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유신 50주년’ 토론회 개최…올바른 역사 평가·재조명 필요

이윤정
2022년 10월 20일 오후 4:11 업데이트: 2022년 10월 20일 오후 4:11

좌승희 “권위적의적 정치로 비판, 韓 근대화 완결”
이춘근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 ‘안보’ 목표로 성립”
김세중 “70년대 중화학공업 발전, 괄목할 성과”
제성호 “‘자주국방’ 모토로 방위산업 강국 토대 구축”

올해는 1972년 이른바 ‘10월 유신’ 선언을 바탕으로 한 ‘유신 체제’가 선포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특별 선언’을 발표해 국회를 해산한 후 정당·정치 활동 같은 헌법의 일부 기능을 정지시키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후 7년간 지속된 ‘유신(維新) 체제’는 행정·입법·사법의 3권이 대통령 1인에게로 집중된 권위주의 체제다. 정치학계에서는 ‘신(新)대통령제’의 대표 사례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제4공화국 헌법에 의거해 헌법 개정, 대통령 선출권 등을 가진 최고헌법기구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은 임기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고,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 등을 가졌다.

1972~1979년 유신 체제는 민주주의 발전 면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멈춘 시절로 평가받지만, 경제 발전 면에서는 오늘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 발전의 ‘결정적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10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주관으로 ‘유신 50주년’ 1차 세미나가 개최됐다. 박정희 정부의 10월 유신을 실증적·거시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올바른 역사 평가의 기회로 삼는다는 게 토론회의 취지다.

경제학자 좌승희 박정희학술원 원장(전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박정희 시대는 대한민국 국가건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며 “유신 체제는 정치적으로 서구식 민주주의에서 일탈한 권위주의적 정치 시대였다고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근대화, 산업혁명을 완결한 중요한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좌 원장은 “전 세계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인플레 속 경제침체(스태그플레이션)를 겪을 때 한국만이 최고의 균형발전을 이뤘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신의 성과로 △새마을운동 성공 △중화학공업화 성공 △수출의 획기적 증대 △대기업의 성장 △도농 균형으로 당대 최고의 동반균형발전 △과학기술의 신장 △방위산업 확충 △국방력의 강화로 안보 불안 해소 등을 꼽았다.

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 임호/에포크타임스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전 자유기업원 부원장)는 ‘국제정치 환경과 10월 유신’ 발표에서 “1972년 10월 17일~1979년 10월 26일까지 약 7년 정도 지속된 유신 체제는 한국의 지식인들과 국민들이 가장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기”라며 유신체제의 원인을 당시 국제환경에서 찾았다. 그는 “10월 유신을 박정희의 개인적인 권력욕이라고 폄훼하는 의견이 한국 사회의 일반이론처럼 되어 있지만, 10월 유신은 당시의 대한민국이 처했던 국제정치적 여건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이 집권했던 기간은 한국의 현대사가 당면했던 어떤 시대보다 더욱 충격적인 국제정치적 변동이 끊임없이 발생했던 시기였다”면서 “10월 유신의 직접적 목표는 경제보다는 안보에 관한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닉슨 독트린’을 유신의 결정적 계기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닉슨 대통령의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인들이 맡아야 한다’는 노골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는 한반도 안전 보장 체제의 본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안보 강화를 위해 ‘자주국방’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05년 11월 30일 여론 조사에서 한국 국민들의 72.4%가 ‘박정희의 10월 유신이 국가 안보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며 “유신 시대의 국가안보정치 강화는 대한민국이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은 역사의 결과로도 증명된다”고 강조했다.

김세중 연세대 명예교수 | 임호/에포크타임스

김세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박정희 시대 권위주의 정치와 경제발전’ 주제 발표에서 “박정희 시대는 일관되게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적 특징을 보이며 전개된다”며 “1972년 10월 유신체제 도입은 정치적으로는 3권 위에 군림한다는 의미의 영도적 지도자로 부상한 박정희의 장기 집권을 보장하는 체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기록적 경제발전을 추동한 결여될 수 없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어 “박정희 시대에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발전이 달성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60년대에도 눈부신 성과가 있었지만, 좀 더 괄목할 부분은 70년대에 추진된 중화학 공업 발전에 있다”고 평했다.

김 교수는 “70년대 초는 경제적, 안보적 차원에서 발생한 미증유의 국가적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중화학 공업이 절박한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는 시기이기도 하다”면서 “중화학 공업정책은 국가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전략적 부분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이 요청되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대규모 산업 정책이었고, 유신체제가 탄생시킨 강한 발전국가의 추진력은 이의 달성을 보장한 기본요인의 하나였다”라고 주장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 | 임호/에포크타임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주국방과 남북관계’ 발표에서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닉슨 독트린과 데탕트의 물결에 직면해 자주국방을 모토로 안보의 기틀을 다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제 교수는 “박 대통령은 전력증강 8개년 계획(율곡사업)을 수립해 국군 장비의 현대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방위산업의 육성을 적극 추진했다”며 “군 편제 개편 및 정예화, 동원체제 정비 등을 통해 총력전 태세 확보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1월 19일 국방부를 순시한 자리에서 처음으로 방위산업 추진 의지와 구상을 밝혔다. 이듬해 국방부에 ‘방위산업국’을 설치하고 ‘방위산업육성 10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도 대표적 성과다.

제 교수는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방위사업 추진 의지와 남다른 리더십, 정책적·법제도적 뒷받침 등으로 방위산업의 토대가 확고히 구축될 수 있었다”며 “이로 인해 오늘날 대한민국이 전차, 자주포, 미사일, 함정, 잠수함 등을 만드는 방위산업 강국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좌승희 박정희학술원 원장을 비롯해 시민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 임호/에포크타임스

이날 토론에서 좌장을 맡은 이강호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적 업적을 부인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 정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경우가 많고 10월 유신이 대표적 이유로 내세워지곤 한다”며 “유신 당시 상시적 비상에 긴급한 비상이 더해진 상황이었고, 경제 건설의 계속이라는 과제도 절박했다”고 했다. 이어 “유신은 그런 가운데서 이뤄진 결단”이었다”며 “이 같은 정치를 그저 ‘반민주독재’라고 하는 것은 합당한 평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강호 연구위원은 전향한 좌파 운동권 출신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한 ‘박정희가 옳았다’를 집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