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中기업 항구 임차 검토 “부당행위시 철회 가능”

한동훈
2022년 10월 10일 오전 10:30 업데이트: 2022년 10월 10일 오전 10:30

호주 정부가 최근 중국 기업과 체결한 일부 항구의 장기 임대계약을 재검토했으며, 향후 심사결과를 공표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산둥성에 본사를 둔 대형 에너지회사인 란차오(嵐橋)그룹은 2015년 호주 북부의 준주(準州)인 노던 테리토리 정부와 다윈항의 상업용 항만시설을 5억 호주달러(약 4540억원)에 99년간 임차하는 계약을 맺었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올해 5월 연방의회 총선 이후 출범한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는 출범 직후 이 계약의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 절차에 돌입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지난 6월에도 계약 재검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다윈 항만시설은 호주에서 아지아 및 중국 본토에 가장 가까운 항구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남태평양의 전략 요충지였으며, 대만 유사시에는 중요한 병참 보급항 중 하나로 기능하게 된다.

노던 테리토리의 주도(州都)인 다윈은 호주의 중요한 군사거점으로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다. VOA에 따르면, 미-호주 정부는 다윈 항만시설의 방위설비를 강화하기 위해 1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다윈 항만시설을 임차한 란차오 그룹의 예청(葉成) 회장은 인민해방군 출신 인사이며, 그룹 내 공산당 위원회 서기(당서기)인 허자오칭(賀照清)은 해방군 철도병부단 참모장을 지냈다. 란차오 그룹 역시 해방군와 관계가 밀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싱크탱크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안보전문가 존 코인은 다윈항은 민간 상업 항만시설이지만, 동시에 미군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특히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군이 전방에 병력을 투입하는 길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미군은 소규모 군사기지와 거점(릴리 패드)을 마련하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데, 다윈항은 그중 하나라며 물자 공급과 군사적 인프라에서 중요한 거점이라고 밝혔다.

란차오 그룹의 임차계약은 다윈항의 상업용 항만시설에만 제한된다. 다윈항에는 호주 해군 군함을 위한 정박시설도 있지만, 이 시설은 호주 정부에서 관리하며 란차오 그룹의 접근은 제한돼 있다.

란차오 그룹은 역시 VOA와의 인터뷰에서 “항만시설 운영에 있어 호주 정부의 항구관리 안전규정을 따르고 있으며 국토안보당국의 심사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윈항을 통과하는 미 해군 함대에 대해서도 “특별한 접근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다윈항 임차는 이곳이 인근에서 벌어지는 군사활동에 대한 관측 및 정보염탐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보 차원의 우려를 낳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영국, 호주 3개국이 결성한 인도·태평양 안도협력체계인 오커스(AUKUS) 출범 이후 노던 테리토리 준주에서는 미 해군 항모전단과 기동부대가 작전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ASPI 군사전문가 마크 왓슨은 중국의 대만 침공 시, 호주는 주로 첩보 및 정보 공유를 통해 미군을 지원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노던 테리토리 준주에는 미-호주의 ‘합동방어 시설 파인 갭(JDFPG)’이 위치해 있다.

문제는 지방정부가 중국 기업과 체결한 계약을 중앙정부가 직권으로 파기할 수 있는지다.

호주 ABC의 8월 보도에 따르면, 란차오 그룹의 호주법인 대표 테리 오코너는 “다윈항 운영에는 중국 본사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항만시설 관리 업무는 모두 호주인 직원들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노던 테리토리 준주 정부는 이 항구의 운영사의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참여가 가능하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란차오 그룹의 상업활동에 개입하고 있거나 관련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란차오 그룹이 중국 정부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패배해 정권을 내준 스콘 모리슨 전 총리의 보수당 정부는 지난해 란차오 그룹의 다윈항 임차계약에 관한 국가안보상 심사를 국방부에 요구했다.

국방부는 “계약을 파기시킬 국가안보상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 내리면서도 심사 정보 공개는 거부했다.

새로 출범한 앨버니지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다윈항 계약에 대해 재검토 사실을 알리고 심사결과 공표를 예고했지만, 정확한 검토 범위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다윈을 지역구로 하는 루크 고스링그 하원의원(노동당)은 “정부가 이 계약에 부당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부당 행위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ASPI 전문가 코인은 “앨버니지 정부가 다윈항을 현 상태로 그대로 유지시킬 경우 미-호주 간 군사적 협력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 양국 간 군사협력 거점이 스털링이나 케언스 등 다른 도시로 옮겨가게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