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연방정부, 지자체가 체결한 中 일대일로 협정 취소

한동훈
2021년 04월 22일 오전 8:45 업데이트: 2021년 04월 22일 오후 4:25

지난해 지자체 ‘일대일로’ 참여 저지 위한 법안 통과
연방정부 “호주 외교정책과 맞지 않고 외교에 불리”
전문가 “일대일로, MOU 아닌 외교적 사안으로 봐야”

호주 연방정부가 빅토리아 주정부의 중국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무산시켰다.

21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머리스 페인 호주 외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빅토리아 주정부가 외국 정부와 체결한 업무협약(MOU) 4건을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2건은 빅토리아 주정부가 2018년, 2019년 일대일로 참여를 위해 중국 공산당(중공) 정부와 체결한 것이다. 나머지 2건은 이란, 시리아 정부와 맺은 교육협력 MOU다.

페인 외무장관은 이 4건의 MOU에 대해 “호주의 외교 정책과 맞지 않거나 호주 외교 관계에 불리하다고 판단했다”며 외교관계법에 따라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외교관계법(Foreign Relations bill)은 호주 연방정부에서 지난해 도입한 법안이다. 주정부, 주의회, 대학이 체결한 국제 협정을 검토하고 거부권을 행사해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당시 이 법을 발표하며 “호주의 주권을 위해 중요한 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법은 중공의 영향력 확대 프로그램인 ‘일대일로’를 막기 위해 제정됐다.

또한 이 법의 적용 범위에 대학까지 포함한 것은 ‘공자학원’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공자학원은 중공의 각국 교육계 침투 공작이다.

이 법의 발동 대상이 된 빅토리아 주정부는 호주 내에서도 일대일로에 적극적인 지방정부로 손꼽힌다.

빅토리아주의 대니얼 앤드루스 주총리는 호주 내 대표적인 친중공 인사다. 그는 지역 내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연방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도 중공의 일대일로의 호주 도입을 추진해왔다.

중공의 투자를 유치하고 더 많은 일자리와 사업 기회를 창출한다는 이유에서다.

홍콩 민주화 요구 시위대가 4일 호주 멜버른의 대니얼 앤드루스 빅토리아 주총리 지역구 사무소 앞에 모여 그의 친중 행보를 비난하는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사진 속 안경을 쓴 백인 남성이 앤드루스 주총리다. 2020.6.4 | 연합뉴스

그러나 연방정부와 안보 전문가들은 중공이 빅토리아주와의 MOU를 선전 수단으로 사용하며, 또한 지방정부를 일종의 볼모로 삼아 호주의 대중(대중공) 정책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고 우려해왔다.

호주 국방안보 국책연구소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는 지난해 6월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 전술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일대일로를 그 주요 수단으로 지목했다.

호주의 일부 법조계 인사들은 일대일로 사업 참여는 일개 지방정부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일반적인 MOU를 뛰어넘는 외교 차원의 일이므로 연방정부 권한에 속한다는 것이다.

호주는 작년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발원지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해 중공의 거센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이후 중공은 호주의 대중 주요 수출 품목인 호주산 육류와 농산물을 수입 중단하는 등 보복 조치를 가했지만, 호주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호주는 중공과 경제 관계도 중요하지만, 국가 안보 차원에서 일대일로는 양보할 수 없는 침투라는 입장이다. 호주는 미국·일본·인도와 함께 4개국 안보 연합체 ‘쿼드(Quad)’를 결성하고 중공을 견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