면서 “그게 바로 이번 대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중요한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어떻게 해나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고 현재 이니셔티브(주도권)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윤석열 당선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진보 보수를 떠나 이제는 성공한 정권이 나와야 한다”며 “정권교체는 권력을 되찾아오는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성공한 권력의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했다. 덧붙여 “윤석열 정권이 실패하게 되면 ‘보수의 궤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개인의 운을 넘어 공동체의 운으로까지 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래서 상당히 쉽지 않고, 어려운 그 칼날 위에 섰다”고 평가했다.

박명호 교수는 한국정당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안민정책포럼 회장과 거버넌스 분과위원장을 겸임하면서 선거·정당정치 전문학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