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의료계, 경찰 잔혹성 비난 “우리 의사들까지 일어나 싸우게 될 줄 몰랐다”

에바 푸
2019년 10월 29일 오전 11:14 업데이트: 2019년 10월 30일 오후 2:47

홍콩 시위가 21번째 주말로 접어든 26일, 약 1만 명의 홍콩 의료 종사자들과 시위자들이 센트럴 금융 지구, 차터 가든을 가득 메웠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들 중심으로 모인 집회에서 시위를 주도한 마이클 라우가 연설을 마치자 “홍콩인이여, 저항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라우 씨는 경찰이 시위자들을 필요 이상 진압하며 부상을 입히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병원까지 난입했다고 비난했다.

이달 초 경찰이 쏜 총탄에 관통상을 입은 14살 청소년을 수술하던 병원에 무장 경찰이 체포를 이유로 난입했었다. 또 임산부가 치료받던 산부인과에도 경찰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의료인들은 이에 항의하며 의료권 보장과 인권 보호를 촉구했다.

지난 6월 홍콩 자치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을 추진하자 이를 반대하며 시민 200만여 명이 거리로 나서면서 시작된 시위는 홍콩 내 자유를 증진하고 중국 공산당 정권의 통제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확대됐다.

시위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자 경찰은 최루탄, 물대포에 실탄 공격까지 진압 수위를 높였다. 경찰에 의해 수천 명이 체포됐다. 이달 10일 매튜 청 홍콩 정무부총리(정무사 사장)는 홍콩 시위로 체포된 시민이 약 2379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한, 새로 ‘복면금지법’을 제정해 마스크 착용을 하고 집회에 나서면 최고 1년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홍콩 센트럴 금융 지구에서 열린 건강관리 전문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2019. 10. 26 | Philip Fong/AFP=Yonhapnews(연합뉴스)

이날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허가를 받은 집회에서 각계각층의 참여자들이 경찰의 학대 경험을 전달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남성은 보행자 도로를 걸어가는데, 경찰이 갑자기 체포했다며 “경찰은 숨을 쉴 수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나를 땅바닥에 내려쳤다. 나는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몰랐다. 그 이후 나는 집에 갈 때마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덮치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전했다.

그는 경찰이 뿌린 후추 스프레이가 가슴 피부를 태웠고, 경찰이 다리를 때려 일주일간 다리를 절었다고 말했다. 또 구치소에 잡혀서는 알몸이 드러나도록 옷을 벗기고, 변호인 접견이나 의료 조치 등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 나는 그래도 잘못한 게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며 “내 몸을 학대할 수는 있어도 내 의지는 꺾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홍콩 센트럴 금융 지구에서 열린 의료전문가 집회에 참가한 민주화 지지자들이 휴대전화 불빛을 밝히고 있다. 2019. 10. 26. | Anthony Kwan/Getty Images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새로운 금지령을 무시한 채 마스크를 쓰고 경찰의 무력을 비난하는 현수막과 미국 국기를 들고 있었다.

집회 현장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치료를 받은 시위자의 약 22%가 뼈를 다쳤다. 의료진은 부상당한 민간인과 시위대가 병원에 오면 체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하 의료 지원을 택하거나, 아예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또한 복면금지법 때문에 병원의 일반 환자들도 마스크를 착용을 거부해 환절기 독감 환자가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집회 주최 측은 또한 시위자들이 눈이 붓고 손이 탈구되는 등 부상을 입은 모습을 보여줬다.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일하는 외과 의사 폴 유카이는 최근 에포크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부상당한 시위자들 중 90%는 치료가 필요해도 신분 노출을 염려해 병원 치료를 받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카이 의사는 현재 인도적 의료 지원을 위해 홍콩에 머물고 있다.

한 시위자가 홍콩 채터 가든 집회에서 ‘光復香港(광복홍콩:홍콩을 되찾자)’이라는 시위 문구를 들고 있다. 2019. 10. 26. | Sung Pi-lung/The Epoch Times

지난 6일 시위 도중 체포된 10살 소년은 연설에서 “우리 홍콩은 지금 정말 병들어 있다”고 말했다. 소년은 체포된 지 10시간여 만에 머리가 너무 부어올라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년은 “그분들 아니었으면 온전하게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을 치료해 준 의료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퀸엘리자베스 병원의 응급실 유왕록 의사는 “나는 어느 날 의사들까지 일어나 싸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시작할 때 모든 홍콩 사람은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하고 싶었지만, 점점 더 많은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집회에 앞서 차터 가든에서는 기독교인 약 300명이 기도회에 참석해 권력자들이 여론에 귀를 기울이기를 희망했다. 이들은 또 현재 진행 중인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선 청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