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발효 RCEP, ‘손님’ 중국은 왜 주도국이 됐나

이대우
2022년 1월 10일
업데이트: 2022년 1월 11일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이 2022년 1월 1일부터 발효됐다. 당초 중국은 이번 협정에 초대받은 입장이지만, 협상을 주도해 사실상 주도국으로 불리고 있다.

RCEP는 말레이지아·필리핀 등 아세안(ASEAN) 10개국이 제안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중국,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 5개국을 초청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2020년 11월 15일 동아시아 협력 정상회담 기간에 공식 서명됐다.

RCEP는 참여국 15개국이 전 세계 인구의 29.7%, 세계 경제 규모의 28.9%인 26조 달러를 차지해 세계 최대의 역내 자유무역협정으로 꼽히고 있다.

중국은 RCEP 참여국 중 경제 규모가 가장 큰 경제체이며, 가장 적극적으로 RCEP를 추진한 국가이다. 적잖은 전문가들이 RCEP를 중국이 주도했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RCEP 협정 체결을 “중국의 승리”로 묘사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미끼로 미국의 전통적 동맹인 한국·호주·일본을 참여시켰기 때문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 역시 2020년 11월 RECP 공식 서명 직후 “승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손님이었던 중국이 RCEP를 주도하며 사실상 주최자로 나선 것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경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중국은 이미 일대일로로 경제권 구상을 추진해왔지만, 참여국에 빚더미를 안기는 사업으로 악평이 자자하다.

RCEP가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자유무역을 통한 이익을 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그 이익은 단기적일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형성돼 결국 정치나 사회, 문화면에서 통제받게 될 것이란 점이 우려스럽다.

중국이 경제적 의존도를 무기로 상대국에 정치적 요구를 강요하는 것은 이미 상투적인 수법이 됐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는 여전히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라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 탕징위안은 “중국이 RCEP를 주도한 목적은 자유 진영을 분열시키고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것”이라며 “중국은 RCEP를 이용해 미국의 무역 제재를 무력화하려 하고 있으며, 이미 한국, 일본, 호주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RCEP는 당초 미국이 추진하다가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남은 회원국인 호주·캐나다·일본 등이 결성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달리 노동, 환경 표준 등을 다루지 않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체계다.

탕징위안은 “이는 노동과 환경 규제가 허술한 중국의 무역 규범을 받아들이는 꼴”이라며 “국제 질서에 대한 일종의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인도는 결국 RCEP에 참여하지 않았다. 중국이 가입한 뒤 세계무역기구(WTO)가 어떻게 됐는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RCEP는 원래 16개국이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인도는 2019년 11월 협상 최종 단계에서 참여를 포기했다. 이듬해 7월, 인도는 “중국이 참여한 모든 무역 협정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입장을 명확히 했다.

로이터통신은 RCEP가 자유무역을 내세워 참여국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하도록 하는 규정이 결국 저가 중국산 상품의 무분별한 공세로 이어져 자국의 제조업, 농업을 해치고 경제력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RCEP를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동원하려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인도 매체 인디아 투데이는 익명의 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중국은 RCEP 정상회담에서 미국-중국 무역 전쟁에 맞서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한 축으로 TPP를 추진했다. 그러나 임기 내에 의회의 비준을 받는 데 실패했다. 뒤이어 들어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TPP가 불공정한 무역협정이며 미국의 일자리를 파괴한다고 폐기했다.

이후 호주·캐나다·일본 등 남은 회원국이 CPTPP를 체결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는 참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RCEP가 발효되기 직전인 작년 11월 미국 상원 재정위원회 소속 마이크 크레이포 상원의원 등 공화당 의원 13명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RCEP에 맞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새 경제체 결성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원들은 서한에서 “미국의 불참은 잠재적인 파트너들이 ‘미국이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들고, 이 틈을 노려 중국은 글로벌 경제를 통제할 여지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경제 기구 재가입에 난항을 겪는 가운데 중국은 RCEP뿐만 아니라 CPTPP, 디지털 경제 동반자 협정(DEPA)에 가입을 정식으로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탕징위안은 “중국이 CPTPP와 같은 높은 수준의 체제에 편입되면 국제무역 질서에 대한 발언권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미국에 맞설 능력을 더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CEP는 20년 내 회원국 간 90% 상품의 수출입 상품 관세를 제로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이 협정이 2030년까지 전 세계 소득을 연간 2090억 달러, 세계 무역을 5000억 달러를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싱크탱크 대서양협의회(Atlantic Council)는 RCEP에 관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불참으로 중국은 이 지역 경제성장 동력이라는 역할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됐다”고 경고했다. 각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더 높아지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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