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당국, 입장신문 간부 6명 체포…언론 탄압 본격화?

이윤정
2021년 12월 30일 오전 10:48 업데이트: 2021년 12월 30일 오후 5:59

홍콩기자협회장·가수 데니스 호 포함
홍콩 검찰, 폐간 빈과일보 전직 간부 7명 추가 기소

홍콩특별행정구의 언론 탄압이 다시금 시작됐다. 12월 29일, 홍콩 경찰은 민주 성향 온라인 매체 ‘입장신문(立場新聞·Stand News) 전·현직 간부 6명을 ‘출판물을 이용한 선동 모의’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검찰 역할을 수행하는 율정사(律政司) 형사검공과(刑事檢控科)는 지난 6월 폐간된 빈과일보(蘋果日報)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 등 빈과일보 전직 임원 7명도 같은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 따르면 홍콩 경찰 내 홍콩국가안전법 담당 부서인 국가안전처는 12월 29일, “선동적 출판물 발간 모의 혐의로 온라인 매체 입장신문의 전·현직 간부 6명을 체포했다. 이들의 자택, 신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 중”이라고 밝혔다. 입장신문이 보유한 6100만 홍콩달러(약 93억 원) 규모 자산을 동결하고, 사무실에서 50만 홍콩달러(약 7600만 원)의 현금을 압수했다고 전했다.

홍콩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입장신문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으며 200명 이상의 경찰이 투입됐다”고 설명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체포된 6명에는 패트릭 람 입장신문 편집국장 권한 대행, 청푸이쿤(鍾沛權) 입장신문 전 편집국장이 포함됐다. 청푸이쿤 전 국장은 지난 7월 홍콩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찬푸이만(陳沛敏) 전 빈과일보 부사장의 남편이다. 청푸이쿤 전 국장은 부부가 동시에 구속되는 것을 피하고자 지난달 사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거릿 응(吳靄儀) 전 공민당 홍콩 입법회 의원, 가수 데니스 호, 초우탓치, 크리스틴 팡 등 입장신문 전직 이사 4명도 이날 체포됐다. 대표적인 반중(反中) 연예인으로 꼽히는 가수 데니스 호(何韻詩)는 2014년 홍콩 우산혁명,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이후 유엔 인권이사회,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홍콩에 대한 중국의 탄압을 고발해 왔다.

홍콩기자협회(HKJA) 회장인 론슨 챈 입장신문 부국장도 이날 다른 간부들과 함께 체포·연행됐다가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론슨 챈을 비롯해 최소 4명의 입장신문 직원이 연행돼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입장신문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경찰이 챈 부국장 집에 도착해 체포 영장을 제시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민주 진영 온라인 매체로 홍콩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온 입장신문은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이 발발한 그해 12월 창간했다. 특히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홍콩 경찰의 시위대 탄압을 온라인 생중계로 보도하면서 주목받았다.

입장신문은 지난 6월 홍콩 빈과일보가 홍콩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폐간되자 당국의 표적이 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조처했다. 빈과일보 폐간 사흘 뒤 “홍콩에 ‘문자의 옥(文字獄)’이 왔다”며 인터넷에 게재된 자사의 모든 칼럼을 내리고 후원금 모금활동을 중단했다. 신규 구독신청도 받지 않겠다고 안내하면서 입장신문 자산 압류 시 후원자들의 돈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문자의 옥(감옥)’은 지식인에 대한 탄압을 일컫는다. 중국 역대 왕조가 행한 반대파 숙청 방식의 하나로 문서에 적힌 문자나 내용이 황제나 체제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하여 해당 문서를 쓴 자를 벌했다. 대표적인 문자의 옥 사건들은 명 태조 홍무제와 청 강희제·옹정제·건륭제 재위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앞서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논조를 견지해 당국으로부터 지속적인 탄압을 받던 홍콩 독립언론 빈과일보가 지난 6월 24일 공식 폐간했다. 당시 홍콩 경찰은 빈과일보 고위급 임원들을 ‘외국 세력과 결탁’ 혐의로 체포했다. 빈과일보에 게재된 30여 편의 글에 대해 홍콩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빈과일보에는 1800만 홍콩달러(약 26억 원) 자산 동결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홍콩 율정사 형사검공과는 12월 28일 홍콩국가안전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된 빈과일보 사주 지미라이 등 빈과일보 전 임원 7명에 대해 선동적 출판물 발간 모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지미 라이는 불법 집회 관련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홍콩 정부 2인자인 존 리(李家超) 홍콩 정무사(政務司) 사장은 “저널리즘은 국가 안보에 반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며 “국가안보를 해치는 행동에는 무관용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말해 향후 비판 언론에 대한 추가 탄압을 시사했다. 보안 국장 출신의 존 리는 정무사 사장으로 임명된 후 홍콩 국가안전법 시행을 두고서 “홍콩에서 ‘혼돈의 시대’가 끝났고 효율적으로 통치되는 새로운 장으로 넘어왔다”고 밝힌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