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때 도둑맞은 생일 케이크, 77년 만에 돌려받은 할머니

김정희
2022년 05월 6일 오전 10:15 업데이트: 2022년 05월 6일 오후 1:07

13살 때 잃어버린 생일 케이크를 70여 년 만에 돌려받은 이탈리아의 90세 여성 사연이 소개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한 이탈리아 소녀가 미군이 지나간 곳에서 생일 케이크를 도둑맞았다.

뒤늦게 소녀의 사연을 접한 미군은 77년 만에 케이크를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그의 생일을 축하해 줬다.  

1945년 4월 28일 미 육군 88보병사단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 비첸차에 진입하기 위해 인근 마을에서 나치 독일 수비군과 밤새 전투를 벌였다. 당시 12세였던 메리 미온은 퇴각하는 독일군을 피해 어머니와 함께 가족 농장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 

다음 날 전투가 미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비첸차와 인근 지역은 해방됐다.

그날은 마침 미온의 13번째 생일이었다.

미온과 어머니는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서둘러 집에 돌아가 생일 케이크를 구웠는데, 오븐에서 꺼내 열을 식히기 위해 창틀에 놔둔 케이크가 어느새 사라졌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미온은 2020년 이탈리아와 유럽 해방 75주년을 기념하는 추억 모임에서 ‘케이크 실종 사건’을 얘기하면서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지만, 곧바로 나보다 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케이크를 먹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괜찮아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미온은 밤새 전투에 임하면서 허기진 미군들이 케이크를 가져갔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탈리아와 유럽 해방 75주년 추억 모임에 참석한 미온(가운데) | 미 육군

그는 “어머니와 나는 전날 밤 후퇴하는 독일군이 우리 집을 향해 총을 마구 쏘아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무서웠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기억 때문에 괴롭다”라면서 “그 후 매년 생일이 되면 여전히 그 케이크를 먹고 싶지만 어쨌든 (미군이 독일군을 물리쳐 준 덕분에) 행복하다”라고 했다. 

그리고 미온은 90세 생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비첸차 살비 정원에서 열린 미 88보병사단 도시 진격 기념식에 초대받았다.

주이탈리아 미군은 이탈리아 군 관계자, 미국·이탈리아 참전 용사와 지역 주민 수백 명이 둘러싼 가운데 미온에게 생일 케이크를 건넸다. 

미군이 미온을 위해 준비한 90세 생일 케이크 | 미 육군

사람들이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 미온은 감격의 눈물을 훔쳤다.(영상 보기)

그는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나를 기억하고 직접 케이크까지 선물해 준 미군이 정말 고맙다”라면서 “내일 오는 가족과 함께 케이크를 먹으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이 멋진 날을 되새기겠다”라고 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주이탈리아 미군 사령관 매튜 곰략 대령은 “77년 전 전투에서 88보병사단은 최소 19명이 죽거나 다치고, 탱크도 몇 대 파괴되는 대가를 치렀다. 다음 날 다른 곳에서 도착한 91보병사단이 비첸차 시내를 행진하자 주민들은 빵과 와인으로 미군을 반겼다”라면서 “미군과 이탈리아 주민의 이런 우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