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명 정원 C-17 수송기에 600여명…긴박했던 카불 탈출

2021년 8월 18일
업데이트: 2021년 8월 18일

미군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이 놀라운 속도로 무너졌다. 인구 600만 대도시 카불의 국제공항은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15일 ‘아프간 반군’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대통령궁에서 “전쟁은 끝났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안전’을 이유로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탈출한 뒤 “혼란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1975년 베트남 사이공의 대사관 지붕을 통해 헬기로 탈출했던 치욕스러운 사건을 그대로 카불에서 재연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를 철통처럼 지지하던 미 주류매체들도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격렬한 비난으로 돌아섰다.

미국 대사관 직원들은 헬기로 카불 공항까지 이동했지만, 차량과 도보로 공항까지 향한 아프간 시민들은 활주로에까지 나와 이륙하려는 미군 C-17 수송기를 쫓아 달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미군은 혼란을 수습하려 하늘로 향해 총을 쏘기도 했다.

탈레반은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한 6일부터 열흘 만에 수도까지 진격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국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훈련시킨 30여만명의 아프간 정부군 다수는 싸우지 않고 물러났다. 탈레반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손쉽게 승리했다.

3만명 규모의 특수부대인 코만도가 그나마 항전했지만, 정부가 무기력하게 항복하면서 이들의 저항도 의미가 퇴색했다. 각지에서 맞서 싸우던 코만도 잔여 병력은 탈레반 포위망을 뚫고 북동부 판지시르로 이동해 결사 항전할 태세지만, 전망은 어둡다.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탑승하지 못한 아프간 시민 수백 명이 수송기를 따라 내달리고 있다. | AP/연합

미군은 총 7천여명의 병력을 투입했지만, 탈레반과 대항하는 것이 아닌 미국 요원들의 철수 지원이 목적이었다. 탈출을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카불 공항은 아수라장이 됐고 정원 134명인 미군 C-17 수송기에는 5배에 가까운 인원이 탑승했다. 탈출 당시 800명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추후 640명으로 확인됐다.

현장을 촬영한 영상에서는 상당한 고도까지 올라간 C-17 수송기 뒤편으로 검은 점 2개가 떨어지는 장면이 포착됐다. 랜딩기어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추락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미 공군은 17일 랜딩기어 부분에서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탈레반의 승리 요인으로는 군인들에게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부패하고 무능한 아프간 정부,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지급하고 극단적 사상을 주입하는 탈레반 무장 대원들의 높은 사기가 거론된다.

유엔(UN) 마약범죄사무국에 따르면 아프간은 한때 전 세계에 유통되는 아편의 87%를 공급할 정도의 마약 생산기지 노릇을 해왔다. 탈레반은 아편을 유통시켜 거둬들인 수익으로 무기를 구매하고 조직원들에게 정부군보다 높은 급여를 지급해왔다.

탈레반 대원들이 1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시장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 AFP/연합

젊은 남성들을 극단적 상황을 몰고 가 ‘혁명 전사’로 만드는 악습 ‘바차 바지’(Bacha bazi)도 빼놓을 수 없다.

‘소년과 놀다’(play boy)라는 뜻의 이 관습은 예쁘장한 소년들에게 여장을 시켜 소아성애자들이나 성인 남성들의 연회에서 춤을 추게 하는 행위다. 여흥이 끝나면 숙소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며 18세가 넘어 성인이 되어서야 포주들로부터 풀려난다.

이런 악습이 성행하게 된 것은 이슬람 국가인 아프간에서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춤을 추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데 기인한다. 여성 대신 노리개가 된 소년들은 대개 생계가 곤란해 포주들이 제시하는 금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이런 소년들은 아프간 사회에서 몸과 마음이 더러운 존재로 취급당하고, 소년들은 풀려난 뒤에도 가족과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한다. 이 중 일부는 극단적 조직에 가입해 이슬람 지하드에 참여함으로써 구원받기를 원하게 된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탈레반은 원래 ‘바차 바지’를 엄격하게 금했지만,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자살 공격을 시도하다 미수로 체포된 테러리스트들은 탈레반에게 끌려가 집단 강간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극단적 테러리스트를 양성하기 위해 자신들의 원칙마저 어기며 참혹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탈레반은 17일 전국에 ‘사면령’을 선포하고, 과거 잘못을 묻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일상에 복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BBC, CNN 등 외신은 도시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거리에는 조용한 공포감이 흐르고 있다고 전했다.

/하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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