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조종사의 안타까운 순직…노후 구형 전투기 ‘안전성’ 수면 위로

이윤정
2022년 01월 18일 오후 10:05 업데이트: 2022년 01월 18일 오후 10:05

군 당국 “전투기 적정 보유 대수 430대”
국산 전투기 KF-21 2026년부터 도입…F-5E/F 순차 퇴역 예정

지난 1월 11일,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소속 심정민 소령이 F-5E 전투기 추락 사고로 순직했다.

“언제까지나 전투 조종사로 살고 싶다”던 28세의 청년 조종사는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아 탈출 기회를 놓친 것으로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기체 노후화에 따른 고장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구형 공군 전투기에 대한 안전성 문제도 다시 한번 제기됐다.

고(故) 심정민 소령이 조종하던 F-5E 전투기가 기령 30년을 훌쩍 넘겨 36년간 운용된 기종으로 알려지면서다. 해당 기종의 최대 운용 기한은 30년 정도이다.

현재 공군은 F-5 E/F형 전투기를 80대가량 운용 중이다. 모두 30~40년 이상 된 노후 기종이다. 고 심정민 소령은 자신의 나이보다도 오래된 전투기를 몰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밖에 1970년대 후반 도입한 F-4E도 현재까지 19기 운용 중이다.

사고 전투기 F-5 E/F는 1950년대 미국 노스롭사(현 노스롭그루먼사)가 구(舊)소련의 미그-21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했다.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65년, 한국 공군은 F-5A/B 100여 대를 도입하기 시작해 1974년 미군으로부터 베트남 공군이 사용하던 F-5E/F를 넘겨받았다. 1982년부터는 F-5E/F를 국내에서 조립·생산해 ‘제공호’라는 제식 명칭을 붙였다. F-5 기종은 냉전 시절 미국이 피스브릿지 사업으로 자유 우방국에 저가에 판매하거나 무상 공여한 기종이다.

전투기 설계 수명은 통상 30년으로 잡는다. 이에 따르면 원래는 퇴역해야 하는 F-4, F-5 전투기 100여 대를 아직도 우리 공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낡은 전투기 100여 대를 여전히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군 당국은 ‘전투기 적정 보유 대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추산한 한국 공군의 전투기 보유 적정 규모는 430여 대이다. 유사시 북한의 표적을 타격하도록 한미연합사령관이 정해둔 공군 전투기 출격 횟수가 있는데 이에 맞춘 전투기 대수가 430대라는 것이다.

KIDA는 전략적 타격 능력을 갖춘 하이(고성능)급 전투기(F-35A, F-15K) 120여 대, 다양한 작전 투입용 미디엄(중간)급 전투기(KF-16, F-16) 220여 대, 지상군을 지원하는 로(저성능)급 전투기(KF-5, F-5, FA-50) 90여 대를 갖춰야 유사시 효과적인 공중작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공군은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 중인 국산 전투기 KF-21 도입에 따라 순차적으로 F-5E를 퇴역시킬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KF-21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단계적으로 120대가 공군에 들어올 예정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9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 생산공장에서 열린 한국형 전투기 시제 1호기 출고식에 참석해 “2032년까지 국내 기술진 주도로 개발한 한국형 전투기(KF-X) 120대를 실전에 배치하겠다”며 이 전투기 명칭을 ‘KF-21 보라매’라고 공식화했다.

국산 기술로 제조하는 4.5세대급 전투기 KF-21 은 2026년 6월 개발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현재 구형 F-5 전투기를 퇴역시키지도 못하고 최대 10년가량 더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군은 평균 설계 수명을 넘어 운용 중인 F-5 전투기를 전투기 기골(뼈대) 보강 등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수명을 인위적으로 5년에서 최대 12년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전투기여서 비행 안정성이 떨어질뿐더러 수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단종된 부품이 많아 퇴역한 동종 전투기에서 부품을 빼서 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평균 설계 수명을 넘긴 F-4, F-5 전투기는 엔진 성능 저하 등으로 인하여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00년 이후 F-4, F-5 기종 가운데 15대가 추락하거나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17명의 조종사가 순직했다.

2010년 F-5 사고에서는 고도 600m 이상에서만 작동하는 구형 사출 좌석 때문에 조종사가 숨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공군은 F-5 비상 탈출 좌석을 고도와 속도 제로(0) 상태에서도 작동되는 신형 사출좌석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사출좌석(射出座席·Ejection Seat)은 항공기 사고 시 조종사를 비상 탈출시키기 위한 안전장치다.

F-5계열 전투기의 기종 노후화에 따른 유사 사고 재발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는 가운데 공군의 핵심전력인 전투기 노후화로 퇴역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신규 전력 확보 계획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6일,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배포한 자료에서 “육·해·공군이 보유한 핵심전력 중 상당수가 장비 노후로 도태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를 대체할 신규 전력은 전력화가 더디거나 완료되더라도 기존 운용 대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현재 공군의 전투기 보유 규모는 410여 대 수준이고 2024년 360여 대로 감소할 예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군이 노후화된 전투기를 과감하게 도태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속에서 유사 사고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