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본보기 삼은 中…스스로 호주만한 구덩이 파고 빠진 격”

2021년 06월 22일 오후 7:45 업데이트: 2022년 05월 31일 오후 1:48

중국과 호주의 외교적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중국이 호주를 본보기로 삼아 경제적 불이익을 주려 하지만, 실효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다른 국가들에게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인상만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허드슨 연구소 선임연구원 존 리 박사는 최근 미 의회 전문지 더힐(The Hill)에 보낸 기고문에서 “현재 중국은 스스로 호주만한 구덩이를 파고 있다”면서 “중국은 호주를 상대로 한 압박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판 구덩이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호주 외무장관의 선임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중국계 리 박사는 “중국은 자신이 판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중국이 호주에 가한 경제 제재와 모욕 행위는 연구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호주는 지금까지 중국이 상대한 여느 국가와는 다른 독창적인 모습으로 맞서고 있다”면서 “중국은 이 민주주의 국가를 압박해 굴복시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분쟁은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호주는 결의가 굳건하며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중국은 이미 총구를 다른 나라로 돌릴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다른 동맹국을 독려해 중국에 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카드 다 썼지만…미미한 효과에 그친 중국의 호주 경제 제재

2010년 이후 중국은 몇몇 국가와 기업에 대해 최소 150차례의 경제 제재를 가했으며 그 중 절반 이상은 지난 2년 사이 집중됐다.

리 박사는 기고문에서 왜 호주가 주된 목표물이 됐는지 설명했다.

그는 “호주는 선택하기 가장 손쉬운 목표였다. 호주는 광물·에너지·농산물 수출에서 중국을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었고, 수출품 3분의 1 이상이 중국으로 향했다. 무역만 놓고 보면 호주는 세계에서 중국 시장 의존도가 가장 큰 선진국이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호주산 석탄 수입을 규제하는 등 경제제재를 가했지만, 그 역효과를 톡톡히 맛보고 있다. 지난 겨울 50년만에 가장 추운 날씨를 맞이한 중국은 난방과 발전을 위해 위해 비축한 석탄을 소진했고 이제는 여름철을 맞아 전력난에 처했다.

그러나 저렴하고 빠르게 공급받을 수 있는 호주산 석탄 수입이 금지되면서, 중국의 화력 발전소들은 풀가동은 커녕 번갈아가며 가동을 하는 상황이다. 그 사이 호주의 광산기업들은 초기의 수출 좌절을 딛고 일본과 인도로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또한 보리 등 농산물 수출업체들은 중국 시장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고 랍스터, 와인 수출업체들도 새로운 시장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호주 통계국이 올해 6월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1분기 GDP와 수출은 모두 증가했다.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 암담해지리라는 전망과는 달리 중국의 협박에 가까운 경제 제재는 호주 경제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체질만 강화시킨 꼴이 됐다.

리 박사는 호주를 겨냥한 중국의 제재 방식이 과거 한국, 일본, 필리핀, 캐나다, 영국 등 국가에 취한 제재 및 압박 방식과는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관세 부과와 여행 제한 같은 이전까지의 제재와 압박이 중국 정부의 뜻을 거스르는 국가들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마이클 쇼브리지 국방안보 프로젝트 국장 역시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호주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소국은 중국의 의지를 거스르는 배짱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기 위한 것”이라며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리 박사는 “그러나 중국은 제재는 해당 국가에 대한 보복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중재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예를 들어 희토류 수출 규제의 경우, 중국은 ‘환경 보호를 위해 희토류의 중국내 가공 ·생산을 감소하기로 했다’고 밝혔었다. 한국 기업에 대한 보이콧 역시 중국은 ‘이는 분노한 중국인들의 자발적 행위’라며 정권이 취한 조치가 아님을 분명히 했었다”고 했다.

리 박사는 “이러한 ‘위장’은 중국 정부가 제재의 책임을 민간이나 기업에 전가할 수 있도록 하는 변명거리가 된다. 제재를 받은 국가들은 납득하기는 어렵더라도 세계무역기구(WTO) 등 중재 시스템에 중국을 제소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와 함께, 제재를 당하는 국가 내부의 친중 인사들은 ‘자국 정부가 중국에 대해 잘못 처신하고 있다’는 여론을 조성한다. 각국은 중국의 경제 보복을 당하면서도 WTO 등 국제적인 중재시스템을 이용해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직접 중국을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최대한 몸을 사려 중국과 대립을 피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호주 제재 실패…중국 글로벌 영향력 확대 전략에 차질

그의 분석은 중국이 호주에 본때를 보여줌으로써 다른 국가들에 ‘역시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면 돌이킬 수 없는 경제 피해를 입게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주는 중국 앞에서 몸을 사리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는 ‘독창적’ 움직임을 보였고 그 결과 중국은 지금까지 다른 국가에 사용한 간접적 압박 대신 직접적 압력을 동원했고 그로인해 상황은 더욱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게 됐다.

리 박사는 중국은 호주를 상대로 한 경제적 압박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호주에 대한 제재 조치에서 중국은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 우선 중국 고위 관리들이 경제 제재 실시 전 위협 신호를 발송했다. 주 캔버라 중국 대사관은 작년 11월 호주 정부에 ‘14가지 불만 사항’을 전달했다. 여기에는 호주가 중국의 경제 제재에 반발해 중국의 남중국해 도발 및 대만을 향한 무력시위를 규탄했다는 점이 포함됐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불만 사항 대부분은 호주의 ‘외국인 투자 제한’ 결정, ‘화웨이의 호주 5G 시스템 구축 참여 금지’ 등 호주의 국내 정책 및 법규와 관련된 것이다.

리 박사는 “이는 중국의 보복이 호주 정부가 자국 정책 결정에 대한 중국의 개입을 거부했기 때문임을 증명한다. 또한 이는 중국과 관계를 회복하려면 호주가 자국의 전략적 지역 주변에서 중국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된다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인식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공산주의 중국과 관계 회복은 호주 바깥에서의 권한을 포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국 내부에서의 권리를 일부 포기해야만 가능하다는 신랄한 지적이다.

그러나 리 박사는 중국이 호주를 상대로 한 제재에 실패하면서, 곤경에 빠졌다고 했다.

리 박사는 “중국의 글로벌 전략 중 중요 수단의 하나는 (미국의) 비교적 작은 동맹국들을 압박해 중국에 더욱 관대한 정책을 취하도록 만들어 미국 연맹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러나 중국의 진정한 위협이 전 세계에 드러났고 호주의 정치인, 기업가, 사회 엘리트에서 일반 시민들까지 중국을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히도록 만들었다”며 “호주는 심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국에 맞섬으로써 초래되는 어려움을 직면할 준비를 마쳤다. 그 시점에서 중국의 압박은 허사가 됐다”고 일갈했다.

대만 국방안전연구원의 수즈윈(苏紫云) 군사전략·산업소장은 “중국 공산당이 호주를 상대로 벌인 무역전쟁은 이전과는 다른 효과를 냈다. 민주진영 국가들은 서로 돕고 보완하며 ‘호주 구매’를 강화했다. 이는 새로운 추세다”라고 분석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 앞서 수개월간 논의했던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기로 했다.

호주 나인뉴스는 “이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첫 번째 중요 무역협정이다. 호주 수출업자들은 이번 무역협정을 통해 더욱 다양한 수출처를 확보하고 불안정한 중국시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영국-호주간 FTA의 경제적 효과를 연간 13억 호주 달러(약 1조1천억원)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동남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싱크탱크인 싱가포르동남아시아연구소(ISEAS)는 올해 2월 총 6억5천만명의 인구를 대표하는 아세안 회원국 10개국의 학자·정책결정자·재계인사·사회지도층인사·언론·기관 1000여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중국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진행된 또다른 설문조사에서 중국과 미국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60%가 미국을 선택했다. 이는 이전 조사 결과와 비교해 10%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필리핀 등 국가 응답자들에게서 미국에 대한 지지율은 모두 증가했다.

/장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