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人] 맥아더 장군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 메리 맥아더

김연진
2023년 05월 16일 오후 1:44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7

최연소 사단장, 최연소 육군사관학교장, 최연소 육군참모총장 타이틀을 거머쥔 엘리트 군인.

약 30년간 장군을 지내면서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칭송받은 전무후무한 인물.

1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까지 20세기 주요 전쟁에 모두 참전한 명장(名將).

모두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을 일컫는 말이다.

군인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다수 남긴 그는 현재까지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장군으로 손꼽힌다.

이렇게 맥아더 장군이 뛰어난 전략가이자 군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

그의 어머니 메리 하디 맥아더(Mary Pinkney Hardy MacArthur)가 보여준 헌신이 명장 맥아더 장군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리 하디 맥아더 | Public Domain

명문가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1880년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의 병영에서 태어난 맥아더 장군은 어린 시절부터 군인을 꿈꿨다.

집안의 영향이 컸다. 할아버지는 남북전쟁의 영웅이었고, 아버지는 미국-스페인 전쟁과 미국-필리핀 전쟁의 영웅이었다.

엘리트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들이었기에, 맥아더 장군을 향한 어머니의 기대도 컸다.

사실 맥아더 장군에게는 형이 두 명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큰형인 아서 3세는 4살 무렵 홍역으로 목숨을 잃었고, 둘째 형인 말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갑작스럽게 숨지고 말았다.

그렇게 삼 형제 중 홀로 남게 된 맥아더 장군.

어머니 메리는 사생활도 포기하며 막내아들을 위대한 군인으로 키워내기 위해 헌신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군인 교육을 받았던 맥아더 장군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 시절 (글을) 읽거나 쓰기도 전에 말을 타고 총을 쏘는 법을 배웠다.”

육군 준장 시절의 맥아더 장군. 1918년. | Public Domain

든든한 조력자

맥아더 장군의 인생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지만, 때때로 위기가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도움을 준 것은 어머니였다.

1898년 맥아더 장군은 미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불합격하고 좌절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인맥을 동원해 테오발트 오트옌 하원의원과 접촉하며 그의 추천서를 받아냈다.

또한 밀워키 고등학교 교장 거트루드 헐을 아들의 개인 교사로 섭외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그 덕분에 맥아더 장군은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머니는 맥아더 장군이 있는 육군사관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지내면서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마침내 맥아더 장군은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졸업하고 곧바로 유럽 전선에 투입됐다.

전장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훈장을 받은 그가 장군으로 진급한 것은 1918년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지 15년 만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 Public Domain

어머니의 가르침

어머니 메리는 아들의 교육 지원뿐만 아니라 인성 함양에도 기여했다. 맥아더 장군이 전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과 결단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어머니의 인성 교육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육사생도 시절 학교폭력 문제로 고민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에서는 학교폭력 사태로 청문회가 열렸는데, 맥아더 장군이 여기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됐다.

맥아더 장군은 당시를 회상하며 “피해자의 편에서 가해자들을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군인으로서 입을 무겁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심적인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맥아더 장군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늘 아들에게 군인으로서 원칙을 지키고, 양심에 따라 강직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쳤다.

이에 맥아더 장군은 가해자들을 고발하기로 결심했다.

또한 맥아더 장군이 육군사관학교 졸업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하자 어머니는 “너 자신을 믿어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어머니의 조언으로 마음을 다잡고 졸업 시험에 임한 맥아더 장군은 수석졸업의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맥아더 장군의 최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천상륙작전에서 그는 “우리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 이 나라(한국)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며 작전을 지휘했다.

이런 결단력은 모두 어머니의 가르침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맥아더 기념관’은 버지니아 주 노퍽에 세워졌다.

이곳은 메리의 고향으로, 맥아더 장군이 조금이나마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직접 지역을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