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선거제 개편 후 첫 입법회 선거…투표율 30% 역대 최저

이윤정
2021년 12월 20일 오후 7:48 업데이트: 2021년 12월 23일 오후 10:02

야권 후보 불출마, 시민들 ‘애국자 뽑는’ 투표 보이콧
시민 직접 선출 지역구 의원 수 35명에서 20명으로 감소

베이징 당국의 홍콩 선거제 개편 이후 처음 치러진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 투표율이 30.2%,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홍콩 선거제도가 전면 개편됨에 따라 친중 인사 선출이 기정사실로 되면서 시민들이 보이콧, 백지투표 등을 통해 저항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 공영방송 라디오텔레비전(香港電臺·RTHK) 보도에 따르면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12월 19일 오전 8시 30분(현지 시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실시된 입법회 선거에 전체 유권자 447만2863명 중 135만680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30.2%로 집계됐다고 12월 20일 공식 발표했다.

이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7월 이후 치러진 입법회 선거 중 최저 투표율인 2000년 43.57%보다도 13.37%포인트 낮은 수치다. 입법회 선거 사상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던 2016년 홍콩 입법회 선거 투표율(58.28%)과 비교하면 28% 포인트 낮아졌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투표가 끝난 후 “투표해 준 130만여 명에게 감사한다”며 “오늘의 투표는 공개적이고 공평하게 치러졌다. 모든 과정이 매우 순조로웠다”고 말했다.

홍콩 당국은 중국 본토에 머물고 있는 홍콩인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중국과 홍콩 접경지대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코로나19 격리 면제, 대중교통 무료 제공 등 투표율 끌어올리기에 안간힘을 썼다.

입법회 선거 투표율 저조를 우려한 홍콩 정부는 “투표를 보이콧하거나 무효투표를 선동하는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 20만 홍콩달러에 처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경무처장(경찰청장) 출신인 크리스 탕(鄧炳强) 보안국장도 “입법회 선거에서 ‘투표 거부’나 ‘백지 투표’를 독려하는 행위는 선거법뿐 아니라 홍콩판 국가안전법(홍콩안전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부패 수사, 선거 관련 수사를 전담하는 홍콩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는 “백지투표와 투표 보이콧을 선동한 혐의로 10여 명을 체포하고 2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번 입법회 선거는 지난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 선거제도를 전면 개편한 후 처음 실시된 입법회 선거다.

중국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지난 3월 11일 ‘홍콩특별행정구 선거제도에 관한 전인대 결정’을 찬성 2895표, 반대 0표, 기권 1표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당시 약속했던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 원칙은 ‘애국자가 홍콩을 통치한다(愛國者治港)’는 원칙으로 대체됐다. 더하여 홍콩 행정장관이 당연직 위원장을 맡는 국가안전위원회가 후보자의 ‘애국심’과 ‘준법의식’ 등 출마 자격을 심사하도록 해 범민주파 정치인의 출마가 제도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개편된 선거 제도에 따르면 종전 70명이던 입법회 의원 정원은 90명으로 늘었다. 다만 90명 중 홍콩 시민이 직접 선거로 뽑는 지역구 의원 수는 20명(22%)으로, 기존 35명(50%)보다 줄었다.

지역구 의원 20명을 제외한 70명 가운데 40명은 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 1448명으로 구성된 홍콩선거위원회가 뽑고, 나머지 금융계·재계·노동계 등 직능 대표 30명은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한다.

문제는 대부분 친중 인사로 구성된 자격심사위원회가 후보 등록자들의 ‘애국심’ 등을 평가해 적격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직능대표나 선거인단 선출 의원은 선거제도 변경 전부터 친중 인사들이 장악해왔다.

입법회 선거에서 민주 진영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홍콩 제1야당인 민주당이 입법회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은 것도 1997년 홍콩 반환 후 처음이다. ‘개악’된 선거제도에 대한 반발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2019년 반(反)중국 시위 관련하여 홍콩 민주진영 인사 대부분이 수감됐거나 해외로 망명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홍콩 입법회 선거는 계획대로라면 2020년 9월 치러질 예정이었다. 홍콩 당국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들어 선거를 1년 넘게 미뤄왔다.

실제는 지난 구의회 선거에서의 민주파 압승이 요인이라 볼 수도 있다. 2019년 6월 시작된 홍콩 민주화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진 가운데 같은 해 11월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회 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전체 452석 중 278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뒀다. 당시 294만여 명이 선거에 참여하면서 투표율은 71.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홍콩 민주 진영은 나아가 입법회도 장악하겠다며 고무됐다.

이듬해(2020년) 7월 11일, 12일 이틀간 치러진 야권 민주파 후보 단일화 예비 선거(경선)에는 유권자 61만 명이 참여했다. 홍콩 당국은 당시 예비선거에 참여한 야당 정치인들을 7월 1일 전격 시행된 홍콩 국가안전법을 적용해 국가 전복 혐의 등으로 체포했다.

한편, 염정공서는 선거 전날인 12월 19일 네이선 로(Nathan Law·羅冠聰) 등 해외 체류 민주 인사 5명에 대해 전격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SNS)에서 입법회 선거 투표 보이콧을 촉구하는 글을 올려 선거 방해 혐의가 적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