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에 즈음하여 중국과 세계를 생각하다

공산주의 유령에 저항하는 것만이 전세계에 희망
The Epoch Times
2019년 9월 30일 업데이트: 2019년 10월 5일

1949년 10월 1일, 중국 공산당이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에 폭정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5천년 문명에도 유례없는 재앙이 닥쳤다.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70년을 맞이한 중국은 두 가지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나는 베이징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이다. 공산정권이 권력과 군사력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공허한 힘의 과시 이면에서는 불안감이 배어난다. 수도 베이징과 주변 지역에는 전시에 준하는 엄격한 통제조치가 이뤄졌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의 금융허브 홍콩의 거리였다. 공산정권에 넘어간 22년 동안 홍콩의 자유와 자치권은 꾸준히 뒷걸음질 쳐왔다. 하지만, 자유와 삶의 방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홍콩시민들은 이러한 침해에 분연히 일어나 맞섰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은 홍콩시민을 공산정권이 통치하는 중국 법정에 세우겠다는 취지다. 홍콩시민들이 보여준 메시지는 명확했다.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하고 중국 공산당을 거부한다.”

홍콩시민의 목소리는 그들만 대변한 것이 아니다. 그 용기와 연대는 공산당의 실정에 시달리는 모든 중국인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됐다. 홍콩시민들은 중국 공산정권이 ‘국경절’이라고 이름 붙인 10월 1일을 “70년간의 국가적 비극을 되새겨야 할 날”로 부르고 있다.

홍콩 민주화 시위대가 5대 요구사항을 상징하며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이고 있다. 2019.9.21ㅣPhilip Fong/AFP/Getty Images

공산주의, 오늘날 국제사회 위협하는 공동의 적

중국 공산당은 중국인과 홍콩인 자유만 억압한 것이 아니다. 전 인류의 공동 가치를 훼손시켜 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 총회 연설하면서 ‘사회주의 유령’에 대해 경고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는 정의(justice)가 중요하지 않다. 평등을, 가난구제를 중시하지 않는다. 국가의 이익도 중시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지배계급을 위한 권력이다.”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낭만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중국 공산당은 공산주의 기치 아래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의 초기단계라는 게 그들의 견해다.

이를 위해 중국 공산당은 막대한 금액을 쏟아부어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어 교육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공산주의 이념 선전기지인 ‘공자학원’, 인재영입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자유세계 지적재산 탈취작전인 ‘천인계획’,기반시설 투자를 빌미로 상대국의 인프라를 약탈하는 ‘일대일로’가 그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은 국가 간 갈등이나 문명의 충돌이 아니다. 자유 대 폭정, 선과 악의 문제다.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전 인류와 악의 세력 간의 대결로서 민족과 인종을 넘어서는 차원의 일이다. 공산주의 유령이 유럽에 출현한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둘 사이의 투쟁이 펼쳐져 왔다.

미국을 시작으로 자유세계 정부들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유화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이익에 현혹된 유화정책 지지자들은 공산주의 초강대국 중국의 확장세에 힘을 보태며 민주주의 국가들의 국익을 희생시켰다.

공산주의는 이념이나 사회운동이 아니라 인류를 파멸하려는 악령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들어맞은 중국 공산당의 아홉 수 징크스

중국에서는 아홉 수를 불길하게 여긴다. 불길한 아홉 수는 중국 공산당 통치 70년 동안 유효했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1949년 첫해 중국인들이 여러 차례 잔혹한 정치 캠페인에 시달렸다. 시골에서는 지주와 부농으로 간주되는 사람이 학살됐고 도시지역에서는 사업체 운영자나 서구식 자유교육을 받은 사람이 표적이 됐다. 수백만 명이 고문받고 처형당했다. 유산계급에 대한 숙청이자 엘리트에 대한 제거였다.

1959년에는 중국 공산당의 집단농장 정책이 기근으로 막을 내렸다. 중국 공산당은 오히려 풍년이라며 동맹국에 식량수출까지 진행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수천만 명이 아사했다.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9년 헤이룽강(아무르강)을 사이에 두고 군사교전들이 벌어질 정도로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멀어졌다. 이 교전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79년 중국 공산당은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을 침공했다. 베트남이 공산주의 진영에 속했던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정권을 전복시켰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치욕적 패배로 끝났다.

1989년 중국 공산당 강경파는 자오쯔양 당시 당 총서기를 축출하고 천안문 광장에 모인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총격을 명령했다. 베이징 한복판에서 나라를 걱정하던 중국 젊은이 수천 명을 살해했다.

1999년 천안먼 사태 이후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집권한 당시 당 총서기 장쩌민은 중국 내에서 수천만 명이 수련하던 심신수련법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박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09년 신정 서북부 지역에서 위구르 무슬림의 폭동이 일어났다. 수년간 이어진 중국 공산당의 탄압정책에 대한 반발이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 사태에 뒤이은 중국 공산당의 학살로 수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도 아홉수 법칙의 예외가 아니다. 홍콩시민들은 넉 달째 민주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민심을 살피는 대신 강경진압과 은폐를 반복하며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복경찰이 천안먼 광장에서 파룬궁에 대한 탄압 중단을 청원한 인물을 체포하고 있다. 2001.10.1. 베이징.ㅣChien-min Chung/AP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중국 사회는 윤리적 제약을 버리고 도덕적으로 나락에 빠졌다. 공무원과 일반 시민 모두 이익과 지위만을 추구하게 됐다. 수 세대에 걸쳐 중국 공산당 치하에서 생겨난 왜곡되고 극단적인 문화에 젖어 지낸 많은 중국인은 당의 사악한 정책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팔았다.

파룬궁 탄압은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20년 전 장쩌민 파벌은 파룬궁 탄압을 진행하면서 탄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관리는 승진·포상하고 반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한 이들은 밀어냈다.

경찰과 판사는 법률을 무시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하고 유죄선고를 내렸다. 의사들은 거액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의료인으로서의 선서를 어기고 수술대에서 파룬궁 수련인을 산 채로 장기적출해 살해했다.

이러한 상황이 20년간 이어지면서 중국은 이익을 위해 양심을 버리고 끔찍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구성원들이 중심이 된 괴기한 사회로 변질됐다.

대외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외국 정부와 기업에 경제적·외교적 이익을 대가로 잔학행위에 침묵하도록 종용했다.

그러나 세계는 중국 공산당의 참된 모습에 눈뜨고 있다. 2004년 본지에서 운영하는 공산당 탈퇴 웹사이트에는 지금까지 3억 4천만명이 등록됐다. 본토에서 최소한 수백만 명이 공산당 탈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집계된다. 공산당에 대한 거부의사를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 선봉대 등 3대 조직 탈퇴로 밝히고 있다.

냉전 말기 동독 전역을 휩쓸며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던 동독인의 시위가 발생하고 30년이 지난 올해, 홍콩 시위는 중국 공산당의 폭정에 대한 저항의 불을 지피는 불씨가 됐다.

‘국가적 비극 70년을 기념하는 날’로서 10월 1일은 중국인과 전 세계가 희생된 사람들의 양심을 기억하고, 보편적 가치를 다시 중시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싹틔우는 날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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