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자회사, 美 제재에 반도체칩 출하량 96% 폭락

김윤호
2022년 01월 9일 오후 1:59 업데이트: 2022년 06월 3일 오후 3:56

중국 화웨이(華爲) 자회사인 반도체 제조사 하이실리콘(海思)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출하량이 미국의 제재 1년 반 만에 96% 급감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어낼리틱스(SA)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글로벌 AP 시장은 17% 성장한 83억 달러(약 10조원) 규모를 기록했다. 수익 상위 5개사는 미국 퀄컴, 애플, 대만 미디어텍, 한국 삼성LSI, 중국 유니SOC(紫光展锐)였다.

반면 하이실리콘은 2019, 2020년 두 차례 미국의 제재를 받은 뒤 프리미엄 칩을 생산하지 못해 작년 3분기 AP 출하량이 96% 급감하며 순위권 밖으로 밀렸다. 하이실리콘은 2020년 2분기 애플을 제치고 3위에 올랐던 것에 비하면 말 그대로 몰락이다.

미국의 집중 제재를 받고 있는 하이실리콘의 추락은 계속되고 있다. 하이실리콘은 세대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TSMC의 2위 거래업체(2020년 기준)였지만, 지난해 TSMC 상위 10대 거래업체 명단에서 사라졌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의 ‘2021년 세계 반도체 업계 상위 25개 기업 명단’에서도 하이실리콘은 제외됐다.

하이실리콘의 추락과 함께 하이실리콘이 위치한 ‘기술혁신 도시’ 중국 선전의 위상도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열린 ‘중국 집적회로설계 산업회의'(ICCAD 2021)에서는 중국 칩설계업 규모 1위 도시는 상하이였다. 전년 1위였던 선전은 3위로 떨어졌다. 매출 규모는 1300억 위안에서 697억 위안으로 반토막 났다.

화웨이는 2019년 5월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마트폰 업체였다. 그러나 미국 상무부가 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가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공급하는 미국 기업 구글은 화웨이와 거래를 할 수 없게 됐고, 화웨이의 스마트폰 제품들은 안드로이드에 대한 접근이 차단돼 업데이트가 중단됐다.

또한 화웨이는 미국 기술이 25% 이상 들어간 제품도 수입할 수 없게 됐다. 대만 TMSC는 25% 제한을 피해 화웨이가 주문한 반도체칩 생산을 지속했다.

그러나 2020년 5월 미 상무부는 미국의 기술과 설비를 사용한 모든 제품은 사전 승인을 받아야 화웨이에 공급할 수 있다는 추가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첨단 반도체가 들어가는 화웨이의 모든 사업에 치명적인 정밀 타격이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반도체 제조사들은 모두 미국의 기술과 설비를 핵심공정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램 리서치, KLA 등으로부터 제조설비를 구매한다. 설비구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업데이트 등 기술 지원도 제공받아야 한다.

추가 제재로 인해 대만 TMSC는 물론 중국의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中芯國際·SMIC)마저 화웨이와 거래가 차단됐다.

또한 반도체 제조의 핵심 공정인 노광 공정을 위해서는 네덜란드의 다국적 기업 ASML의 장비와 기술이 필수적이지만, 이 기업마저 미국의 자본과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어 사실상 화웨이의 반도체 사업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됐다.

화웨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 역시 칩 설계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반도체 설계 자동화의 핵심인 EDA 기술은 시놉시스, 캐이던스, 멘도 등 미국 3사가 글로벌 시장 매출 64%를 장악해 사실상 독점한다. 이들의 도움 없이 시장을 선도할 칩 설계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이실리콘의 AP 출하량이 96% 폭락한 이유다.

“화웨이는 ‘스파이 기업’…백도어로 정보 빼돌려”

미국 법무부는 2019년 화웨이와 자회사 2곳, 멍완저우 부회장을 금융사기 등 13개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2020년에는 여기에 16개 혐의가 추가됐다. 혐의에는 화웨이가 경쟁사의 영업 비밀과 지적재산권을 빼돌리려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 정부는 또한 화웨이가 제품에 설치한 ‘백도어'(몰래 설치한 악성코드)를 통해 세계 각 기관의 보안을 뚫고 정보를 훔쳐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화웨이 제재는 미국-중국 간 과학기술 전쟁의 일환이기도 하다. 윌리엄 바 당시 미 법무장관은 2020년 2월 ‘전략 및 국제연구센터'(CSIS) 강연에서 “19세기 이후 미국의 과학기술은 국가의 번영과 안전을 보장했다”면서 “중국이 앞선 과학기술을 보유하게 되면 미국은 제재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2차 제재를 발표하며 위탁생산 업체에 하이실리콘과 계약한 물량을 2020년 9월 중순까지 인도하도록 했다. 그러나 하이실리콘의 칩 재고량이 작년 결국 소진되자 화웨이 역시 프리미엄 5G폰 납품이 불가능해졌다.

화웨이는 작년 8월 프래그십 스마트폰 P50 시리즈를 공식 발표했다. 퀄컴 스냅드래곤 888 칩셋을 공급받고 일부 모델에는 하이실리콘의 기린9000이 탑재됐지만 5G를 지원하는 신제품은 공개하지 못했다.

중국의 한 휴대폰 수리업체가 최근 출시된 기린9000 4G 버전 화웨이 P50 프로 모델을 분해한 결과 이전 프래그십 모델인 메이트40 프로의 기린9000 프로세서와 모바일 D램 칩셋 구조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현재 화웨이는 기린9000 프로세서 전용 모바일 D램 칩의 재고가 완전히 소진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