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곰돌이 푸 나오는 英 영화 상영 취소…“習 관련 금기어”

김태영
2023년 03월 24일 오후 5:07 업데이트: 2024년 01월 6일 오후 7:46

홍콩과 마카오에서 디즈니의 인기 캐릭터 ‘곰돌이 푸’가 등장하는 영화가 별다른 이유 없이 돌연 상영이 취소돼 논란이 일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22일(현지 시간) 홍콩과 마카오의 영화 배급사들이 영국의 공포 영화 ‘곰돌이 푸 : 블러드 앤 허니’ 상영을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영화 배급사 ‘세븐 필라스 엔터테인먼트’는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관련 소식을 전하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고객들에게 실망과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죄송하다”면서도 개봉 취소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홍콩 상영을 기획한 회사 ‘무비매틱’은 소셜미디어(SNS)에 “기술적인 이유로 인해 상영이 취소됐다”고 발표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라이 프레이크워터필드 감독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극장들은 모두 상영에 동의해놓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꿨다”며 “그들은 기술적 이유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전 세계 4000여 개 스크린에서 문제없이 영화가 상영됐으며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고 반박했다.

RFA에 따르면 홍콩 네티즌들은 이번 일이 ‘중국의 정치 검열’ 때문이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곰돌이 푸’가 시진핑을 비판하는 시위 등에 사용되면서 중국에서 금기시된 일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곰돌이 푸는 2013년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가 미국 방문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걷는 모습을 본 네티즌들이 시진핑과 푸를 비교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며 크게 화제가 됐다.

이후 곰돌이 푸는 시진핑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데 주로 사용돼 왔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나 중국 백지 혁명 때도 어김없이 푸의 사진과 인형탈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현재 중국 인터넷에서 곰돌이 푸는 금기어로 선정돼 검색이 제한된 상태다.

홍콩 네티즌들은 “중국의 논리를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이제 포기하겠다” “우리는 더 이상 홍콩에서 컬트(비주류) 영화를 볼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등의 댓글을 남기며 중국의 검열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논란이 일자 홍콩 교육부 장관 케빈 융은 “상영 취소 결정은 배급사가 한 것이며 홍콩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응수했다.

이에 대해 홍콩 언론인이자 시사평론가 게리 창은 영화 상영을 취소한 점에 대해 정당한 설명이 없었던 점이 더 많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화가 법을 위반했다거나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등의 증거가 없다. 만약 법을 위반했다면 홍콩 정부는 어떤 규정을 위반했는지 명확하게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 경우 마땅한 설명 없이 ‘곰돌이 푸’라는 단어를 언급조차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시사평론가 상 푸는 이번 검열이 실제 홍콩 정부를 통하지 않고 중국 본토에 있는 홍콩·마카오 사무국과 공안부에서 직접 지시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당국은 ‘곰돌이 푸’가 ‘시진핑’을, ‘피글렛’이 ‘푸틴’을 의미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대신 그들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중국이 금기시하는 규정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한편 곰돌이 푸는 1926년 영국 작가 AA 밀른이 출판한 동화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로, 원래 이름은 ‘위니 더 푸(Winnie-the-Pooh)’다. 이후 디즈니 저작권은 2021년 12월 31일부로 만료돼 푸를 주인공으로 한 이번 공포 영화가 나올 수 있게 됐다. 영화는 푸와 친구들이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버림받은 후 잔인하게 복수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곰돌이 푸 동화를 읽고 자란 일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어린 시절 추억과 동심을 깨뜨린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SNS에는 “어린 시절 봐온 순진한 푸를 살인마로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다” 등의 우려 섞인 댓글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