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새 정부, 중국의 관계개선 요구 거부…“국익 우선”

대니얼 Y. 텅
2022년 07월 14일 오후 12:55 업데이트: 2022년 07월 14일 오후 4:36

호주 신임 총리가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수용하라”며 중국 측이 제시한 요구사항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아닌 호주의 국가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전날 중국 외교부의 발표에 따른 대응이다.

앞서 10일 중국 외교부는 지난주 열렸던 호주 페니 웡 외무장관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장관)의 양자회담 내용을 공개하며, 왕이 부장이 “호주가 중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면 따라줘야 한다”며 호주에 전달한 4가지 요구사항을 밝혔다.

이 4가지 요구사항은 △중국을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로 간주한다 △차이점은 미뤄두고 양국 간 공통분모를 찾아 화합한다 △제3자에 기울거나 통제당하지 않는 자세를 유지한다 △적극적이고 실용적인 여론 기반을 조성한다 등이다.

‘제3자’는 미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 번째 요구사항은 남태평양 국가들이 중국과의 안보협정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려는 호주의 노력과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외교 질서를 무산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네 번째 요구사항은 호주 지도자들 ‘입단속’을 시키라는 의미다. 공개석상에서 중국에 대한 발언에 주의하고 호주 내에서 중국 비판 여론이 형성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문이다. 지난달 말 한 여론조사에서 호주 내 반중 여론은 80% 이상이었다.

이 밖에도 왕이 부장은 화웨이 5G 금지령 해제, 호주의 <내정간섭 금지법> 폐지 등 세부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정치권 분열시켜 반중노선 통제 시도

중국 공산당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5월 총선에서 호주 집권당이 보수 성향 자유당에서 중도좌파 성향 노동당으로 9년 만에 교체된 데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8일 왕이 부장과 호주 웡 외무장관과 회담이 끝나자, 곧 회담 내용을 발표하지 않고 24시간 이상이 지난 10일에야 회담에 대한 중국 입장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왕이 부장은 지난 수년간 양국 간 외교관계가 “비정상적”으로 악화됐다며 그 이유를 전임 스콧 모리슨 총리 정부에 돌렸다.

그는 “(전임 모리슨 정부는) 무책임한 언행을 일삼았다”고 비난했으며, 양국 관계 악화의 근본적 원인을 전임 모리슨 정부가 중국을 라이벌 또는 위협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중국-호주 간 외무장관 회담은 양국 사이에서 거의 3년 만에 이뤄진 고위급 회담이었다.

양국 관계는 2020년 모리슨 전 총리가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 기원에 대한 독립조사단 가동을 요구하면서 급속히 악화했다. 중국은 호주 농가와 수출업체를 상대로 무역 보복을 가했고, 호주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강경한 자세를 유지했다.

좌파 성향의 새 노동당 정부는 전임 모리슨 정부와 외교 정책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한결 완화된 태도를 나타냈고, 기후변화 행동에 대해서도 더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보였다. 솔로몬제도 등 주변국의 목소리에도 더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호주 페니 웡 외무장관(좌)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장관)은 지난 8일(현지시각)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양자 회담을 했다. | Johannes P. Christo/POOL/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중국은 이러한 차별화에 편승해 새 노동당 정부를 전임 자유당 정부와 더 갈라놓으려 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마이클 슈브릿지 국방국장은 중국 공산당의 유인 공세가 호주에서 거의 설득력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브릿지 국장은 에포크타임스에 “중국은 분명히 이전 정부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하며 이전 정부와의 관계를 비난하려 하고 있다”며 “그러나 새 정부는 중국 정부와 산하 기구들의 행동이 조직적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상당히 명확한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슈브릿지 국장은 중국 공산당이 이전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한 노동당 정부의 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 하고 있다며 “그들은 정치적으로 쐐기를 박는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중국의 속셈을 꿰뚫어 봤다.

이러한 슈브릿지 국장의 분석은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 호주의 국익을 추구하겠다고 한 앨버니지 총리의 이날 발언으로 확인됐다.

앨버니지 총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중국과 협력하겠다”며 이전 정부의 강경 노선을 일부 완화할 것임을 시사하면서도 “모든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필요할 때는 호주의 이익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