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지상파 방송에 중국식 ‘애국’ 프로그램 편성 의무화

최창근
2023년 02월 16일 오후 12:51 업데이트: 2024년 01월 6일 오후 7:50

홍콩특별행정구 내 TV, 라디오 등 방송 매체의 중국 공산당화가 강화된다. 홍콩 내 방송사들은 1주일에 최소 30분 이상 홍콩보안법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식 국가관을 담은 프로그램을 의무 제작‧편성해야 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성도일보(星島日報)’ 등 홍콩 매체들은 이 같은 내용의 방송 규제 변경 내용을 2월 14일 보도했다.

각료회의에 해당하는 홍콩특별행정구회의에서 매체 주무부처 통신사무관리국(通訊事務管理局)은 “향후 TV‧라디오 방송국 면허 갱신 조건으로 국가안보, 중국식 국가관을 담은 프로그램을 주 1회 이상 편성하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조건부 계약 갱신’ 규정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리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이 주재한 회의에서 논의된 사안이기에 해당 규정 실행 가능성이 높다고 성도일보는 보도했다.

홍콩특별행정구 정부는 종전 국가 지정 프로그램 7개를 5개로 통폐합하도록 하는 추가 개정안도 요구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각 방송사는 기존의 공익 성격의 정부 지정 프로그램을 통폐합하여 뉴스, 시사 전문 프로, 13세 미만의 영유아·어린이 전문 프로, 19세 미만의 청소년 프로그램과 기타 프로그램 등으로 통합 운영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매주 최대 28시간 편성 가능했던 영유아 전문 프로그램 시간을 절반 수준인 14시간 이내로 편성해야 하며, 남은 방송 시간은 홍콩인이 중국인으로서 가져야 할 국가관, 국민 정체성 강조 등을 담은 시사프로그램 형식의 공산당 가치 주입 프로그램이 편성될 예정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이른바 ‘국민 정체성과 홍콩 국가보안법 바로 알기’로서 매주 30분 이상 국민 교육 관련 방송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홍콩보안법을 주 내용으로 하는 방송의 경우 촬영·제작·편집·방영 등 전 과정이 100% 홍콩 현지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규정도 시달됐다. 이는 홍콩의 국민 정체성, 국가관 등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내용이 해외에서 외주 제작될 경우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조치로 해석된다.

또한 홍콩 현지에서 영어로 방영 중인 채널은 영어 방송 시간 비중을 기존의 ‘전체 시간 중 80%’에서 55%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규정도 제정될 전망이다.

광둥화(홍콩어)와 더불어 영어 사용이 주를 이뤘던 홍콩에서는 1997년 7월 주권 반환 후 베이징 표준 중국어인 ‘푸퉁화(만다린)’ 교육과 관련 프로그램 제작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홍콩 시민들은 “친중파 정부가 끊임없이 홍콩을 대상으로 중국식 국가관을 강요하고 정치적 압박을 가중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TV나 라디오도 국내 것을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해외에서 제작된 외국 방송과 프로그램만 보도록 지도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고통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홍콩 정부의 조치는 사실상 중국이 홍콩에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이 규정이 실행될 경우 중국의 사고관이 홍콩 주민들에게 강압적으로 주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거세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미 홍콩 정부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현지 3곳 방송 채널이 계약 조건에 합의했으며, 두 곳의 라디오 방송국 역시 내부 검토 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명 저널리스트 출신 브루스 루이(Bruce Lui‧呂秉權) 홍콩침례대(香港浸會大) 신문학과 조교수는 “홍콩 당국은 언론에 더 많은 선전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대신에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한 방식은 언론 조직의 신뢰성을 해칠 수 있으며 언론의 독립에 영향을 끼치는 잘못된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