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공안당국, 톈안먼 민주화시위 34주년 앞두고 추모조각상 ‘수치의 기둥’ 압수

최창근
2023년 05월 8일 오후 9:57 업데이트: 2024년 01월 6일 오후 7:45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34주기를 앞두고 홍콩대 캠퍼스에 세워졌다 철거된 추모 조각상이 홍콩 공안당국에 압수됐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수치의 기둥 압수는 톈안먼 민주화 시위 34주년을 한 달가량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고 보도하여 민감한 시기에 압수가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중화권 매체의 5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홍콩 국가안전처는 5월 5일, 톈안먼 시위 희생자 추모 조각상 ‘수치의 기둥((Pillar of Shame·國殤之柱)’을 압수했다. 해당 조각상은 홍콩대 캠퍼스 내 농업연구시설에 보관 중이었다.

원래 수치의 기둥은 1997년부터 홍콩대 캠퍼스에 설치된 조각상이었다. 기둥은 민주화 시위자들의 번민에 찬 모습과 고문을 받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러다 지난 2021년 12월 22일, 기습 철거됐다. 대학 직원들은 보안을 위해 바닥부터 천장까지 덮는 시트와 차단막을 이용해 조각상을 가렸으며, 경호 인력들이 언론 취재를 막았다.

홍콩대는 “외부 법률 자문과 대학에 대한 리스크 평가에 근거해 결정을 내렸다.”고 철거 배경을 설명했다. 리스크란 2021년 6월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을 의미한다. 홍콩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

동상을 압수한 홍콩 국가안전처는 “영장을 발부받아 국가 정권 전복 사건의 증거물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해당 소식 보도 후 동상 제작자 옌스 갤치옷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내 작품이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 증거물이라니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압수와 관련해 사전에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높이 8m, 무게 2톤의 조각상 수치의 기둥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영국이 홍콩 주권을 중국에 반환한 1997년에 맞춰 홍콩대 캠퍼스에 세워졌다.

덴마크 작가 갤치옷이 제작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香港市民支援愛國民主運動聯合會·약칭 ‘지련회’)에 영구 기증했다. 단체는 매년 톈안먼 시위 희생자 추모 촛불 집회를 주최해 왔다.

지련회는 홍콩 당국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수사에 나서자 2021년 9월 자진 해산했다. 홍콩 경찰은 단체 간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홍콩 당국은 2021년 연말 수치의 기둥과 홍콩중문대(香港中文大)내 ‘민주주의 여신상’, 링난대(嶺南大)의 대형 부조 벽화 등 홍콩 소재 3개 대학 캠퍼스에 설치됐던 톈안먼 시위 추모 기념물들을 일제히 철거했다,

수치의 기둥 제작자 갤치옷은 당시 홍콩 당국에 조각상을 덴마크로 가져가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홍콩 정부는 거부했다.

1989년, 그해 봄 사망한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추모를 명분으로 민주화와 정치 개혁을 요구했던 톈안먼 시위는 중국 당국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대규모 유혈 사태로 막을 내렸다. 오늘날까지 중국에서는 금기이다.

중국에서는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금기시되지만, 지난날 영국령이었고, 1997년 7월 1일 주권 반환 후에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적용된 홍콩에서는 사건 발생 이듬해인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 빅토리아 파크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2020년 6월,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상황은 변했다. 홍콩특별행정구는 그해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톈안먼 시위 추모 집회를 불허했다. 당국의 금지에도 집회 장소인 빅토리아 파크에 2만여 명이 모이자 2021년부터는 집회 불허와 더불어 개최 장소를 봉쇄해 집회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