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당(黨)문화]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하)

2007년 03월 5일 오전 10:46 업데이트: 2019년 11월 6일 오후 9:24

상편:당문화는 어떻게 건립되었는가 

【당문화 해체】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하) 


목차

3. 천지를 두려워않고 입만 열면 거짓말과 욕설이며 행위가 저속

1) 입만 열면 거짓말
2) 망나니짓과 욕설을 배우게 하는 당문화
3) 사람의 행위를 저속하게 만든 당문화

4. 당문화를 없애면 정상인의 말과 사유도 불가능

1)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하는 당문화 언어체계
2) 소위 새로운 단어 역시 당문화 사상 속에서 만든 것
3) 사람들의 생활습관이 된 당문화 투쟁의식
4) 당문화 사유방식에서 뛰쳐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결론 


3. 천지를 두려워않고 입만 열면 거짓말과 욕설이며 행위가 저속 

중국은 예부터 “예의의 나라(禮儀之邦)”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으며, 선악에 보응이 있음을 믿는 것은 수천 년간 전해 온 중국인의 전통이다. 설사 그런 명확한 신앙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모두 “하느님(老天爺)”의 존재를 믿었다. 전통적으로 말하면 중국인은 신불(神佛)과 성현(聖賢)의 가르침을 준수하면서 자신의 인격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늘, 땅,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공경하고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며, 온 사회는 예의를 통해 규범화 되었다.

그러나 공산당이 고취하는 것은 “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오직 사람을 개조하여 아무런 두려움도 없게 만들어야만 중공이 정권을 탈취하고 운동을 일으키는 데 이용하기 편리했던 것이다. 만약 사람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고, 사물을 소중히 여길 줄 알며, 천지신명(天地神明)에 대한 경외가 있다면, 이런 사람은 “당의 말을 듣는 것”을 첫 자리에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문화를 건립하는 과정 중에, 중공이 주입한 무신론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중화민족 선조들이 지녔던 천지신명에 대한 경외와 생명의 최후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지게 했다. 당문화의 투쟁사상은 또한 중국인들로 하여금 “천 길 절벽이 우뚝 솟음은 욕심이 없기에 강한 것이며, 바다가 수많은 하천을 받아들일 수 있음은 도량이 크기 때문이다”라는 격언도 믿지 않게 했으며, 또 “자신이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가르침도 믿지 않게 만들었다. 당문화의 유물주의는 중국인들로 하여금 선조들이 애써 모색해 온 심령에서 초월, 인격에서 승화하는 “길(道)”을 철저히 포기하게 하여, 동방에서 온 “자비(慈悲)”와 서방에서 온 “박애(博愛)”를 “인민을 마취시키는 정신적 아편”과 “허위를 감추는 가리개”로 여기게 했다.

사람들의 언어 속에는 “만약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그 사람을 건드리겠다”는 식의 기세가 등등하게 내포되어 있고, “하늘과 싸우고 땅과 투쟁한다”는 식의 광기와 오만으로 가득 차 있다. 행동거지가 저속하고, 하는 말이라고는 온통 거짓말과 욕설이지만,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여긴다.

1) 입만 열면 거짓말 

세계 어느 나라에든 모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많은 나라의 전반 사회적 기제는 성실과 신용을 기초로 하는 것으로, 신용을 중시하는 것은 한 개인이 사회에서 장기간 발을 붙일 수 있는 자본이 된다. 하지만 중공 통치하에서 거짓말은 중공 사회의 “나라를 세운 근본”이 되었으며, 전반 사회는 거짓말로 지탱되기에 거짓말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생존하는 기본 기능이 되었다.

▲ 공산당이 중국인들에게 약속한 것은 지금껏 실현된 적이 없다. | 에포크타임스

중공의 역사는 바로 한 부의 거짓말 역사이며 거짓말은 공산당 통치를 유지하는 주춧돌이다. 공개적이거나 아니면 사적으로나, 내부에 대해서나 아니면 외부에 대해서나,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막론하고, 곳곳이 모두 거짓말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정치투쟁 가운데서 중공을 본보기로 거짓말을 배우게 되었다. 사람들은 당의 요구에 부합하고, 자신이 운동에서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을 따라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즉 공산당과 함께 “영국을 넘어서고 미국을 따라잡자”, “한 묘당 수확이 만근에 달하게 하자”, “형세가 이처럼 좋을 수 없다”는 등의 구호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중국대륙에는 다음과 같은 통속적인 해학시가 전해지고 있다. “촌(村)은 향(鄕)을 속이고, 향은 현(縣)을 속이고, 하급은 상급을 속이며, 성장(省長)은 중앙을 속이고, 한 급 한 급 위로 올라가며 속이는데, 줄곧 국무원까지 속이는구나.” 다시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이런 것에 습관이 되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도리상 당연한 일이며 전 세계와 사회는 바로 이렇게 운행되고 있다고 느낀다.

영화 《핸드폰(手機)》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회현상의 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바람을 피우기 위해, 정교한 거짓말을 엮어 다른 사람을 속이는데, 가정은 거짓말을 만들고 거짓말을 허물어뜨리는 전쟁터가 되었다. 이 영화는 이뿐만 아니라 생활하면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수많은 전형적인 거짓말을 연출해냈다. 전 사회에 핸드폰 공황증이 나타났는데, 핸드폰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 때문에 거짓말이 쉽게 폭로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영화감독의 말에 의하면 “많은 경우 거짓말은 우리의 생활을 지탱해 준다.”

전통 관념 중에서, 도가는 진인(眞人)이 되는 것을 주장하며, 불가에서는 출가인은 거짓말(?語)을 하지 않음을 주장하며, 유가에서는 신(信)을 주장하는데,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공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오상(五常)으로 삼았다. 그 중 사람과 사람간의 성실과 신용[誠信]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미덕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공자 역시 “사람으로서 신용이 없다면 그 가능함을 알 수 없다(人而無信,不知其可 《논어 위정》)” 라고 하였다. 즉 사람에게 만약 신용이 없다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 역시 어찌 이와 같지 않겠는가.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일찍이 스승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가르침을 청한 적이 있다. 공자는 “첫째는 백성들로 하여금 의식이 풍족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국가가 강대한 군대를 가지는 것이고, 셋째는 신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공이, “만약 부득이하게 그 중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마땅히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군대를 버려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자공이 또 묻기를 “만약 또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풍족한 식량을 얻지 못할지라도, 신용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신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나라는 조만간 멸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역주: 이상의 내용은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내용을 백화문으로 풀이한 것으로 한문 원문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足兵,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유물론은 물질이 1차적이라고 강조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문제를 생각할 때 모두 물질이익에서 출발한다. 전통적 관념이 비판과 부정을 당한 후, 중국인들은 거짓말에 대한 그 어떤 거리낌이나 도덕에서 오는 제약도 없어졌다. 전반 당문화 체계는 또한 거짓말을 하는 것을 고무격려하기에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하나의 본능적인 행위로 변했다. 오직 나에게 유리하기만 하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하늘도 두렵지 않고 땅도 두렵지 않다. 그리하여 거짓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비단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할뿐만 아니라, 거짓말을 할 때 미리 그 다음에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하면 더욱 그럴듯하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성실과 신용을 지키지 않는 사회현상을 오직 이익만 추구하는 서양 “자산계급”의 특유한 시장본성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서양 선진국에서 이미 수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들 국가들은 결코 시장경제를 실행했다는 이유로 사기꾼사회가 되지는 않았다. 반대로 서방국가들은 성실과 신용을 매우 중시하며, 성실과 신용은 가장 불가결한 개인의 인품이자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서방에서 성실과 신용은 이미 경제활동에서 가장 기본적인 준칙이 되었으며, 또한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이익과 신의(信義) 사이에 충돌이 생길 때, 사람들은 신의를 선택하는데, 오직 신의만이 지속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사기는 단기적으로는 수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기업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서방 국가에서 성실과 신용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한 걸음도 떼기 힘들다.

당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할 때 또한 두 벌의 언어 체계 중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표현하도록 만들었다. 바로 앞에 한 벌이 있고, 뒤에는 다른 한 벌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덕으로 나라를 다스림을 수행하고…, 철저하게 반 부패투쟁을 전개하자.”[구이저우(貴州)성 당서기 류팡런(劉方仁)의 발언. 그러나 그는 660여 만 위안을 수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나의 가장 큰 염원은 앞으로 5년 내에 아직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160만 인구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윈난(雲南)성 성장 리자팅(李嘉廷)의 말, 그는 1800만 위안을 수뢰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광시(廣西)성에는 아직도 700만에 달하는 인구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주석을 담당하고 있는 나 이 사람은 밤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청커제(成克傑)의 말, 그는 2000여 만 위안을 수뢰하여 사형처벌을 받았다.]

▶”부패에 반대하고 청렴을 제창하는 사업은 한시라도 느슨해져서는 안 되며, 시종 두뇌가 청성해야 하고, 기치가 선명해야 하며, 태도가 단호해야 한다.” [상하이 당서기이자 정치국위원인 천량위(陳良宇)의 발언. 그는 수십억에 달하는 사회보험기금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당해 조사를 받고 있다.]

……

마찬가지로 일반 민중에게도 역시 두 개의 얼굴, 두 벌의 언어체계가 존재한다. 정치적 태도를 표시하거나 정치학습 체험을 쓸 때는 아주 냉담한 한 벌의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고, 생활 속에서는 또 다른 한 벌의 비교적 인간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공산당원의 두 얼굴좌: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청렴결백, 멸사봉공을 주장
우: 사적인 장소에서는 부정부패, 퇴폐향락을 추구 | 에포크타임스

사람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이것은 중공의 정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이미 사람들의 사유습관으로 변해버렸다. 거짓말은 사회적으로 성실과 신용의 위기를 초래했고, 최후에는 일반 백성들이 사회도덕이 타락한 후의 쓴 열매를 삼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면적으로 부패되고, 전면적으로 가짜를 날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모두 “법은 민중을 책임지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중공이 조성한 이 성가신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른다.

2) 망나니짓과 욕설을 배우게 하는 당문화 

거짓말을 하는 것 외에도, 모두 상스러운 욕설을 말하는 것 역시 당문화 중 한 가지 특색이다. 전통 관념은 좋고 나쁨을 구분함에서 품행과 도덕을 보지만, 중공의 역사유물주의는 “혁명”과 “계급”의 표준으로 좋고 나쁜 사람을 구분하여, 중화민족의 전통예의를 여지없이 짓밟아버렸다.

파리 코뮌은 세계 역사상 최초의 무산계급독재정권으로 공산당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룸펜프롤레타리아를 자칭한 파리 코뮌 참가자들은 나무랄 데 없는 진짜 깡패였다. 당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닭과 개 도둑으로 생활하던 이런 사회깡패와 건달들이 공산주의의 깃발을 치켜들고 파리 시내를 몽땅 약탈했다. 파리 코뮌 룸펜 봉기에 계발 받고 소련 공산당의 배양을 거친 중국 공산당 역시 깡패 무산자들에 의해 일어났다. 중공은 “깡패와 건달은 원래 사회에서 무시 받는 무리이긴 하지만, 사실은 농촌혁명에서 가장 용감하고 가장 철저하며 가장 단호한 자이다.”라고 여겼다. 마오쩌둥은《중국사회 각 계급의 분석(中國社會各階級的分析)》에서 깡패 건달의 혁명적 역할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는 대신, 도리어 건달운동이 “아주 좋다”고 큰 소리로 외쳐 댔다. 마오쩌둥은 또 1964년 8월 18일 《철학문제에 관한 강화(關於哲學問題的講話)》에서 “무슨 베이징 대학, 인민대학이란 말이냐! 그래도 그 대학이 좋다면, 나는 바로 녹림(綠林)대학 학생이며, 그 곳에서 뭘 좀 배웠다.”라고 말했다.

1927년 10월 펑파이(彭湃)가 룸펜 프롤레타리아들을 이끌고 광둥(廣東)성 하이펑(海?)현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켜, 중국 최초의 농촌소비에트정권을 건립했다. | 에포크타임스

중국고대에도 건달이 천하를 얻은 예가 있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은 젊었을 때 패(沛)현에서 정장(亭長)을 맡았는데 주색을 좋아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러나 그런 그도 정권을 획득한 후에는, 역시 무력으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도리를 알게 되었다. 그는 유학자인 숙손퉁(叔孫通)에게 명하여 그의 문하생들과 함께 조의(朝儀)를 제정하게 했으며, 도가의 사상을 이용하여 도덕인의(道德仁義)와 청정무위(?靜無?)를 천하의 수양과 생존의 이치로 삼게 했다. 즉, 고대에는 건달도 정권을 유지함에 정통문화를 써야지 건달수단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중공은 정권을 탈취한 후에도 계속해서 건달수단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당문화 체계 속에는 곳곳마다 건달들의 포악무도한 기세로 가득 차 있다. 지식과 도리가 해박한 것은 “봉건, 자산계급, 수정주의”이고, 지식인은 “아홉 번째로 냄새나는 놈(臭老九)”이며, 저속하고 상스러운 것이 가장 “혁명정신”이 풍부한 것으로 되었다. 온 손에 굳은살이 박인 노동자는 마음이 가장 붉으며, 농민의 발에 묻은 쇠똥이 가장 향기롭다. “그들은 비록 손이 더럽고 발에는 쇠똥이 묻어 있지만, 그래도 소자산계급 지식인보다는 다 깨끗하다.” 당신이 만약 쇠똥이 구리다고 한다면 바로 당신의 계급감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에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모두 반드시 쇠똥이 향기로우며 냄새를 맡을수록 향기롭다고 말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이런 저속한 문화에 대한 중공의 선양과 찬미를 통해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체에서 사람들의 생활습성을 개조했으며, 사람들을 말만 하면 욕설이고 행위는 저속하게 변했다. 인터넷 토론방은 일부 사람들이 각종 저속하고 악의적인 언어로 욕설을 마구 해대며 인신공격을 하며 행패를 부리는 장소로 변했다. 당문화에 의해 주입된 증오와 협애한 “애국주의”의 편견 아래 민주, 인권, 대만, 해외, 파룬궁, 종교 신앙, 외교관계 등의 화제는 모두 저속하게 퍼붓는 독설의 희생양이 되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 에포크타임스

최고 지도자의 “바지를 벗고”, “꼬리를 자르며”, “방귀를 뀐다(헛소리라는 의미)”는 등의 거친 언어를 교과서에 써 넣은 데서부터, 문화혁명의 전민운동 과정에 깡패행위와 언어를 고무 격려했고, 또 80년대 이후에는 《상해탄》류의 깡패기업가를 묘사한 영화와 TV작품을 본보기로 하는데 이르기까지 깡패는 이외로 당당하고 성대하게 모두가 보고 배우고 모방하는 대상이 되었다.

신앙을 상실하고 이상이 파멸해 버린 현재 사회에서 권력과 금전은 사람들이 유일하게 추구하는 목표이자 흥분하는 대상이다. 사람들은 진화론 학설의 영향을 받아 다투어 다른 사람을 위압하는 강자가 되려 하며, 성공하기 위해선 “깡패의 천박함”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일반인들은 함부로 사람을 때릴 권력은 없지만 욕설을 통해 약자를 두렵게 만들고, 자신의 담을 크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깡패인데 누구를 두려워하랴?”는 것은 바로 욕설 배후에 있는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는 심리상태의 진정한 표현이다.

3) 사람의 행위를 저속하게 만드는 당문화 

만약 당신이 직접 한 중국인에게 당신의 행위가 저속하다고 한다면, 아마 열에 아홉 명은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매우 정상인데 어디서 온 저속인가라고 의아해할 것이다.

2006년 9월, 중국 국가 관광국은 관방사이트에 민중들의 반응이 비교적 보편적인 중국대륙 관광객들이 국내외 여행 중 저지르는 비문명적 행동들을 공포했다.

중국 공민이 해외여행에서 흔히 나타나는 비문명적인 행동양상. 

1. 쓰레기나 폐기물을 함부로 버리며, 아무 곳에나 가래를 뱉고 코를 풀며 껌을 뱉고, 화장실을 사용한 후 씻지 않고 위생을 지키지 않으며 더러운 흔적을 남긴다.

2. 금연표지를 무시하고 맘대로 흡연을 하며, 공공의 공간을 오염시켜 타인의 건강을 해친다.

3. 공중교통을 사용할 때 서로 자리를 다투며, 쇼핑을 하거나 참관시 새치기를, 줄을 서서 기다릴 때 황색선을 넘는다.

4. 차량과 선박, 비행기, 레스토랑, 호텔, 관광 명소 등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며, 친구들을 부르고, 큰 소리로 게임을 하며 술을 권하며, 한곳에 모여 떠들썩하다.

5. 교회, 사찰 등 종교장소에서 장난치고 놀며, 현지 주민들의 풍속을 존중하지 않는다.

6. 대중이 모인 공개 장소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거나, 팔을 드러내고 웃통을 벗으며, 바짓가랑이를 무릎 위까지 걷고 다리를 꼬고 앉는다. 배불리 먹은 후 입을 가리지 않고 이를 쑤시며, 침실 밖에서 잠옷을 입거나 의관이 단정하지 못하여 눈에 거슬린다.

7. 상스러운 말을 연발하고 거동이 저속하며 제멋대로 하고, 분규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 닥치면 크게 화를 내고, 서로 악의적인 언어로 맞받아치며 기본적인 에티켓이 부족하다.

8. 정찰제 점포에서 가격을 흥정하고, 외국인을 강제로 끌어당겨 사진을 찍거나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9. 유흥가에 가거나 도박활동에 참가한다.

10. 쇼핑을 하지도 않으면서 장시간 장소를 차지하고, 뷔페에서 음식을 가득 담아 낭비한다. 호텔을 떠날 때 호텔 비품을 가져가며, 서비스를 받은 후 팁을 주지 않고 작은 이익을 탐낸다.

국내에서 쉽게 보는 비문명적인 행동은 위 10가지와 대동소이하나 거기에 일부 내용들이 추가된다. 예를 들어, 관광 명소를 참관할 때 문물이나 서비스 시설에 함부로 낙서를 하고, 출입이 금지된 녹지를 짓밟으며, 나무에 올라가 꽃과 가지를 뜯고 꺾는다. 권고를 듣지 않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며, 돌을 던져 동물을 때리거나 동물의 안전에 위협을 주는 등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셈이며 사회적인 지위와 교육 정도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마저도 이 지경이니, 중국사회에서 생활하는 일반 사람들은 이런 저속한 행위에서 더욱 저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어떠한가? 사실 이렇지 않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씌어있는 “조용히 해주세요(請保持安靜)”라는 푯말은 오직 중국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중문 표어를 보았을 것이다. 파리의 공공장소에 중문이 씌어 있는 곳은 비교적 드문 것으로 외국은 물론이고 프랑스 관광객들조차 이런 “예우”는 받지 못한다. 태국 왕궁 화장실에는 눈에 잘 띄는 곳에 중문으로 “용변 후에는 물을 내려주세요(請便後沖水)”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미국 진주만에 있는 쓰레기통에도 역시 중문으로 “쓰레기통은 이곳에 있습니다(??桶在此)”라고 제시해 놓았다. 이렇게 간자체로만 만들어진 경고표지는 또한 중국인들의 해외관광 주요 목적지인 프랑스, 독일, 일본, 태국, 싱가포르 등에서도 빈번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예전의 중국인들은 어떠했을까? 중국은 지난 수천년 동안 예의의 나라로 불려왔다. 중국 전통의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의 전통 육예 중에서도, “예(禮)”가 처음에 나오는데 이는 예의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전통을 잘 설명한다. 《논어》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공자가 아들인 공리(孔鯉)에게 경고하며 말하길, “불학예 무이립(不學禮,無以立).”이라고 했다. 의미는 “만약 예의를 배우지 않으면 발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집집마다 알고 있었던 《삼자경(三字經)》에서는, “자식 된 사람은 반드시 어릴 적부터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지켜야 할 각종 예절에 익숙해야 하며, 예절과 의식을 학습해야 한다.”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일부 저명한 “가훈(家訓)”, “학규(學規)” 중에도 모두 일상적인 의식주과 행동,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 등에 관한 예의규범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교제함에 어떻게 상대방을 부르고 서로 어떤 자세로 서서 마중하고 배웅할 것인가 하는 등등에 모두 예의 규정이 있다. 비록 식사를 하더라도, 일거일동에서 자신의 수양을 나타내야 했는데, 이것을 가리켜 식사예절(食禮)이라고 한다. 행위가 예의에 부합되는 것은 수양이 있는 표현이며, 그렇지 않으면 고상한 자리에 들어갈 수 없었다. 말하자면 당시 사회의 주류는 문명, 수양, 예의, 행위가 고상하고 신분에 어울릴 것을 요구했으며, 만약 사회에서 받아들이게 하고 싶으면 몸을 닦고 덕을 길러 자신의 행동을 규범해야 했다.

중국전통예의 | 에포크타임스

당송(唐宋) 이전에 중화문화는 우아함의 대명사였고 중국은 예의를 수출하는 나라였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중국 상인이 동남아로 가면 예의의 나라에서 온 고귀한 사람이라 하여 심지어 숙식마저도 무료로 해주었다고 한다. 일본과 조선도 줄곧 당나라 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아왔다. 지금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전히 중국에서 전해진 일부 예의규범을 계승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아직도 경의를 표시하는 우아한 언어와 행동거지를 비교적 중시한다.

중공의 당문화 속에는 진화론의 약육강식 부분이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밀어내도록 격려한다. 사람 개체에 대해 존중하는 부분이 없으며 저속하고 비열함을 선양하여 사람들은 개인행동 중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며 제멋대로이다.

현재 대륙민중들의 “성(性)”에 대한 인식은 더욱 더 “시대와 함께 진보하여”, “성”, “가정”, “혼인”을 나누어 대하기에 이르렀으며 “성”을 사회적인 오락 활동으로 간주하는데, 매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오히려 진보라고 여긴다. 이런 저속한 행위는 사회윤리의 혼란을 초래하여 수천 년 이래 지속되어 온 중국인의 가정 관념을 모두 파괴했다. 어떤 사람은 외국인들도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지 않은가라고 여긴다. 그러나 서양사회에서는 그곳의 종교, 도덕 및 법률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정상 궤도에서 그리 많이 벗어난 것은 아니다. 지금은 서양 사람들이 대륙에 오면 대륙의 성 개방이 이미 서양을 훨씬 초과했다고 느낀다.

심리학에는 아주 유명한 한 가지 현상이 있는데, 바로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효과이다. 다시 말해, 개인은 언제나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따르는 경향이 있으며 인식과 행위에서 자신도 모르게 다수 사람들과 일치를 유지하려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결코 고립된 것이 아니라 한 단체 중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저속한 당문화가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위생습관이 나쁘고, 교양 정도가 낮은 사람을 본보기로 하기에 사람들이 이를 흉내 내지 않으면 자신마저도 무리와 잘 어울리지 못해 이상하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이런 것에 습관이 되어 자신의 행위가 이미 당문화에 의해 저속하게 변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중공은 진화론의 자연선택, 적자생존의 사유방식에 근거하여 새로운 것은 선별을 거친 것으로 역사발전 법칙에 부합되며 낡은 것보다 더욱 좋고 고대 사람은 모두 낙후하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중공 이데올로기 정치에 따라 정확한 당문화를 표준으로 삼아, 무분별하게 전통사상, 전통문화, 전통풍속, 전통습관과 문명을 파괴했으며 예의교양을 봉건주의라고 비판하고 정결한 문명을 자본주의라고 혐오하면서 수천 년간 지속된 중국 문명을 파괴하였다.

4. 당문화를 없애면 정상인의 말과 사유도 불가능 

오늘의 중국인은 당문화를 떠나서는 어떻게 사유해야 할지 모르며 정상인의 말을 모른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이 너무 “지나치며”, “모욕”적이라고 여기겠지만 사실은 정말 그렇다. 왜냐하면 당문화의 각종 이론, 언어 체계와 사유방식이 오래 전에 이미 사람들 사상의 구석구석까지 침투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중공의 통치 과정에서, 각종 주입수단을 통해 당문화로 구성된 사회 환경을 육성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고 듣는 사이에 당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동시에 전통문화와 전통 관념을 부정하고 유불도를 비판하여 버린 후, 중국인들로 하여금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과 투쟁사상을 받아들이게 하여 당문화 위에 건립된 중국인의 일련의 사유방식과 선악표준을 만들었다. 중공의 논리는 대중의 논리가 되었고 중공의 언어는 대중의 언어가 되었으며 이러한 논리와 언어는 반대로 또 사람들의 사상을 강화하였다. 당의 언어를 보통 대중의 일상어휘로 변하게 하여 진일보하여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스며들게 하여 근본적으로 당의 의지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융합시켰다.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습관적으로 두뇌 속의 당문화 사유를 자신의 사유로 간주한다.

그 일련의 언어, 행위와 사유 양식의 내재적 함의가 변이된 것은 중공이 강제로 가한 것이지 결코 정상적인 사회의 표현방식이 아니다. 오직 당문화에 물든 사람만이 비로소 이해하고 해독할 수 있다. 이렇게 강제로 주입하여 형성된 당문화의 언어 방식, 행위와 사유 방식이 전 방위적으로 사회 구석구석에 널리 퍼진 현상은 중국의 전통적인 고대 사회나 현대 주류사회를 막론하고 모두 종래로 나타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중공 통치하의 사람들의 언어, 행위와 사유 양식은 모두 중국 전통사회와 세계 주류의 가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중공 지도자들이 외국을 방문할 때 하는 말과 행위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괴상하며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게 한다.

1)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하는 당문화 언어체계 

당의 언어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현재 중국인들의 생활 속에 존재한다. 자연적인 언어와 다른 점이라면 당이 인위적으로 구축한 “습관화된” 일체의 정치언어체계가 정상적인 사회에서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생활, 사상과 언어교제의 내용을 대체했다는 점이다. 이리하여 중국인들은 바로 당의 언어로 만들어진 사회구조 속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중공이 정권을 잡은 후, “인민(人民)”은 아마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된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정부는 “인민정부”라고 부르고, 군대는 “인민군대”라고 부르며, 화폐는 “인민폐”라고 하는데 심지어 걷는 길마저도 “인민로”다. 또 “인민방송국”, “인민광장”, “인민공원”, “인민병원”, “인민은행” 등이다. 다른 모든 공산국가와 마찬가지로 한편으로는, 없는 곳이 없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민”의 각종시설, 기구, 단체는 매 사람의 일체 이익과 권리가 마치 전부 구체적인 실현을 얻어 사람들이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처럼 암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민”에 이처럼 신성한 영광이 씌워져 평민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전긍긍하며 도대체 누가 인민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1970년대에 어떤 사람이 “인민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는데 “인민 영업원”의 태도가 무지막지하여 이 고객이 질문했다. “이것이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인가?” 그러자 “인민을 위해 봉사하느냐고? 당신이 인민을 대표하는가?”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 고객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물론 똑 같은 상황은 “인민정부”, “인민경찰”과 접촉에서도 발생한다…. 중국에서 비록 “인민”이란 법률적인 정의는 없지만 중공 당문화 중의 “인민”에는 특수한 함의가 있다. 즉, 오직 중공만이 “인민”을 대표할 수 있고, 누가 “인민”인지 아닌지 확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민”이 아니라면 곧 “인민의 적”이 되며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통상 “한 줌”이라는 또 하나의 특정된 칭호가 붙여지는데 설사 이 “한 줌”이 어떤 때는 수백 수천만에 달할지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1957년 중공에 의견을 제기한 “우파”, 1999년 여전히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 등이다. “인민”이라는 이 단어는 비록 중공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당문화 중에서 특정한 함의를 부여 받았다. 사람들이 각종 장소에서 습관적으로 “인민”, “한 줌” 등의 어휘를 사용할 때 이미 누가 “인민”이고 누가 아닌지에 대해 중공이 임의로 확정한 경계선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게 된다. 혹은 중공의 의도에 따라 정치적으로 경계선을 긋고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판단하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생활 곳곳에 침투한 당문화 단어는 아직도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중공이 정권을 건립한 후부터 줄곧 20세기 말까지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 모두 “일자리를 분배” 받았다. “분배”라는 이 단어는 바로 “당”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며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잠재의식 중에 자신의 밥그릇은 중공이 “부여”한 것이지 자신이 노력을 거쳐 얻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매우 많은 경찰들이 민중을 박해하는 중공을 추종하면서도 당당하다는 듯이 “공산당이 나에게 밥그릇을 주었으니 나는 공산당의 말을 따라야 한다.”라고 말한다.

당 언어 체계는 당의 이데올로기, 당의 의지, 당의 운행실시의 메신저이자 도구로서 중공은 일체 국가수단과 국가기능을 이용하여 당 언어 체계를 건립하고 규범화하여 사용하는 것을 완성했다. 표준어를 만드는 모든 기구 즉, 언론매체는 모두 관방이 점유하는 동시에 중공 특유의 중앙선전부 및 그 부속 선전계통, 간부 양성과 조직생활계통, 중앙과 각급 당 학교 등 사상교육기구를 배치하였다. 역대로 신문, 문건, 관방의 강화(講話), 학교 교재는 모두 통일적으로 당의 언어를 전파하는 제도방식이었다. 중공은 또 여러 차례의 정치운동 가운데 대량의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냈다. 각급 조직은 군중을 이끌고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고 누적시켜 당전통(黨傳統), 당문화(黨文化)의 기초를 형성했다. 문예, 영화, 방송, 희극을 규범화하여 당 문화인, 당문화의 모범을 수립했으며 당 언어 표준화를 추진했다. 여러 차례 정치 운동 중에서 문자옥(文字獄 역주: 문장이나 글로 인한 화를 말함)이 일으킨 두려운 역할은 거대하고 오랫동안 지속된다. 당 언어 수립을 완성한 후, 중공은 또 법을 만들어 그것이 합법성을 구비하도록 했다. 이 일체는 모두 당 언어 체계가 중국인의 대화를 주도하게 만들었다. 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필요할 때면, 모두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 단락 한 단락씩 극히 표준적인 당팔고(黨八股-중국공산당의 형식적이고 교조적인 지시문이나 문장)의 말을 할 수 있다.

“거짓말을 천 번 반복하면 진리가 된다”는 말은 결코 단지 수사적인 뜻만 지닌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당팔고(黨八股)를 싫어하지만 중공의 문건, 연설, 회보, 총결, 신문사설, 각급 학교 교과서, 뉴스, 텔레비전, 영화 등에서 대량으로 반복되는 것은 바로 중공이 제조한 그러한 당 언어인데 이런 말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싫어한다고 하여 결코 그 역할을 발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들은 언어부호의 형식으로 사람들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 저장되어 수시로 역할을 일으켜 사람들의 사상과 행위를 좌우지한다.

한 요리사가 있었는데 그의 가족이 공산당의 박해를 심하게 받아 나중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하루는 그가 식당 주방에서 고기를 썰면서 한 칼 한 칼씩 박자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정말 흥겨웠다. 그러나 공산당을 극도로 혐오하고 미워하는 그가 부른 노래는 뜻밖에도 “마오 주석의 책은 나의 애독서에요, 천 번 만 번 꾸준하게 열심히 읽어요.”였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이것을 지적해 주자 그 자신도 놀라서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사람들의 사상 중에는 너무나 많은 당문화의 것과 당문화의 언어가 주입되어 사람들의 사유논리와 말을 하는 데에서 자연적인 부분이 되었다.

중공이 정권을 건립한 후, 백성들은 중공 정교합일의 독재통치 속에 빠졌다. 그러나 중공은 도리어 이것을 “해방”이라고 선전했다. 중화민족 정통문화에 대한 중공의 상해 및 중국인에 대한 박해는 그 어떠한 다른 민족보다 심했지만 중공은 도리어 그것을 “신중국(新中國)”이라고 칭했다. 중공 루이진(瑞金-역주: 장시성의 지명, 중공의 혁명 근거지) “소비에트”, “혁명정권”이 종사한 것은 사실 국가분열운동이었으며 소련에 의지한 매국정권이었고 중공의 “장정(長征)”이란 사실 바로 한 차례의 대 도망이었다. 난니완(南泥灣) “대생산 운동”은 사실 불법으로 아편을 심는 운동이었고, 중공의 옌안(延安) “정풍운동”은 사실 한 차례 인간지옥과도 같은 정신박해였다. 수천 만 명이 굶어 죽은 “3년 자연재해”는 사실 명백한 인재(人災)였고, “문화대혁명”은 사실 문화에 대한 대(大) 파괴, 전 국민에 대한 대 세뇌와 정치적인 대 숙청이었으며, “개혁개방”은 사실상 독재체제의 고압을 잠시 느슨히 한 것으로 중공이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한 수단이었다…. 이런 것들은 만약 역사 사건의 진실한 면모를 10분의 1만 환원한다 해도 곧 중공이 만들어낸 기만적인 단어들을 충분히 개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중공의 주입과 언어농단으로 사람들은 줄곧 이런 단어들을 계속 사용하고 있으며 만약 이러한 단어를 없애버린다면 많은 사람들은 정말로 어떻게 그 역사사건을 묘사하고 사고해야 할지 모르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중공의 옌안(延安)시절, 난니완(南泥灣) 지역에서 벌인 “대생산 운동”은 사실 양귀비를 재배정책이었다.| 에포크타임스

분명히 중공의 박해를 받았건만, 일단 ‘누명을 벗겨주면(平反)’ 바로 또 그것에 대해 감지덕지한다. 인권을 제기하기만 하면 바로 ‘정치를 한다’고 말하며, 중공을 비평하는 서양 사람이 있으면 곧 ‘반중국 세력’이라고 말한다. 해외 화인(華人)이 중공의 폭행에 항의하면 곧 ‘애국이 아니다’, ‘(중국의 명예에) 먹칠 한다.’고 한다. 중공이 대량의 영토를 팔아먹었다는 것을 듣고서도 도리어 매국노를 위해 곤경에서 벗어날 계기를 찾아주며, 당이 이렇게 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멀리 내다보는’ 것이(자기를 팔아먹어도 그 놈을 도와 돈을 센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일 년 365일간 주입하는 것들을 들으면서 아주 자연적이라고 여기지만, 중공 악행을 폭로하는 몇 통의 전화, 우편물을 받거나 혹은 몇십 분짜리 진상 삽입방송을 보고는 곧 ‘사회질서를 파괴’한다고 여긴다. 폭행을 한 범인에 대해 사람들은 진상을 추구하고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을 요구하지만, 글과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잘못을 저지른 공산당의 죄악에 대해 사람들은 오히려 공산당은 착오를 쉽게 범하지만 또한 ‘착오를 시정하는 용기가 있다’고 여긴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사람들의 사유 중에, ‘누명을 벗겨주다(平反)’, ‘정치를 하다’, ‘반중국 세력’, ‘애국이 아니다’’, ‘먹칠하다’, ‘멀리 내다보다’, ‘사회질서를 파괴하다’, ‘착오를 시정할 용기가 있다’는 등은 모두 중공이 큰 소리로 선전하는 어휘들인데 도리어 오래 전부터 이미 사람들의 논리사유의 이론기초가 되었다.

현대 중국에서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매우 많은 말들은 모두 중공 당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단어들이다. 예를 들면 ‘동지’, ‘관철’, ‘지도’, ‘호소’, ‘기본원칙’, ‘기본노선’, ‘사회주의 초급단계’, ‘××× 특색’, ‘×××를 끝까지 추진하자’, ‘공산당과 맞서면 좋은 결말이 있을 수 없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 중국이 없다’, ‘아버지가 친근하고 어머니가 친근하다 하지만 어찌 공산당보다 더 친근하랴’, ‘공산당의 말을 듣고 공산당을 따라가자’, ‘마오 주석의 전사는 당의 말을 따른다’, ‘단결이 곧 힘이다’, ‘붉은 별이 나를 비추어 전투하러 가게 하네’, ‘마오쩌둥 사상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치켜들고’, ‘사회주의의 대도(大道)를 걸으며’, ‘혁명은 손님을 초대하여 접대하는 것이 아니다’, ‘온통 너무 좋은 형세이다’…. 이런 당문화 언어를 없애버린다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표현마저도 매우 힘들다고 느낄 것이다. 중국인에 대한 당문화 언어의 통제는 너무나 깊어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다.

2) 소위 새로운 단어 역시 당문화 사상 속에서 만든 것

당의 언어는 정지하여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형성한 당문화 사유는 마치 가공공장처럼 기계와 생산 공정이 모두 이미 갖추어져 있어 새로운 정보와 사회현상이 들어오면 당문화 사유의 가공을 거쳐 곧 새로운 당의 언어가 된다. 그것들은 당의 체계에 속하는 것으로 당이 원하는 내포를 가지고 있지만 당의 이데올로기 내부의 적나라한 어휘가 아니기 때문에 분간하기가 더욱 어렵다.

현재 인터넷 사이트상에 ‘FB’라는 영어 이니셜이 유행하는데, 이 두 개의 알파벳은 원래 부패(腐敗 Fa Bai)라는 단어의 한어병음 머리글자이다. 일반적으로 밥을 먹고 모이는 것을 대표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곧 단도직입적으로 “오늘 부패하러 갑시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 단어는 민간에서 탄생했고 그 자체가 중공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당문화 사상의 영향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본래 부정적인 부패행위를 정규화하여 부패행위에 대한 사회의 도덕압력을 약화시켰으며 또한 사실상 부패현상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여 중공의 부패는 무슨 큰일이 아님을 암시한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만약 습관적으로 일상적인 정상행위를 도둑질이라고 칭한다면 진정한 도둑은 곧 더는 자신의 행위를 수치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약세단체(弱勢群體)’라는 단어도 민간에서 생겼는데 빈번히 사용함에 따라 2002년 중공 정식문건 중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통상적으로 사회변혁의 ‘대조류’에 적응하지 못하고 약화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어 이전의 국유기업 실업자, 농민, 노동자 등이다. 당문화의 약육강식 및 적자생존이란 사설(邪說)의 영향 하에 사람들은 흔히 이들 단체는 ‘생존경쟁’에서 열세에 처했기에 사회체제의 변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사람들이라고 여긴다. 이는 근본적으로 ‘약세’를 덮어 감춘 것인데 사실 중공의 비인간적인 독재제도가 이런 현실을 조성한 것이다. 이 단체는 사실 중공 독재제도의 압박을 받고 권익을 박탈당한 단체이다.

중국 최대의 ‘약세단체’인 농민을 예로 든다면, 중국 농민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장기간 낮은 지위에 처해 있으며, 이것은 완전히 중공의 차별정책으로 조성되었다. 이러한 차별은 악명 높은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과도 비교할 수 있다. 여기서 중공이 40여 년 전에 편집한 초등학교 지리 교과서에 기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개황 중 한 단락을 인용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은 중국 농민과 아프리카 흑인의 처지를 비교해도 무방할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연방정부는 《통행증법》, 《인종 격리법》, 《노역법(奴役法)》 등 70여 종의 인종차별과 압박에 관한 법령을 발표했는데 각각의 법령은 마치 하나의 족쇄처럼 아프리카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깨끗이 박탈했다. 《통행증법》을 예로 들어 말한다면 이 법령은 16세 이상의 아프리카인은 반드시 ‘신분증’, ‘이전증’, ‘구직증’, ‘납세 영수증’, ‘거주민 증’ 등 20여 가지 증명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수시로 경찰의 검사에 대비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만약 서류가 모자라거나 휴대하지 않으면 곧 ‘무직 유랑민’으로 간주되어 체포당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연방경찰국의 보고에 의하면 1958년 한 해 동안에만 6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통행증법》과 《검사법》을 위반하여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문화의 세뇌 하에서 중공의 차별정책을 뚜렷이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합법적으로 항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표성을 띤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생겼다. 예를 들면, ‘중국특색’, ‘네 가지 현대화’, ‘초급단계’, ‘소강(小康) 사회’, ‘샤강(下崗)’, ‘취직 대기(待業)’, ‘비공유제 경제’, ‘사상도덕건설’, ‘가난 부조(扶貧)’, ‘삼강(三講)’, ‘세 가지 대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림’, ‘시대와 함께 진보’, ‘건강하지 못한 내용’, ‘유해 정보’, ‘평화적인 굴기(崛起)’, ‘과학 숭상’, ‘과학발전관’, ‘조화 사회’, ‘집권능력 향상’ 등이다. 이런 새로운 단어들도 모두 당문화의 산물로서 중공에 의해 특정한 내포를 부여 받았으며 이런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중공의 통치를 수호하려는 것이다. 정보가 해로운지 여부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공에 대한 ‘위해(危害)’가 있는가를 말하며, ‘굴기’를 높이 외치는 것은 사람들에게 민족주의라는 그림의 떡을 그려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의 위기를 망각하고 중공을 옹호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중공은 ‘세 가지 대표’ 이 후에 또 ‘여덟 가지 영광 여덟 가지 치욕’을 만들어냈는데 사실 그 속의 모든 내용은 다 당문화 범위 속에서 말하는 것이다. 봉건미신이란 무엇인가, 과학을 존중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애국주의란 무엇인가? 등 완전히 중공 당문화의 정의이다. 공산당에 부합되면 바로 ‘과학을 존중’함이요, 공산당을 옹호하면 곧 ‘애국주의’이다.

3) 사람들의 생활습관이 된 당문화 투쟁의식

전통적인 중국인의 사유 속에서, 유가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 것을 주장하며, 불가는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것을 중시하고, 도가는 자연스러움을 따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도리어 상당 정도 중화민족 5천년의 휘황한 문명역사를 계급 사이에 권력과 이익을 쟁탈하는 투쟁의 역사라고 묘사하는 중공의 말을 받아들인다. 오늘날 많은 중국인들의 눈에는, 심지어 많은 지식인들이 보기에도 중국의 빛나는 24사(二十四史)도 단지 한 부의 물고 뜯고 의심하고 속이며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는 등 뻔뻔하고 간교한 음모의 투쟁사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모두 역사를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뜻이 밝아지고 이치가 밝아지며 지혜를 증진시킨다고 믿는다. 그러나 만약 중국의 역사가 정말로 중공이 묘사하는 것처럼 간사함으로 가득하고 온통 암흑이라면 사람들은 무엇으로 뜻이 밝고 이치가 밝아질 수 있겠는가? 이처럼 암흑이고 우매한 민족이 또한 어찌 과거의 휘황찬란한 고대문명을 창조해 낼 수 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외부세계는 사실 바로 자신의 내심 세계의 반영이다. 때문에 소위 어진 사람은 어짊(仁)을 보고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智)를 본다는 것이다. 당문화의 투쟁의식으로 대뇌를 ‘무장’한 사람에게 중국 역사는 자연히 투쟁하고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으로 보일 뿐, 요임금이 선양(禪讓)한 미덕과 우 임금이 물을 다스린(大禹治水) 공적을 볼 수 없다. 장상화(將相和 역주: 전국 시대에 조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재상 인상여와 장군 염파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국적인 견지에서 서로 일치단결함을 의미)의 관용과 넓은 도량, 굴원의 강직하고 아첨하지 않음을 볼 수 없을 뿐더러, 소무(蘇武)의 불굴의 절개도, 문천상(文天祥)의 일편단심도, 악비(岳飛)의 몸과 마음을 다해 국가에 충성한 정신도 보아낼 수 없다.

오늘날의 중공은 비록 더는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삼진 않지만, 사람들의 사상은 여전히 ‘계급분석’의 영향을 받아 ‘일체를 의심하고’, ‘사상동기를 깊이 판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매우 많은 사람들이 사물을 판단할 때 첫 번째 반응은 다음과 같다. 중공이 6.4 천안문 민주화운동에서 학생들을 탄압한 이유를 분석해 보면 학생 대표들의 동기가 불순했기 때문이며 그들은 마땅히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총을 쏘아 살인한 중공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해외에서 중국 인민들에게 저지른 중공의 죄악을 폭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동기가 반드시 ‘중국을 먹칠’하기 위한 것이며 중공의 죄악이 진실인지 여부는 도리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농민과 노동자가 일 년 동안 피땀 흘려 모은 돈이 사기 당했을 때 분신자살을 하거나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등 극단적인 방식으로 돈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되며, 그 동기는 ‘연출’하기 위한 것이기에 이런 죄인들은 법을 만들어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돈을 지불하지 않은 당사자와 참극을 조성한 사회제도에는 법률적 책임이 없다고 여긴다. 중공이 발동한 ‘대약진’에서 4천만에 달하는 중국 백성들이 굶어 죽었지만 그 동기는 ‘영국을 넘어서고 미국을 따라잡기’ 위한 것이므로 중공의 죄는 그래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사유는 당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당문화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그 중 유물변증법은 계급투쟁을 주장하고 진화론은 약육강식을 말하는데 중국 역사는 단순하게 참혹한 살육의 투쟁사라고 본다. 이것들은 모두 중국인들의 투쟁 의식을 심화시켰다. 중공은 반복적으로 폭력을 핵심으로 하는 공산문화를 심어놓아 몇 세대에 이르는 사람들을 가슴에는 온통 원한을 품고, (적을 죽이기 위해)돌격하는 ‘무산계급의 전사’, ‘사회주의의 새 사람’’, ‘당에 순종하는 도구’로 만들었다. 중국인의 투쟁은 이미 사유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일으키고 있으며 중국인들이 내부 투쟁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서로 헐뜯고 생사를 걸고 투쟁하는 중국인의 생활규칙은, 자신보다 순서가 먼저인 사람은 방비하고 순서가 늦은 사람은 감시하는 마작의 규칙으로 변해버려, 자신이 화목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화목하지 못하게 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 흔히 배척하고 헐뜯으며, 다른 사람의 견해가 현명하고 사유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면서 질투의 불꽃을 태운다. 하여 앞에서는 악수를 하지만 뒤에서는 다리를 건다. 투쟁은 단지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사용하는 수단 역시 중국인의 나쁜 지혜를 집대성한 것으로 나쁜 짓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 어떤 규칙도 따지지 않는다.

당문화의 이런 비정상적인 사유는 일을 해결함에서 흔히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사람을 혼내주고 사람과 싸우며 사람을 다스려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고 상대방의 기세를 꺾어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상대방을 강요하여 자신의 뜻에 따라 일을 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언어에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언어 속에 투쟁 의식을 갖는 것이 이미 정상적인 범주를 초과하는데, 전체 언어 체계의 주도적 요소가 바로 투쟁이다. 말투에는 질문, 반문, 도전의 뜻이 담겨져 있고 뱉어낸 말은 다른 사람을 자극한다. 만약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으면 생트집을 잡고 이치를 따지지 않으며 이치에 어긋나면서도 억지를 쓴다.

어떤 사람이 작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대만과 대륙에서 온 학생들에게 각각 질문을 던졌다. 만약 어느 교실이 매우 덥다고 느껴져 창문을 연다면 어떻게 말하는가? 대만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너무 더운데, 제가 창문을 열어도 괜찮겠습니까?”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대륙에서 온 학생들은 대개 “이렇게 더운데 왜 아직도 창문을 안 열어?”라는 식으로 말한다. 두 말의 의미는 비슷하지만 반문하는 어투는 상대방을 피동적으로 만들며 마치 창문을 열지 않은 것이 비정상적이며 마땅하지 않은 것 같다. 뒤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사실 흔히 무심한 것이다. 이것은 당문화의 투쟁 의식이 이미 사람들의 언어습관에 깊이 침투되었기에,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어 그 속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국가 대사를 담론할 때 마구 생트집을 잡고 잘난 체하며 일체를 의심하는 그러한 태도는 평화적인 교류를 진행하기 어렵게 한다. 그가 일체를 의심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공산당만은 의심하지 않는다. 공산당이 나쁘다고 하면, 그는 어느 당이든 나쁜 일을 하지 않은 경우가 있냐고 반문한다. 중공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전면적인 개혁을 방해했다고 하면, 그것은 국가 상황에 의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공산당이 지금 인권을 박해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는 어디 그런 증거가 있냐고 말한다. 당신이 증거를 지적하면 그는 또 어떻게 네 증거를 믿을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가 공산당을 좋아한다고 말하자니 그는 도리어 재산과 자식을 중공통치하의 중국에서 빼돌리기에 바쁘다. 그가 언론 자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니, 그는 도리어 서방의 언론자유를 아주 즐기며 중공의 악행을 위해 변호한다.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 하나 있다. 당신이 공산당이 저지른 매우 많은 나쁜 일들을 열거하면 그는 하나하나 부정하는데 마구 생트집을 잡으며 늘 중공을 위해 이유를 찾는다. 그러면서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중공이 놀랍게도 죄수들의 기관을 벤다고 하면 그는 도저히 믿지 않으며, 천 조각을 집어넣어 막으면 되는데 멍청하게 그렇게 힘을 빼면서 호흡기관을 베느냐고 반박한다. 당신이 인터넷 사이트에 다 있다고 말하면 그는 그래도 여전히 당당하다는 듯이 말하며 누가 본 사람이 있느냐면서 인터넷에 나오는 것도 다 믿느냐고 말한다. 당신이 장즈신(張志新)의 이름을 말하면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는 비로소 형을 집행하기 전에 장즈신의 기관을 벤 것이 공산당이라고 이 일은 공산당 스스로 모두 큰 소리로 승인했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4) 당문화 사유방식에서 뛰쳐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당문화는 생활 속에 하나의 ‘마당’을 만들었는데 오직 당문화에 따라 말하고 사유하기만 하면 마치 물결을 따라가는 것과 같고,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유난히 ‘자연’스럽고 ‘떳떳하고 당당하다.’ 반대로 당문화의 변이된 사유의 진상을 규명하려 하면 도리어 물을 거슬러 배를 모는 격이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당문화에 미련을 두게 되며 당문화에서 더욱 뛰쳐나오기 어렵게 된다.

흔히 발견하는 한 가지 현상은 바로 사람들은 비단 공산당에 대한 ‘사랑’으로 공산당을 위한 구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산당에 대한 ‘증오’를 이용하여 공산당을 위해 변호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의 표면적인 발전’으로 중공을 보기 좋게 꾸며주기도 하고 또 ‘중공은 강권(强權)이고 살인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말로 중공의 악행을 폭로하는 노력을 저촉하면서 ‘쓸모없고’ 따라서 중공의 통치를 계속 수호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는 한 편으로 “다당제는 사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는 모두 인정하는 것이며 많은 (중공) 당원들도 이 문제를 의식하고 있으니 중공이 언젠가는 그것을 선택할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정면적인 기대로 중공을 찬송한다. 다른 한편 인민들이 민주당파를 편성하는데 대해 그는 “법석을 떨고 있구먼! 공산당은 강권인데 어찌 당신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이를 반면적인 인식으로 삼아 공산당의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공산당에 대한 사랑은 당문화 중에서 공감을 찾을 수 있고, 공산당에 대한 증오는 당문화 중에서 화나 울분을 풀 수 있다. 그리하여 당문화는 곧 폐쇄식 시스템으로 되었으며, 사람들의 공산당에 대한 ‘사랑과 증오, 애정과 원한’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떠나고 싶지 않게 만든다.

한 가지 간단한 문제를 예로 든다면, “공산당이 8천 만 중국인을 살해했으니 그 죄를 철저히 청산할 것인가?”이다. 만약 정상적인 사유논리에 따른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목숨으로 보상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으로 당연히 청산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중국인들은 이렇게 간단한 문제도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에둘러서 문제를 아주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그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8천만이 되는지 아는가? 당신 눈으로 직접 4천만 명이 굶어 죽은 것을 봤단 말인가?” 당신이 중공 자신도 그렇게 많은 사망자들이 있었다고 내부적으로 밝혔다고 말하며, 예를 들어 그에게 자료를 보여주기라도 하면, 그는 또 말할 것이다. “이것은 이에는 이로 갚는 것이 아닌가? 어쨌거나 남이 잘못을 범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당신이 살인범이 법정에서 어찌 자신을 위해 죄를 회피하면서 착오를 범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면, 그는 또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공산당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아프리카 많은 나라에서도 대학살을 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공산당도 변했는데 하필 과거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가?”, “공산당이 무엇인가? 누가 감히 공산당을 청산한단 말인가? 그 놈을 죽여주리라!”라고 말한다. 당신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에게 간단하게 “마땅히 청산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정상적인 사유를 하는 사람의 대답을 요구하면, 그는 할 수 없이 “공산당과 맞서서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당신 이 문제는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결국 공산당이 얼마나 되는 사람을 죽였는가 하는 것은 모두 추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중공은 이로 인해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면서도 아무런 법적 구속도 받지 않게 된다.

국가기구를 동원해 법률을 짓밟고 약소 군체에게 폭력, 운동, 독재를 자행해 온 중공. | 에포크타임스

우리가 그에게 당문화를 버리고 간단하게 문제에 대답하라고 하면 그는 곧 “재미가 없다”라는 말로 대처한다. 당문화를 떠나면 그는 정말로 어떻게 사유해야 할지 모르며 공산당은 그의 사유의 가장 큰 한계가 되었다. ‘공산당이 없으면’ 혹은 ‘공산당을 청산한다’는 사유는 그에게는 두려우면서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멈추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는 감히 자신의 내심 깊숙한 곳에 있는 중공에 대한 공포를 건드리려 하지 않으며, 더욱이 자신의 몸에 밴 당문화의 요소를 감히 직시하려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사람들은 늘 다음과 같은 말을 이용해 중공의 정책을 인정한다.

▶“내가 만약 덩샤오핑이라면 나 역시 6.4 때 총을 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장쩌민이라면 나 역시 파룬궁을 탄압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공산당이라면 나 역시 독재정권체제를 실시했을 것이다.” 등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 아주 자연스럽고 매우 안전하다고 느낀다. “내가 만약 누구였다면”, 이것은 본래는 한 가지 일이 ‘마땅한지 마땅하지 않는지’를 가늠하는데 사용되는데 원래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일을 처지를 바꾸어 고려하는 것으로 이러한 방식을 이용하여 ‘나’의 태도를 중점적으로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에게 이용될 경우, “내가 만약 누구누구였다면”이라고 하면 곧 “다른 사람(공산당)이 마땅한가 마땅하지 않은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내가 마땅한가 마땅하지 않은가”를 대체하는 것으로 변하며 ‘나’의 태도가 중점이 아니라, 중공의 태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나’는 숨어버린다. 따라서 중공의 악행을 묵인하거나 종용하게 된다. 그 자신의 태도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캐물으면, 그는 나의 태도는 중요하지 않고, “의미가 없다” 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에게 정상적인 사유로 돌아오라고 하면, 그는 또 “의미가 없다”고 여긴다. 사실 사람들은 마땅히 좋은 사람을 본받아야 하며, 자신을 역사상의 정의인사와 비교하여 중공이 인민을 박해하는 것에 마주쳐 응당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설사 담이 작아 “내가 만약 가오즈성 변호사라면, 나 역시 중공의 박해를 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 권리를 수호하겠다.”라고 말하진 못할지라도, 절대 자신을 반드시 강간범, 살인범, 혹은 독재자와 비교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비교인가?

당문화는 중국인의 사유를 제한했고 또한 사회생활의 각 방면을 관통했다. 무신론을 기초로 하는 당문화 중에는 계급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없다. 바로 마오쩌둥이 말한 것처럼, “세상에는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가 없는 사랑이 없으며 또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가 없는 증오도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중공이 자유, 인권 등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방법은 그들에게 일률적으로 정해진 단어 ‘자산계급의 것’이란 모자를 씌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허위적인 것’이며 ‘무산계급’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중국의 국정(國情)은 특수하다’라는 구실로 바꾸어 거절한다. 당문화의 이런 협애한 사유에 좌우지당하여 특히 전반사회가 모두 이미 도덕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고, 성실과 신용의 위기가 나타났으며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을 ‘사람을 속이는 미신’이라고 비난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더는 양지와 도의를 믿지 않았다.

중공은 장기간의 적나라한 선전 혹은 암시를 통해 중공 ‘중앙지도자’의 위대함을 부각시켰다. 과거에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의 ‘위대함’을 선전하고 ‘붉은 태양’을 찬양하던 데에서, 오늘날 ‘개혁개방의 설계사’, ‘이전 사람의 뜻을 이어 받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안내자(繼往開來的領路人)’라고 치켜세우기까지 많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종교적인 경건함으로 ‘중앙지도자’를 신임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신변에 있는 중공 지방관원의 부패와 타락을 똑똑히 알지만 이는 결코 ‘중앙지도자’에 대한 사람들의 좋은 인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비록 모두들 오늘날 중공의 ‘중앙지도자’들이 모두 지방관원에서 한 걸음씩 기어올라온 것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결코 왜 탐오하고 부패한 지방관원이 일단 ‘중앙지도자’ 계층에 들어가면 곧 ‘영명(英明)’하게 변하는지 생각해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쁜 일은 모두 지방관원이 ‘중앙’을 속이고 한 것이며, 중대한 문제에서 오직 ‘중앙을 놀라게 하다’ 혹은 ‘중앙에서 사람이 왔다’고 하면 곧 해결할 희망이 생겼다고 여긴다.

지난 수십 년간 국가와 민중의 생계에 관계된 수많은 사회문제를 조성한 중공을 마주하여 많은 민중들은 차라리 달갑게 ‘중앙지도자’는 어쨌든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을지언정, 자유국가 민중들처럼 국가와 사회에 대해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동시에 자신의 견해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비록 중공이 왜 하나의 민간 기공단체에 대해 이렇듯 큰 문제를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첫 반응은 흔히 “중공이 이렇게 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데 ‘당중앙’의 대뇌로 자신의 사고를 대체한다. 반대로 이성적으로 “파룬궁 군중들은 도대체 법을 위반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중공이 이렇게 하는 것이 도대체 합법적인가?”는 사고하지 않는다. 중공의 싼샤(三峽)공정이 시작된 후, 해외 전문가들은 그 실행가능성에 관한 논증에 중대한 맹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즉시 당당하다는 듯이 해외전문가들의 수준에 대해 질의하면서 말했다.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바보가 아니면 정신병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처럼 우둔한 공정을 시작할 수 있겠는가?” 그가 한 이 말이 암시하는 것은 즉 ‘영명한 영수’들이 멍청이 같은 일을 저지를 순 없으며 그들에게 사심(私心)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은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들이 당문화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인민들의 사상과 행위에 대한 중공의 조정, 통제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변했다. 중공은 마치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의지하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강심주사를 맞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체면 공정인데, 싼샤공정, 유인우주선 선우선루(神五神六) 발사, 올림픽 개최 등이다. 우리는 무수한 국민들이 중공을 따라 함께 흥분하며 함께 소리 높이 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처에 위기가 잠복해 있는 이 시기에 우리는 사람들의 청성(淸醒)과 이성을 볼 수 없으며, 단지 맹목적으로 떠들썩한 속에 당문화가 빚어낸 가까스로 출세하여 떵떵거리는 기분과 자만하여 득의양양한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중공은 큰돈을 아낌없이 뿌리며 체면공정을 하면서 백성들의 생사존망에는 도리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지 곧 무너질 듯한 통치를 ‘속이기 위해 분장하는 것’이며 인심을 기만하는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교육과 의료보장은 한 나라의 생활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교육은 국가경제와 민생, 특히 민족의 미래에 관련된 큰 일이다. 그러나 중공의 이익을 위하여 중공은 장기간 교육에 대해 국민생산총생산의 2%-4%밖에 투자하지 않았다. 이는 심지어 세계 100위권에 해당하는 아프리카의 소국 우간다보다 더 낮은 비율이다. 중국의 의료제도는 더욱 백성들로 하여금 감히 치료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수많은 농민들에게 의료보장이 없었지만, 현재는 많은 도시민들 역시 병이 들어도 의료비용이 너무 비싸 감히 병원에 가지 못한다. 왜 중국인들의 저축률이 줄곧 높은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는가 하면 바로 미래에 대한 안정감이 없어서 돈이 있어도 감히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방 매체들은 늘 이러한 한 가지 문제를 묻는다. “중공은 한편으로 세계강국이 되기 위해 도처에서 허장성세로 이목을 끌지만, 다른 한편 진정으로 중국을 강대하게 만들 수 있는 기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장기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공 지도자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들은 정말 어리둥절해한다.

중공의 개혁은 절름발이 개혁이지만 당문화의 틀 속에서 보면 각별히 중공을 이해하고 중공을 ‘감상’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중공의 개혁은 ‘행동만 하고 말은 하지 않는다.’ 효과가 있으면 다시 이론으로 상승하는데 경제개혁에서 줄곧 정치개혁에 이르기까지 추론한다. 마치 어느 날 중국인민이 모두 전민선거를 거쳐 대통령을 선출하면 효과가 있으니 중공이 비로소 정식으로 민주를 한다고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중공은 원칙이 없으며 오직 그것의 통치에 유리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의의를 갖는 그 어떤 정치체제개혁이든 필연코 중공의 통치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때문에 중공은 경제영역에서는 ‘행동만 하고 말하지 않는다(光干不說)’를 실행하며 누구나 가서 돈을 벌고 향수할 수 있지만, 정치영역에서는 도리어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光說不干).’ 만약 인터넷사이트에서 ‘정치체제개혁’을 검색해 보면 당신은 아마 중공의 언론매체에서 이것이 매우 뜨거운 이슈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면적으로 경제정치체제개혁을 추진하자’, ‘정치체제개혁의 특별구역을 설립하자’, ‘전면적으로 정치체제개혁의 목표와 근본을 정확히 파악하자’, ‘정치체제개혁은 사회주의 민주를 추진한다’, ‘정치체제개혁은 얼음을 깨고 출항한다’, ‘중국의 정치체제개혁은 거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환경을 다스리는 것과 정치체제개혁’, ‘정치체제개혁으로 반(反)부패 투쟁을 추진하자’, ‘정치체제개혁은 중국경제 발전의 유일한 출로이다’ 등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일체 발언은 모두 당문화의 틀 속에서 맴도는 것으로 마치 한 건물이 곧 무너지려 하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어떻게 실내를 장식할 것인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문화에서 뛰쳐나오면 곧 중공 개혁의 최대 한계를 똑똑히 볼 수 있다. 중공의 개혁은 단지 그것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개혁에 불과한 것이며, 동시에 중공은 역사무대에서 내려가기를 원치 않고 또 감히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중공이 좋게 변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사람은 “지도자가 바뀌고 새로운 세대가 올라오면 아무래도 자유로워 지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아주 큰 오해이다. 만약 민중들의 노력이 없다면 독재국가에서 진정한 민주자유란 있을 수 없다.

여러분은 모두 한 가지 현상을 주의하게 되었을 것이다. 바로 현재 젊은 세대가 지도자가 된 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전 세대에 비해 더욱 대담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담하다는 것은 민주적으로 대담하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잡고 돈을 틀어쥐며 어지러운 일을 함에 더욱 대담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로 공산당의 그 체제 속에서 공산당의 그러한 작법을 다 배우고 나서 권력에 빌붙어 올라간 것이다. 공산당의 원죄(原罪)를 지니고 올라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상이 없으며 마음은 모두 개인, 가정, 집단의 이익에 가 있다. 그들이 권력을 인민에게 넘겨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개별적인 사람이 그렇게 하려고 할지라도 그들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도리어 공산당이라는 전반 폭력기구와 손해를 보면 전부 망한다고 여기는 강력한 이익집단이다.

현재 중공의 세대교체가 비교적 평온한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또 중공이 진보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과거에는 당의 지위가 매우 안정하고 견고했기 때문에 권력투쟁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적나라한 투쟁으로 표현되었고 그들에게는 ‘당이 곧 끝장날 것’이라는 근심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중공의 ‘망당 위기’가 코앞에 닥쳐 당의 통치 자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중공의 ‘공동 인식’이 되었다. 당의 집단이익은 개인이익의 가장 든든한 우산이다. 그러므로 권력투쟁은 ‘대국(大局) 수호’를 위한다는 전제하에 소규모 이익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패싸움’ 투쟁으로 변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조용해진 것 같으나 실제상 내막을 알기 힘든 투쟁은 이전보다 더욱 치열해졌다. 당이 무너지지 않도록 수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권력을 쟁탈하고 이익을 다투어야 하기에 모순은 과거보다 더욱 복잡해졌고 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마치 한 거리에서 과거에는 두 악당이 늘 싸움질을 했지만, 지금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끌어 모아 패거리를 짓고, 지하로 들어가 마피아조직으로 변한 것처럼 이는 과거에 비해 더욱 무서운 것이다. 현재 중공의 이른바 권력 세대교체의 ‘제도화’는 바로 내막을 알 수 없는 제도화이고, 악당들의 패거리화이며 완전히 마피아가 된 것이다.

결론

지난 수십 년간 인민의 사상을 개조하려는 중공의 노력은 줄곧 변한 적이 없다. 치열한 비판투쟁 대회, 무미건조한 정치학습, 즐겨 시청하는 문예프로그램은 모두 중공이 당문화를 주입하는 효과적인 도구들이다. 중국의 5천년 유구한 문화는 결국 공산당의 이런 폐쇄식 언론선전을 당해낼 수 없었다. 사람들의 사상은 정말로 개조되었다.

우리는 늘 중화민족은 근면하고 용감하며 지혜가 있는 민족으로 휘황한 역사문명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지금의 이른바 ‘인구가 많고 기초가 약한’ 국정 하에 더욱더 전 민족의 지혜, 담력과 식견이 필요하며 공동으로 국사를 도와야 한다. 하지만 인민의 지혜는 도리어 당문화에 의해 통제당하고 있으며 사고하는 권리를 공산당에게 미루어 중대한 국가정책 앞에서 오직 당이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고, 당이 하는 것만 하며, 지혜는 공산당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

공산당은 신전문화(神傳文化)를 이어받은 중화민족을 신을 믿지 않는 민족으로 변하게 했으며, 천지신명을 경외하는 선량한 백성을 교사하여 천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방자한 무리로 만들었다. 도덕이 무너지고 어떤 나쁜 일이든지 다 하며 하는 말은 모두 다 거짓말이고 행위가 저속한 이러한 민족이 어떻게 세계인들 속에 ‘우뚝 설(崛起)’ 수 있겠는가?

당문화는 우리 민족에게 심각한 재난을 가져다 주었다. 공산당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개인과 집단이익뿐이다. 중공은 자신의 악행을 위해 각종 그럴 듯한 구실을 만드는데, 이는 일종의 범죄심리로서 이런 상황은 그 필연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막론하고 인민 대중들은 오늘의 생활에 관심 갖는 것 외에 또 마찬가지로 국가와 민족이 오랫동안 안정하고 태평한 것에 관심을 갖는다. 만약 그들 자신만의 이익수호를 근본목적으로 하는 공산당의 사유와 논리를 받아들여 민족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현명한 행위가 아니다.

‘중공에게 시간을 주자’는 이것은 사람들이 중공 문제를 회피할 때 늘 쓰는 구실이다. 듣기에는 마치 사람들에게 매우 많은 선택이 있으며 이번에는 일단 중공에게 시간을 좀 주어 시험해 보자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민중들은 전혀 선택의 기회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단지 자신의 심리적인 위안을 찾으려는 것에 불과하다. 시간 자체가 중국을 개변할 수는 없으며 오직 이 시기에 민중들의 노력이 있어야지만 진정으로 중국을 개변할 수 있다. 중공을 해체하고 당문화를 해체하며 중국의 자유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요소를 근절하여, 민중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사유로 회귀하게 해야만 이 민족은 비로소 다시 일어설 희망이 있는 것이다.

위 : 공산당은 서양에서 온 사악한 영체로 우리 중화민족에게 거짓말, 폭력, 학살과 공포를 가져왔다. 그것의 본질을 똑바로 알고 중공을 탈퇴하자! 중앙 : “전국 인민들은 모두 다 내 인질이야,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없어!” “소년 선봉대 대원도 나라를 사랑해야지,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을 사랑하는 거란다.” 좌 : 저는 이제 겨우 6살이라 공산당이 뭔지도 몰라요! 우 : 원래 공산당은 중국을 대표할 수 없으며 우리 중국인들의 몸에 달라붙은 사악한 영체였어. 그것이 우리를 훼멸시키려 했구나! | 에포크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