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당(黨)문화] 제3장 주입수단(상)

9평 편집부
2007년 03월 2일 오후 12:08 업데이트: 2021년 10월 26일 오후 5:41

상편:당문화는 어떻게 건립되었는가 

【당문화 해체】3:주입수단(상) 


< 목 차 >

1.선전기구를 틀어쥐고 당문화 보급 

1)정치 운동과 일상 시기

(1)정치 운동 중의 주입
(2)일상 시기의 주입은 중선부(中宣部)에서 총괄

2)주요 선전기구

(1)간행물
(2)라디오, TV, 인터넷

3)상용하는 주입수법

(1)천지를 뒤덮는 주입으로 현실 세계와 철저히 단절
(2)끊임없는 반복주입으로 거짓을 진리로 날조
(3)민의(民意)를 왜곡하고 권위에 호소해 심리적인 공세 취해
(4)공개적인 거짓말로 전 세계를 속여
(5)적반하장 격으로 거짓을 퍼뜨리면서 거짓에 반대

4)”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주입수법

2.인민들에게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의 책을 강요 


문화란 한 무리 사람들의 안정적인 심리와 행동양식으로 한 가지 문화를 형성하자면 종종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중공은 정권을 찬탈한 후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중국인의 사유와 언어, 행동양식에 선명한 낙인을 찍었으며 중국의 모든 방면, 모든 구석에 당문화(黨文化)를 보급했다. 그렇다면 중공은 어떻게 이것을 해냈을까?

공산당은 인류 역사의 특이한 종류로서 그것의 지도사상은 사람의 본성에 위배하며 그 어떤 정통문화에서도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전통문화의 자양을 받으면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산당이 선전하는 변이(變異)된 관점을 자동적으로 갖출 수 없다는 말이다. 당문화의 형성은 중공이 장기간 주입한 결과이다.

이런 주입은 강제적이고 전면적이며 철저하고 높은 강도로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또한 교활하고 위선적이며 은폐되어 있고 끊임없이 변형된 것으로 폭력에 의지하고 이익을 미끼로 하여 가능한 모든 도구를 이용해 가능한 모든 장소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한 것이다.

중공은 선전 주입을 자신의 생명선으로 여기며 몇십 년간 체계적인 이론과 번잡하고 복잡한 제도, 정교한 기술과 대량의 “인재(人才)”를 발전시켜냈으며 또한 주기적인 정치운동을 통해 보조적으로 강화했다. 그 주요한 수단은 선전기구를 단단히 틀어쥐고 당문화를 보급하며 거짓 선전을 만드는 것과 인민들을 강요하여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의 책을 읽게 한 것을 포함한다. 또한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문인들에게 악당(惡黨)을 찬송하게 하고 중국인의 선악 표준을 개변시켰으며, 학생들의 교과서를 이용해 악당을 찬양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당문화 속에 잠기게 했다. 그 외에도 영화, 연극, 가무(歌舞), 곡예 등 여러 가지 문예형식을 이용해 당의 대표 인물을 긍정적으로 부각시켰으며 전통문화와 전통인물 등은 폄하했다. 이런 종류의 주입은 너무나도 체계적이고 정교했으며 도처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어,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상이 주입 당하고 있고 세뇌되고 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자신의 언어, 행위, 사유 모두 중공의 주입과 밀접히 연관되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중공이 집대성한 주입수단을 체계적으로 반성해 보는 것은 우리가 당문화의 건립과정, 본질, 특징과 천변만화하는 내재적 기제를 똑똑히 아는 데 도움이 되며, 중공의 주입수단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은 당문화를 해체하는 중요한 일보이다.

1.선전기구를 틀어쥐고 당문화 보급 

총과 펜은 공산당의 양대(兩大) 생명선이다. 레닌은 일찍이 이런 종류의 투쟁수단을 “테러리즘”에 “이데올로기”를 더한 것이라고 개괄한 적이 있다. 중공은 소련 공산당의 사악한 유전자를 계승했지만 “기만(騙)”이란 구결은 오히려 소련보다도 더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류사오치(劉少奇)는 1951년에 있었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직언한 적이 있다. “우리 당은 처음 건립될 때부터 전당(全黨)이 선전에 나섰다…. 앞으로는 더욱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 중공의 선전기구는 중공이 민중들을 세뇌하고 당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했다.

1)정치 운동과 일상 시기 

(1)정치 운동 중의 주입 

끊임없는 정치운동을 발동하는 것은 중공 정권과 정상적인 인류 정권의 가장 큰 구별 중 하나이다. 이는 공산당의 소위 “당성(黨性)”이 인성(人性)과 완전히 대립되기 때문에 일단 환경이 느슨해지고 통제가 약화되어, 외부 정상사회와 접촉이 증가하면 당원과 인민 군중들 중에서 인성이 복원되는 상황이 생긴다. 중공은 “당심(黨心)”이 흩어져 유지하기 힘든 국면을 마주하게 된다. 때문에 중공으로서는 주기적인 정치운동 역시 필연이다.

에포크타임스

때문에 중공이 선전기구를 이용해 당문화(黨文化)를 주입하는 데도 정치운동과 일상시기 두 가지 정황으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정황이든지 간에 중공의 핵심 지도층은 모두 선전기구(간행물, 방송, TV 등)에 대한 통제를 “으뜸 큰일”, “중점중의 중점(重中之重)”으로 여겼으며 단지 구체적 조작과정이 약간 다를 뿐이다. 문화대혁명 중에서 “염라대왕전”이라고 불린 중선부(中宣部)가 공격을 받아 표면상 전국적으로 한동안 “무정부 상태”, “천하가 크게 혼란”한 상황이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권력을 장악한 중공 핵심 집단은 중요 선전기구(예를 들어 “양대 신문과 하나의 잡지”로 불리는 《인민일보(人民日報)》, 《해방군보(解放軍報)》와 《홍기(紅旗)》잡지)에 대한 통제를 지금껏 느슨히 한 적이 없다.

일상 시기에 중공의 선전 주입은 다음과 같은 방식을 따른다. 중공 당 두목이 정하면-정치국에서 결의하고-중선부가 관철시키며- 각급 부서와 언론매체에서 집행한다. 그러나 위기 시에는 중공 당 두목이 종종 일반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한 손으로는 매체를 통제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도살용 칼을 잡는다(군대, 경찰, 특무계통). 먼저 처벌하고 나중에 구실을 만들어,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린다. 나중에는 “당성”으로 전 당을 협박하여 사상을 통일하고 여론을 통일한다. 당성은 이렇게 매번 인성을 싸워 이기고 한 걸음씩 인성을 말살하는데 전체 당원과 전 사회가 “당”의 변태적 의지에 굴복할 때까지 계속된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은 서로 다른 시기에 무대에 뛰어올라 직접 칼을 잡거나 혹은 그 의지를 대변하는 간행물에 사설을 발표하여 정치운동의 방향을 정했다. 1957년 반우파(反右) 운동에서 “뱀을 굴속에서 끌어낸” 후 마오쩌둥은 직접 《인민일보》에 사설을 써서 수백만 지식인들에 대한 엄밀한 숙청을 시작했다. 마오(毛)가 “양모(陽謀)”라고 부른 “반우파 운동”은 중국 지식인들의 독립적 사상과 자유 의지를 철저히 훼멸했다. 1989년 학생운동에 대한 성격을 규정한 “4.26”사설 《반드시 선명한 기치를 들고 동란(動亂)에 반대해야 한다》역시 당시 실질적 권력을 잡고 있던 덩샤오핑의 뜻에 의한 것이다. 1999년 10월 25일 중공 사악의 우두머리 장쩌민은 프랑스 《르 피가로》와 인터뷰에서 파룬궁(法輪功)을 X교로 불렀고 이튿날 《인민일보》는 《”파룬궁”이 바로 X교》라는 문장을 발표했다. 장쩌민의 이지를 상실한 욕설은 이때부터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했다.

“석 달 안에 파룬궁을 소멸해 버려!” : 장쩌민은 610이라는 개를 풀어 파룬궁을 공격했다. | 에포크타임스

정치운동 중에서 중공의 선전 주입은 종종 광적인 정치동원과 천지를 뒤덮는 여론 공세를 동반한다. 이런 대규모 여론공세는 사람들의 정상적인 정보 내원을 끊어놓아 사람들로 하여금 독립적인 사고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로 인해 중공 여론의 “인도(引導)”를 받아들이고 아울러 그것이 자신의 독립적 사고에서 비롯된 결과로 여긴다. 설사 깨어 있는 소수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중공의 폭력기구와 “군중독재”의 거대한 압력을 마주하고 늘 침묵을 지키고 만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모두 지난 몇십 년 동안 중공의 정치운동이 황당하고 가소롭다고 여긴다. 그러나 만약 당문화를 주입하는 이 각도에서 본다면, 이런 운동들은 아주 성공적으로 그 목적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의 주입을 통해 사람들은 어느 것이 자신의 정상적인 사상이며 어느 것이 중공이 주입한 관념인지 똑똑히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혁명과 고별”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혁명의 표면적인 형식과 고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혁명의 당문화적인 내포는 오히려 거의 그대로 보존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는 “어록가(語錄歌 역주: 마오쩌둥 어록으로 만든 개인을 숭배하는 찬양가.)”를 부르지 않고 “충자무(忠字舞 역주: 마오쩌둥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기 위해 “忠”이란 글자를 표현하는 일종의 집단무용.)”를 추지 않고, 대명대방(大鳴大放), 문공무위(文攻武衛 역주: 1967년 문화혁명 기간에 장칭(江靑)이 우한에서 발생한 무장투쟁을 지지하면서 한 발언. 직역하면 문장으로 공격하고 무력으로 보위한다는 말)를 말하지 않지만, 중공의 정치운동이 강제로 주입한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투쟁철학은 여전히 중국인들에 의해 정확한 것으로 증명이 필요 없는 일반적 “진리(眞理)”로 받아들여졌고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는 것은 “봉건미신”으로 불렸다. 정신적 내포가 뽑혀 나간 전통문화는 문 앞을 장식하는 액세서리로 되거나 또는 돈벌이 도구로 전락했지만,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른다. 중공의 “사상개조”가 성공한 것이다.

10년에 걸친 문화혁명은 국민경제를 “붕괴 직전”까지 몰아갔고 중공은 어쩔 수 없이 경제와 문화영역에서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중공 집단의 생존 목표와 관련된 이데올로기 영역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느슨히 한 적이 없다. 덩샤오핑은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런 문제에서 우리는 “손을 뗀 적이” 전혀 없다. 물론 “손에 잡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05년 후진타오는 마치 압력솥처럼 봉폐되어 있는 공산독재 국가 쿠바와 북한을 아주 흠모하면서 그들이 “이데올로기에서는 줄곧 정확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세 하에서 중공은 한편으로는 계속 엄수하고 차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에 따라 변해가며” 여러 가지 수단을 바꾸고 있다. 중공의 선전 책략은 더욱 정교하고 영활하며 기만적으로 되었다. 비록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공은 또 연속적으로 “당을 바로잡고(整黨)”, “정신 오염을 제거”하며, “자산계급 자유화 반대”, “6.4 민주화운동 비판”, 파룬궁 탄압 등 일련의 운동을 했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치운동 중에 있음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그것은 이미 아주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중공의 당문화 주입은 이미 주입 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 달갑게 여기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했다.

“이래도 (파룬궁을)연공할 거야?” : 실화에 근거한 중공의 파룬궁 탄압 장면 | 에포크타임스

(2)일상 시기의 주입은 중선부(中宣部)에서 총괄 

“선전(Propaganda)”이란 영어 단어는 세뇌, 기만과 연계되어 있으며 분명히 폄하하는 뜻을 지닌 단어이다. 오로지 파쇼와 공산당의 사전에서만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예부터 지금까지 정치체제를 두루 찾아보아도 오로지 파쇼와 공산당 정권의 체제 속에만 “선전부(宣傳部)”가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공은 자신의 국제적인 형상을 고려하여 선전부의 영문 명칭을 “공보부(Publicity Department)”로 고쳤지만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중공 중앙의 직속 기구인 중선부(中宣部 중앙선전부)는 중공이 중국의 매체와 전 국민의 정신을 통제하기 위한 전문적인 기구이다.

몇십 년 동안 중공은 시종 이데올로기 영역에 대한 완전 통제를 공산당이 생존하는 가장 큰 일로 여겼다. 중공은 중선부를 통해 전 중국의 여론방향을 장악하고 “당”의 의지를 전달하며 국가선전기구를 통해 민중에 대한 반복 세뇌 선전을 진행해 왔고 전 국민의 사상을 중공 중앙의 의도로 통일시켰다. 중국에 있는 2천여 개의 신문사, 만여 개의 정기간행물, 천개가 넘는 라디오와 TV 방송, 몇 십만 개의 인터넷 사이트들은 전부 중선부와 각급 선전부가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선부는 자신의 의지가 없다. 그것은 중공 중앙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로 삼아 중공의 집단생존을 목표로 하며 공산당의 이익을 근본 이익으로 한다. 중선부에서 하는 일은 말하자면 아주 간단한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진실을 봉쇄하고 말살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허상을 날조해 진실을 대신하는 것이다.

우선 중선부가 어떻게 진실을 봉쇄하여 말살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2002년 6월 중선부는 뉴스매체에 보도금지 명령을 내렸는데 모두 36가지 “불허(不許)”였다. 아래에 그 일부를 예로 들겠다.

“농촌 세금 개혁을 마음대로 보도함을 불허한다.” 

“중대한 돌림병 상황에 대해 보도하거나 전재하는 것을 불허한다.” 

“중대한 안전사고에 대해 함부로 보도하는 것을 불허한다.” 

“사영기업주(私營企業主)의 입당을 보도함을 불허한다.” 

“각급 당위원회를 고소하는 사건을 보도하거나 전재함을 불허한다.” 

“가난한 자와 벼락부자의 이익 배분을 지나치게 선전함을 불허한다.” 

“희망공정에 존재하는 문제를 보도함을 불허한다.” 

“매체에서 “봉쇄하여 없앤다”는 단어를 쓰는 것을 불허한다.” 

“언론을 제4의 권력 혹은 힘이라고 제기함을 불허한다.” 

“잘못된 언론과 부정확한 관점을 싣는 것을 불허한다.” 

“비평성이고 부정적인 보도를 집중적으로 함을 불허한다.” 

“민족, 종교 등 영역에서 함부로 보도함을 불허한다.” 

…….

중선부는 매년 각 성시(省市) 지역에 최소한 백여 차례 통지 혹은 금지령을 전달한다. 성시(省市) 일급 선전부는 매년 매체에 보내는 통지 혹은 금지령이 평균 230여 차례이고 그중 가장 많은 금지령을 내보내는 곳은 상하이, 광둥(廣東), 쓰촨(四川), 산둥(山東), 허베이(河北), 후난(湖南), 허난(河南) 등이다. 이들 성시의 선전부는 매년 관할 지역의 각 매체에 내보내는 각종 금지령과 통지가 310개이다. 다시 말해 이들 지역의 매체는 거의 매일 한 가지씩 금지령을 전달받는 것이다.

매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선부는 뉴스열람평가협조소조(新聞閱評協調小組)을 만들어 중앙과 지방의 주요 매체의 동향을 감독하고 또한 정기적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중앙에서 지방까지, 각급 선전부 혹은 뉴스국은 대량의 “뉴스검토원”을 고용해 매체의 문장, 음반이나 비디오 제품 등의 “정치문제”를 전문적으로 책임지고 감독한다. 중선부 뉴스국이 심사와 검토를 책임 맡은 출판물은 신문만 해도 백여 개에 달한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나라가 크기 때문에 이런 금기 화제 외에도 보도할 만한 사건이 너무나 많다고 말이다. 그러나 중공은 “하나만 공격하고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음”에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아침에 포상하고 저녁에 고치며, 끊임없이 강령을 만들어 당이 좋아하지 않는 모든 언론에 “착오(錯誤)”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 이런 금지령들은 내용이 모호하고 규칙이 없어(“함부로 평가하면 안 된다.” “과도하게 부풀리면 안 된다.”, “착오적인 언론과 부정확한 관점을 실으면 안 된다.” 등) 더욱 큰 위협으로 작용한다.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지뢰밭을 밟을까 할 수 없이 스스로에게 범위를 설정하여 좌우를 살핀다. 매 사람이 자신의 뉴스에 대한 검사원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검사를 통과한 그런 뉴스들은 “정치가 정확”하여 읽을 만한 가치도 없는 것들이다.

중선부는 또한 다른 한 가지 “진실”을 날조하여 백성들에게 허구적인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어 당의 안정성을 수호하는데 온갖 힘을 다 기울인다. 화목, 반부패, 애국, 소강(小康), 5가지의 1(五個一), 3개 대표, 8영8치, 학습, 강화, 성적, 고거(高?), 이정표, 선진성, 힘찬 전진, 위대한 승리 등등. 천지를 뒤덮을 듯한 당문화의 거짓 선전은 민중들을 중국의 진정한 현실에서 거의 격리시켰다. 실직 노동자와 농촌에서 도시에 들어온 민공(民工)들의 비참한 처지, 집을 강제로 철거당한 도시민, 탐오와 부패, 정경유착, 생태환경의 심각한 악화, 신속히 추락하는 도덕상황과 끊임없이 악화되는 인권상황, 민족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두려운 현실 등은 완전히 국민들의 시야 밖으로 사라지거나 혹은 고의적으로 약화시켜 “발전 중의 문제로 진일보로 발전하는 중에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뉴스는 자유로운 사상과 독립적인 판단의 근원이다. 중공은 중선부의 각종 금지령과 제한으로 모든 뉴스를 완전히 여과한다. 민중들은 그 속에서 진실한 뉴스를 얻을 수 없고 독립적 사고를 할 수 없다. 동시에 사람들은 시시각각 중공 당문화 속에 잠겨버린 소식을 흡수해야 하고 당문화의 사로(思路)에 따라 반응하고 비판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사람들은 이런 주입에 물들고 자신이 이미 당문화에 세뇌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사건의 진상이 애당(愛黨)이란 깃발아래 중공의 필요에 의해 개조되어 일반에 보도 | 에포크타임스

2)주요 선전기구 

진실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인류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옛날에 사람들은 구두로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의 활동 규모와 척도는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으며 세계는 “지구촌”으로 변했다. 만 리 밖에 떨어진 사건이라도 한 개인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구두로는 멀리까지 전달할 수 없게 되었고 대중매체가 생겨났다.

대중매체의 출현은 근본적으로 인류의 뉴스 환경을 바꿔 놓았다. 매체를 통해 분산된 개체들이 더욱 긴밀하게 사회와 연계를 맺게 되었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일은 갈수록 많아졌으며 개인의 정신세계도 더욱 풍부하고 복잡해졌다. 오늘날의 인류는 대부분 매체에서 획득한 뉴스를 통해 외부 환경을 판단하고 더 나아가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한다.

사회생활 속에서 매체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서양민주국가에서는 매체를 입법, 사법, 행정부 외에 독립적인 제4의 권력이라고 하며, 기자들을 일러 “무관의 왕”이라고 할 만큼 거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중공이 습관적으로 “자본주의 국가 언론자유의 허위성”을 공격하여 매우 많은 중국인들 역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중공의 말을 반복하고 있다. 사실 언론의 자유는 어떤 특정한 하나의 매체도 모두 경향성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경향성을 띤 매체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법률로 보호하고 또 개인이나 혹은 단체가 자신의 매체를 설립할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모든 매체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법률에 의거해 스스로 중립적이며 객관적이라고 인정하는 매체를 설립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중국의 매체는 전부 중공이 “만든 것”이다. 중공중앙 텔레비전 방송국(CCTV)는 미국에서 방송할 수 있지만 미국 텔레비전은 중국에서 방송할 수 없다.

중공의 엄밀한 사상통제가 의미하는 것은 매체에서 정상적으로 진실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공산당 통치하에서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등 매스 미디어는 반드시 “당의 대변인”이자 당문화를 주입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1)간행물 

1991년 대북에서 출간된 《지하당시기 중공의 간행물 조사 연구(中共地下黨時期報刊調??究)》에 나오는 통계를 보면 1949년 이전 전력을 다해 당시 합법적인 정권을 뒤엎으려고 한 중공은 국민당 통치하의 상대적으로 느슨한 여론 환경 하에서 소위 “해방구(解放區)”에서 선전도구를 장악한 외에 천 종류 이상의 간행물을 창간하거나 통제해 왔다. 중공이 이용한 이들 간행물들은 “민주”를 고취하고 자신을 미화하며 국민당을 공격하여 중공이 정권을 찬탈하는데 “뛰어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정권 찬탈에 성공한 이후 모든 매체들은 하룻밤 사이에 “공산(共産)”에서 “당(黨)”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만약 이때에도 “당”에 대해 언론 자유를 요구한다면 “당”의 표준적인 답은 다음과 같았다. “계급을 초월하는 자유는 없다.” 저명한 민주인사였던 추안핑(儲安平)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예견한 바 있다. “국민당 통치하의 이 “자유”는 그래도 “많고” “적음”의 문제이지만 만약 공산당이 집권한다면 이 “자유”란 존재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될 것이다.” 사실은 “민주가 존재하는가의 문제”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오쩌둥은 “반동파의 발언권을 박탈하고 오직 인민에게만 발언권을 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누가 인민이고 누가 반동파인가? 단지 마오 한 사람의 말만 통할 뿐이다.

“일률적인 여론”, “뉴스 보도의 당성원칙”, “정치가가 꾸리는 신문”, “문화 사업은 정치적 임무에 복종해야 한다” 등과 같은 이런 구호들의 지도하에 모든 신문과 간행물들은 다 중공의 말 잘 듣는 중공의 혀가 되었다. “당”이 반(反)우파를 원하면 신문에서는 곧 “우파가 하늘을 뒤집는다고 해도 우리는 응답하지 않는다.”고 하고 “당”이 “약진”을 원하면 신문에서는 “한 무당 생산량이 30만근”이라고 보도하며, 당에서 “무산계급 독재하의 계속혁명”을 원하면 신문에서는 곧 이것은 “사회주의를 천추만대 영원히 불변하게 할 백년대계이자 천년대계”라고 하며 “당”이 파룬궁 박해를 원하면 신문에서는 곧 “과학을 숭상하고 미신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비록 현재 사람들이 모두 중공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에서 진실한 것은 날짜밖에 없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러나 매체의 힘은 거대한 것이다. 하물며 “당의 혀”를 제외하면 아예 독립적인 뉴스매체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중공이 조종하는 크고 작은 매체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차이란 단지 기만의 정도가 큰가 작은가의 문제에 불과할 따름이다.

80년 대 이후 대만이 “당금(黨禁 역주: 다른 정당이나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 “보도금지(報禁)”를 개방하고 결국 민주제도를 건립한 경험을 참조하여 일부 양식 있는 언론인들이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간고한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중공은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권귀자본주의(權貴資本主義)”를 실행하고 있고 교육, 의료 등 부문에서도 모두 이미 고도의 시장화를 이뤘다. 그러나 언론 출판에서는 여전히 당국의 손아귀에 단단히 장악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당의 혀”를 벗어나려는 매체가 있을 경우 모두 숙청당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멀리는 “6.4 천안문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세계경제도보(世界經濟導報)》, 가까이는 《빙점(?點)》주간지를 예로 들 수 있다. 민중들의 분노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 중공은 현재 나름대로 요령을 터득해 영향력이 큰 간행물인 경우 이전처럼 정간명령을 내리는 대신 주편과 편집 등을 “정치적으로 믿을 만한” 인사로 교체한다. 이렇게 되면 간행물의 명칭은 예전과 같기 때문에 대중들은 여전히 미혹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이목구비와 말초신경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만 사람들은 외부 환경에 대해 합당한 반응을 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의 감각기관에 문제가 생겨 뜨거운 불에 데여 피부에 화상을 입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더욱 시원하게 느낀다면, 이 사람은 상당히 위험한 경지에 처하게 될 것이다. 60년대 초에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도처에서는 모두 굶어죽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어떤 지역에서는 심지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참극이 발생했지만 신문에서는 여전히 경쟁적으로 과장하며 곡물 생산 신기록을 수립했다고 떠벌리며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차근차근 유도했다. 2006년 봄, 북경에 강력한 모래폭풍이 지나간 후에도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희희낙락하며 “세차업(洗車業) 수익 급증”을 보도하며 마치 모래폭풍이 경제성장에 자극을 주는 것처럼 암시했다. 중공의 혀들은 천재인화와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한 중에도 “여론을 정확하게 유도”하는 것을 발굴하는데 이미 말을 선택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빠 절 잡아먹지 마세요!” : 1959년부터 1962년 사이에 발생한 대기근은 중공이 조성한 철저한 인재였다. 당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심지어 혈육을 잡아먹기까지 했다. 중공 관방의 통계에 따르면 당시 3천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으며 이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근이었다. | 에포크타임스

(2)라디오, TV, 인터넷 

신문과 간행물을 단단히 틀어쥔 이외에 중공은 새로운 매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몹시 중시한다.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과 같은 이런 새로운 매체들도 모두 중공의 장악 하에 있다. 《중국신문출판보(中國新聞出版報)》에서 2003년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2년 중국에는 라디오 방송국 306개와 텔레비전 방송국 360개,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국 1300개가 있다고 한다. 라디오는 전 인구의 93.21%를 커버하고 텔레비전은 전 인구의 94.54%를 커버한다. 조사 결과 15세에서 64세 사이의 도시주민 중 약 90%가 매일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당문화를 주입하는 방면에서 일으킨 작용은 비록 완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신문과 잡지를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40세 이상의 사람들은 문화혁명시기 도시와 농촌 곳곳에 메아리쳤던 확성기를 통해 크고 우렁찬 “최고지시”와 장편 정치평론을 틀던 것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문화혁명이 끝난 후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는 가라앉았지만 “정치적 각성”은 도리어 조금도 낮아지지 않았으며 단지 정밀한 기술과 비교적 친근한 방식을 사용해 당문화를 주입할 따름이다.

전파 매체로서 텔레비전은 화면과 함께 직관적으로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현장감이 뛰어나기 때문에 시청자들에 대한 영향이 아주 크다. 1979년 이후 중국 텔레비전 산업은 신속하게 발전하였다. 중공이 이 매체를 틀어쥐면서 당문화를 주입하는 기술도 텔레비전 기술의 진보에 따라 함께 발전하였다.

대부분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당문화의 내용을 전달한다. 텔레비전을 예로 들면, 1978년 1월 1일 방송을 시작한 《뉴스연파(新聞聯播)》는 중공이 선전을 날조하는 가장 중요한 진지에 해당한다. 30분 분량의 이 프로그램은 몇십 년 동안 하나같이 아래와 같은 방식을 따르고 있다. 앞의 25분은 예외 없이 성대한 소개, 친절한 회견, 깊은 이해, 실시를 관철, 빛나는 역사, 위대한 성취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심지어 뒷부분에 5분간 방송되는 국제뉴스만 본다고 한다. 사실 이 5분조차도 중공의 가위질과 왜곡을 거친 것으로 의도적으로 시청자들을 호도하는 것이다.

전문 프로그램(가령 《초점방담(焦點訪談)》), 대담 프로그램(가령 《실화실설(實話實說)》), 드라마(가령 《생사결택(生死抉擇)》), 종합 예술프로그램(가령 “춘절 갈라”) 등은 모두 정밀하게 디자인한 것이자 또한 대중들의 구미에 맞고 또 당의 비위를 맞추는 것들이다. 사실 대중들의 구미에 맞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고 목적은 당이 만족해야 한다. CCTV의 《초점방담(焦點訪談)》에서는 일찍이 성망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감히 말하지만” 한 시청자가 여지없이 본질을 폭로했다. “무슨 《초점방담(焦點訪談)》이란 말인가, 처음에 방송을 할 때는 고사포로 모기를 쏘더니만 지금에 와서는 방송하는 것이 전부 현미경으로 세균을 찾는 것들이다. 큰 사건은 드러내지 않고 중대한 안건도 작게 만들어 가볍게 지나쳐버린다.” CCTV에 근무하는 직원조차도 자조 섞인 말로 “나는 당의 개(狗)로 당의 대문 앞에 쭈그리고 있다. 당이 누구를 짖으라고 하면 짖고 누구를 물라고 하면 그를 물며 몇 번 물라고 하면 몇 번 문다.”라고 했다.

드라마는 더 심각하여 주로 반부패 드라마, 개혁 드라마, 윤리 드라마, 사극 등을 막론하고 표현하는 것은 모두 당을 사랑하고 당을 이해하며 당을 믿고 당을 양해하자는 것들이다. 모든 반부패 드라마에서는 다 한 가지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바로 부패한 사람들은 모두 부직(副職)이나 하급(下級)이다. 이들이 비록 “당”의 사업에 일정한 손실을 초래하여 “당과 군중의 관계”, “당 간부와 군중의 관계”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결정적인 때에는 당의 화신인 정직(正職), 탐관의 상사 등이 의연히 나타나 탐관을 다스리고 모순을 해결하여 “당”의 체면을 세워준다. 현실 생활 중에서 사람들은 모두 부패는 단지 부직이나 말단 관원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만약 하급 관원들이 국고를 갉아먹는 애벌레라면 고급관원이나 태자당이야말로 국고를 병탄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안다. 비록 이렇긴 하지만 브라운관에 살아 있는 청백리의 모습은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당의 좋은 간부”에 대한 기대 속에 깊이 빠져버리게 만든다.

“우리 당은 일관적으로 정확하다.”는 중공과 중공의 대문을 지키고 있는 신화사와 독재기구. 좌측에는 실직 노동자 우측에는 빼앗긴 토지를 되돌려달라는 농민과 상방하는 민중의 모습.| 에포크타임스

1983년부터 시작된 “춘절(春節) 갈라”는 중공이 문예형식을 통해 당문화를 주입하는 것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노래, 만담(相聲), 소품(小品)에서부터 사회자의 대사, 낭송하는 축전, 해외 주재 영사관에서 조직한 유학생들의 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과 국가를 하나로 뒤섞고 “당”과 민족의 개념을 하나로 뒤섞어 사람들의 육친에 대한 정과 민족감정, 애국 정서를 이용해 그들에 대한 중공의 심리적 통제를 공고히 한다. 동북 사투리건 서북사투리건 상관없이 소품은 “당의 적”을 직접적으로 먹칠하는 외에 자신을 속이고 남을 기만하며 고생 중에서도 즐거워하는 소인배의 모습을 그려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주의력을 인생에 고난을 초래한 사회정치적 원인에서 벗어나게 한다.

또는 저질 농담으로 모든 사람을 아무 차이도 없는 저속한 인격으로 묘사해 마치 예전에도 그랬고 온 세상이 다 그런 것처럼 하여 중공 통치하에서 도덕이 크게 추락하는 사회현실을 덮어 감춘다. 2004년 중국 대륙에서는 모두 7만 4천 건의 민중 항쟁 사건이 발생했고 쓰촨(四川) 한위안(漢源)에서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으며 에이즈 촌에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졌으며, 황하(黃河)의 물이 끊기고, 회하(淮河)의 수질이 심각하게 오염되었으며, 탄광사고가 빈발하고,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 하에서도 2005년 “춘절 갈라”는 “성대한 세상의 큰 축하 공연(盛世大聯歡)”이란 이름을 붙였으니 정말이지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속임수가 갈 때까지 간” 상황에 도달했다.

한편 인터넷은 접속하는 사이트가 너무 많아 중공의 “주동적으로 출격(出擊)”하는 방식으로 당문화를 주입하는데 불리하다. 때문에 중공 당국의 인터넷에 대한 주요 정책은 바로 “봉쇄”하여 중공이 금지하는 언론이 전해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중공이 인터넷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주요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해외 사이트 봉쇄, 국내 사이트 폐쇄, 인터넷 작가를 체포하고 이메일을 여과하며 사이버 경찰과 사이버 특무를 배치하는 등이다. 이 방면에서 가장 유명한 조치는 1998년에 입안되어 초기에만 8억불을 투자해 2006년에 완성한 소위 “진둔공정(金盾工程)”이다. 이 공정의 명분은 공안의 자동화된 시스템이었지만 사실은 전(全) 방위적인 인터넷 봉쇄와 감시 시스템이다. 여기에는 기술, 행정, 공안, 국가안전부, 선전부 등 각 부문의 시스템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

인터넷 봉쇄 돌파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중국에서도 해외 사이트에 접속해서 뉴스와 텔레비전 등을 볼 수 있다.| 에포크타임스

인터넷 세계의 폭발적인 정보는 매우 많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언론 자유”에 대한 착각을 주었다. 사실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중공이 보게 한 것이며 중공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전혀 볼 수 없다. 거짓말은 자유롭게 유통되지만 진상은 도리어 극력으로 가려져 있는바 이것이야말로 중국 인터넷의 진실한 상황이다.

3)상용(常用)하는 주입수법 

(1)천지를 뒤덮는 주입으로 현실 세계와 철저히 단절 

미국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허구 세계 속에서 생활한다. 이 세계는 시추에이션드라마 극장으로 스토리는 바로 트루먼의 24시간 생활이다. 이 허구의 세계 속에는 진실한 세계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트루먼은 이곳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이 세계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도 못한다.

정치학 술어 중에 중공과 같이 사회에 대해 전(全)방위적으로 통제하는 이런 정권을 “전권식 정권(全權式政權)”이라고 부른다. 이런 정권이 존재할 수 있는 선결조건은 반드시 이 정권에 유리한 허구적 정보환경이 있어야 한다. 중공은 이런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알아 오랫동안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는 허구적인 정보환경을 창조하고 유지해 왔다. 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현실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채 진위(眞僞)와 선악(善惡)을 판단할 참조 체계를 잃게 된다. 중공 통치 하의 중국인들은 모두 “트루먼 식”의 허구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공은 또한 짧은 시간 내에 신속하게 허구적인 정보 환경을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도달하게 했다. 99년 7월 20일 이후 중공은 모든 선전기구를 총동원하여 파룬궁을 모함했다. 불과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중공 간행물에서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판하는 문장이 무려 30여 만 편에 달했다. 라디오, 텔레비전, 무용, 수업, 각종 회의, 집회, 대자보, 표어 등 다른 선전 도구들도 마찬가지로 파룬궁 비방에 전력을 기울였다. 당신이 아예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지 않는 다음에야 중공의 세뇌 선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좌: 온 가족이 실직했으니 내가 살아선 뭘 하겠나.” “우: 파룬궁을 연마한 후 원만 한다면서 목을 매 자살했어요.” | 에포크타임스

(2)끊임없는 반복주입으로 거짓을 진리로 날조 

나치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벨(Joseph Goebbels)이 일찍이 “거짓말을 천 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 중공은 이 말에 대한 충실한 신자이다. “계급투쟁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강조해야 한다.” “마오 주석의 책은 날마다 읽어야 한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작은 신문은 큰 신문을 베끼고 큰 신문은 량샤오를 베낀다(小報抄大報, 大報抄梁效 역주: 량샤오[梁效]란 문화혁명시기 활동하던 북경대학과 청화대학 대비판 소조에서 활약하던 필명의 하나로 린뱌오 비판 운동에 앞장섰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신화사(新華社) 기사를 그대로 전재해 발표”하고 있다. 중공은 거짓말을 천백번 반복하여 사람들에게 뿌리 깊은 관념으로 형성되게 했고 그들은 또한 이런 관념들이 자신의 사고를 거쳐 얻은 것으로 여기게 했다.

선전과 반복은 종종 반감과 풍자를 초래한다. 하지만 중공은 사람들의 반감과 풍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이런 초급적으로 보이는 주입수단을 사용하면 사람들에게 “중공의 속임수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그렇다면 굳이 작은 일을 크게 만들 필요 없이 그것과 견해를 같이 하자.”는 심리를 생기게 한다. 중공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은 노련하고 통달해서 쉽게 믿지 않고 주관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반복적인 선전을 통해 중공의 어휘, 개념, 표어, 구호와 사유방식이 강제로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가 사람들의 자발적인 정서와 판단을 대체한다. 단지 당신이 이런 어휘와 개념으로 사고하기만 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결론이란 오직 ‘당’이 허락하는 결론일 뿐이다. 당신이 민주화운동인사들을 ‘민운분자(民運分子)’라고 부르기만 하면 당신은 그들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없을 것이며, 당신이 ‘해방’, ‘신중국(新中國)’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중공에 대해 늘 감지덕지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당신이 중공을 ‘당’이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곧 이 악당이 중국을 불법으로 점거한 것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며, 당신이 문화혁명을 ‘큰 겁난’이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곧 중공의 암시를 받아들여 문화혁명이란 재난이 생긴 것은 모종의 초자연적인 신비한 힘에 의한 것으로 문화혁명과 중공 폭정의 필연적인 연계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당신이 실직한 노동자를 ‘샤강(下崗) 노동자’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곧 자발적으로 중공의 선전 책략에 협력하여 사회주의 제도 하에서는 단지 샤강만 존재할 뿐 자본주의와 같은 실업은 존재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것은 실업은 늘 파산, 유랑, 기아, 자살과 함께 연계되지만 샤강에는 도리어 늘 새로 출근하게 될 날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중국인들의 말을 들어보고 중문 토론방의 분노한 청년들의 글을 보면 모두가 당의 언어이다. 이를 통해 중공의 반복적인 주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볼 수 있다.

(3)민의(民意)를 왜곡하고 권위에 호소해 심리적인 공세 취해

중공은 인민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박탈한 이후 더 나아가 자신이 최대다수 민중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선전하면서 이를 통해 선전의 고지를 점거하고 사람들의 군중심리를 이용해 인민들에게 왜곡된 논리와 거짓말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1957년 반우파 운동 중에 신문과 잡지에는 온통 “노동자계급의 발언”, “전국 각 민주당파들이 모두 공산당과 함께 일어나 우파를 토벌”, “전군(全軍) 지휘관과 장병들 분노의 성토”, “소수 우파들 인민 군중들에게 거듭 포위당해”, “우파는 한줌의 쓰레기에 불과하며 절대다수 지식인들은 당과 한마음” 등이었다. 순식간에 ‘우파분자’들은 인민 군중의 ‘망망대해’에 포위당했고 “오로지 고분고분할 뿐 함부로 말하거나 움직일 수 없었다.” 중공이 발동한 매 차례 정치운동은 모두 당, 정, 군, 노조, 공청단 위원회, 부녀연맹, 각 민주당파, 무당파인사, 종교계, 교육계, 과학기술계, 문예계, 법조계, ‘각 민족 동포와 해외 교포’, ‘홍콩, 마카오, 대만 동포’ 내지는 일반 노동자, 농민(사실은 중공이 이들 단체 내에 심어놓은 내부 대리인들)들의 ‘폭로 비판’, ‘성토’, ‘고소’에 이르기까지 마치 온 국민들이 태도를 표시해 지지하는 듯한 가상을 조작한다. 독립적인 견해를 지닌 그런 인사들은 ‘소수파’란 심리적 열세 속에서 설령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감히 꺼내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신조차 믿지 못한다. 중공은 파룬궁을 박해하는 운동을 발동하는 가운데 발기한 소위 ‘백만 명 서명’은 이전의 ‘날조된 대다수’, ‘날조된 민의(民意)’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날조된 민의’ 외에도 중공의 심리전 속에는 ‘권위에 호소’하는 수법이 포함되어 있다. 일반 백성들은 많건 적건 어느 정도 ‘권위를 숭배’하는 심리가 있다. ‘전문가’, ‘교수’, ‘학자’의 말은 일반 소시민들의 말보다 무게가 있고 중공 관원의 말보다는 중립적이며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공 통치하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전문가’, ‘학자’란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중공 매체에는 다가갈 수 없다. 어용 ‘이론가’, ‘과학자’들은 멋진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가 ‘당’에서 선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학술적인 언어로 보기 좋게 포장한다. 인민대중들은 ‘당’과 ‘전문가’가 미리 짜고 연기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당문화 선전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4)공개적인 거짓말로 전 세계를 속여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확산하는 이 수법 역시 중공의 경전으로 여길 만하며 중공은 줄곧 이 초식을 아주 애지중지하며 여러 차례 사용해 왔다.

마오쩌둥은 “진시황이 다 무언가? 그는 460명의 유생을 묻었지만 우리는 4만 6천명을 묻었다. 어떤 사람은 우리를 독재정치라고 욕하고 진시황이라고 욕하는데 우리는 모두 승인하며 실제와도 부합한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당신들의 말이 충분하지 못하기에 우리가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깡패[流氓]인데 누굴 두려워하랴”와 같은 이런 ‘기개’는 수많은 사람들을 억눌렀다. 선량한 사람들은 종종 이치가 있고 기개가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 행동도 틀림없이 광명정대할 것이라고 여긴다. 때문에 마오의 ‘4권의 웅장한 문장(雄文四卷)’ 속에는 비록 많은 것이 “깡패가 생억지를 부리고 함부로 지껄이는 욕”이지만 사람들이 얻는 결론은 도리어 이것이야말로 “무산계급혁명가의 당당한 흉금”과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영웅의 기개”라고 여긴다.

좌 : 두 손에 ‘인민민주주의 독재’라는 큰 칼을 들고 계급투쟁, 노선투쟁, 사상투쟁이란 칼을 메고 사상 자유를 짓밟고 있는 마오쩌둥. 우 : ‘폭정’이란 칼을 들고 마오에게 부끄럽다고 말하는 진시황. | 에포크타임스

장쩌민(江澤民)은 일국 원수의 신분으로 국제매체 앞에서 파룬궁을 비방했다. 중공의 후안무치한 수법을 전혀 모르는 서양기자들이 어찌 일국의 국가원수가 광명한 천지에 함부로 말을 지껄였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2006년 3월 9일 선양(瀋陽) 쑤자툰(蘇家屯) 강제수용소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의 생체에서 장기를 몰래 적출해 팔아먹는 짐승 같은 만행을 저질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3월 28일 중공은 이미 배치를 끝낸 후 외교부 대변인 친강(秦剛)을 기자회견장에 보내 앞의 혐의를 부인하고 심지어 현장에 가서 조사해 볼 것을 ‘요청’했다. 이 ‘속임수’는 비록 고명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일부 사람들을 미혹시켰다. ‘중국 대륙에 들어가 전면적으로 파룬궁 박해진상을 조사하는 위원회’의 조사원이 신속하게 반응하고 호주, 독일, 미국의 중공 영사관에 중국에 들어가 조사할 수 있는 비자발급을 요청했지만 3차례 신청이 모두 거부당했다. 호주 시드니 총영사관에 직원은 친강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서 조사원에게 “그럼 당신이 친강을 찾아가 요청편지를 달라고 하시오!”라고 말했다. 대대로 전해져온 중공의 기만술은 너무나 뛰어나 심지어 자기 사람마저도 믿을 수 없게 했다.

좌 :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에 항의하는 진상조사단에게 대변인(개)을 내세워 “반(反)중국 세력의 거짓말!”이라고 선전하는 중공. 우 : 뤄간(羅干)이 직접 나서 모든 증거를 소멸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병원에서는 수감된 수련생들을 다른 곳으로 이송하고 관련 증거를 인멸. | 에포크타임스

‘신문전선(新聞戰線)’에서 일하는 중공 당원에 대해 말하자면 거짓말을 퍼뜨리는 것이 바로 그들의 직업이다. 거짓을 퍼뜨릴 때 안색이 변하지 않고 가슴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기본적인 소양인 셈이다. 그들은 매일 ‘직장인’의 외투를 걸치고 있지만 사실 마오쩌둥, 장쩌민, 친강과 본질적인 차이란 없다.

(5)적반하장 격으로 거짓을 퍼뜨리면서 거짓에 반대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당팔고(黨八股)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도리어 그 속의 모순과 오류를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마오쩌둥은 “우리는 마땅히 군중을 믿어야 하고 우리는 마땅히 당을 믿어야 하는바 이 두 가지는 근본적인 원리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군중들이 모두 당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류사오치(劉少奇)는 “신문보도는 객관적이고 진실하며 공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아주 좋고 또 옳지 않은가? 민주국가의 매체들도 이런 목표들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동시에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며 인민과 무산계급사업에 유리한가를 보아야 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해관계와 진실원칙 사이에 모순과 충돌이 생길 때 어느 것을 중시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무산계급 사업’에는 유리하지만 인민들에게는 해롭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과 KGB | 에포크타임스

그는 또 예를 들어 설명했다. “스탈린이 많은 착오를 범했고 숙청과 투쟁 중에서 일부 사람들을 죽였는데, 이는 진실이다. 그러나 만약 이를 보도한다면 곧 현재 투쟁에 아주 불리해지는데 이는 입장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스탈린은 몇 사람을 죽였는가? 불완전한 통계로 1929년부터 1953년까지 모두 1950만에서 2천만 명의 소련 국민들이 스탈린의 희생양이 되었다(전쟁연대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 이는 소련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중공의 일당 이익을 위해서라면 2천만 명의 목숨은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류사오치가 말하는 ‘객관, 진실, 공정’이다. 물론 이것은 류사오치의 일관된 입장이다. 일찍이 40년대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소위 좋고 나쁨을 구분한다는 것은 마땅히 당의 공작에 따라야 하며 당의 이익에서 출발해야 한다. 허풍과 아첨이 좋지 않아도 공작에 유리하다면 좋은 것이며 해야 한다.”

오늘날의 중공 뉴스 기구는 한편으로는 ‘거짓뉴스에 반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를 엄밀히 단속’한다. 또한 한편으로는 ‘일체는 모두 실제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진실을 말하는 기자를 체포한다. 또 한편으론 제도적으로 거짓을 선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국가 신문의 ‘허위성’을 공격한다. 진실한 중공을 알고 싶다면 그 말만 들어서는 안 되며 그 행동을 봐야 한다.

4)‘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주입수법

문화혁명 이후 중공은 비록 선전기구를 발동해 그 당이 천인공노할 큰 죄를 저지른 것은 불가피한 ‘착오’였다고 했지만 “우리 당은 일관적으로 정확했다”는 헛소리가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중공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여 더 많은 정교하면서도 더욱 기만적인 선전수법을 끌어들였다.

진실로 거짓을 어지럽히기(以真亂假) : 만약 49년 이전에 중공의 선전 책략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사설(邪說)로 역사발전의 법칙을 묘사하는 “거짓으로 진실을 어지럽히는 것(以假亂真)”이었다면 49년 이후에 중공의 책략은 “거짓을 진실로 만든 것”이라고 할 만하다. 중공은 각 계층 사이에 모순을 강제로 도발시켜 그것의 투쟁철학이 마치 ‘객관’적인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진실로 거짓을 어지럽히는 것”으로 책략을 조정하여 사실을 황당한 이론에 끼워 넣어 아예 사람들로 하여금 도대체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작은 것을 욕해 큰 것을 돕기(小罵大幫忙) : 마치 “파리는 때려잡아도 호랑이는 공격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 중공의 혀 역시 일부 부정적인 면들을 폭로하여 매체의 공정성과 언론 자유의 가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중공 통치의 흑막에 위험할 수 있는 것은 단호히 봉쇄한다. 일부 매체에서는 자질구레한 부정적인 소식을 여러 차례 보도해 어느 정도 신뢰를 얻은 후에 중공이 한 차례 정치운동을 발동할 때면 크게 손을 쓴다. CCTV의 「초점방담(焦點訪談)」, 「실화실설(實話實說)」프로그램은 간혹 중공의 근본적인 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부정적인 소식을 보도하거나 혹은 비교적 참신하고 국민들이 믿을 만한 소식을 보도한다. 그러나 “당의 생사존망과 관계”된 큰 일이 있을 경우, 가령 파룬궁 박해에서 중공에 의해 앞무대로 이끌려나와 그동안 쌓아온 인기를 이용해 거짓을 날조하고 모함하는데 이용되었으니 수치스런 여론 앞잡이라고 할 만하다.

저급하고 자질구레한 대량의 뉴스로 매체를 채워 진실한 정보를 문자의 쓰레기 속에 파묻기: 한 서양 기자가 중국을 방문한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10년 전에 사람들이 유명한 민주화운동 인사 웨이징성(魏京生)을 모른 것은 중공이 그의 이름을 매체에서 언급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웨이징성을 모르는 것은 연예스타들의 성적인 매력이 사람들을 미혹시키기 때문이다. 중공은 일관되게 ‘불법 출판물을 단속(打非)’하면서도 ‘음란물은 제거’하지 않았다. 중공의 소위 ‘포털 사이트’를 둘러보면 온통 저질적이고 색정적인 뉴스와 자질구레한 사회소식들로 가득 찬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학자가 통계한 것을 보면 해외 사이트에 만약 색정적인 사진이 올라갈 경우 걸러질 확률이 10%이지만 만약 야당을 언급하면 60%정도 걸러지고 ‘파룬궁(法輪功)’을 말하면 75%가 걸러진다. 《구평공산당(九評共產黨)》 사이트를 올렸을 때 걸러지는 비율은 90%를 넘어섰다. 이기적이고 냉담하며 방탕하고 머릿속에는 온통 쓰레기 같은 정보로 가득 차 사회적으로 큰 국면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중공의 현재 통치에 가장 유리하다. 때문에 중공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이런 사람들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거짓말과 선전을 수출한 후 다시 수입 : 마오쩌둥은 일찍이 《참고소식(參考消息)》을 발표하는 것은 백신을 맞는 것과 같으며 “간부와 군중들에게 정치적인 면역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중공은 이미 수많은 해외 간행물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뉴스만 단편적으로 찾아내는데 만족하지 못한다. 중공은 거짓말을 하여 다른 나라 민중들을 독해시키는 한편 직접적으로 해외 매체(중국어 및 외국어 매체)와 작가를 매수하여 자신을 대신해 분칠하게 한다. 중공 악의 우두머리 장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하여 세계 20여개 국가의 법정에 피소되어 사면초가의 상태에 처하자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중국어를 전혀 모르며 중국에서 사업하는 금융가 로버트 로렌스 쿤과 합작하여 《중국을 변화시킨 거인 장쩌민》이라는 제목의 전기를 출간했다. 파룬궁 문제에서 일부 국가의 매체와 통신사들이 중공의 유혹에 넘어가 신화사의 거짓말을 그대로 반복하면 중공은 다시 이 거짓말들을 가져다가 중국민중들을 기만한다.

공격할 사람과 끌어들일 사람을 선별적으로 대처 : 89년 이후 중공은 의도적으로 지식인, 공무원 군대를 끌어당겨 매수하였다. 이들 직군의 임금을 인상하고 모든 특권과 불법적인 수입을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외에 또 그들에게 일정한 알 권리와 발언권을 주어 그들의 양해와 충성을 얻고자 했다. 이 약간의 언론 자유는 작은 범위(가령 학자들의 소규모 모임)내로 엄격하게 제한되고 대중매체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중공이 점점 언론에 대한 통제를 느슨히 하고 있다는 허구적인 인상을 얻게 되며 이로 인해 기꺼이 중공을 위해 변호하며 중공 역시 그들이 변호하는 언론은 기꺼이 대중매체 속에 들어가게 하여 일반 민중들을 호도한다.

중공의 선전 책략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거짓말을 크게 확산하는 것이 실제와 너무 벌어지자 사람들은 상식과 경험에서 출발해서는 이 정권이 왜 이토록 후안무치하고 황당한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할 수 없이 잠시라도 그들이 믿을 만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거짓말을 대대적으로 퍼뜨릴 때 그 상세한 내용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았다. 왜냐하면 세세한 부분이야말로 인심을 움직일 수 있고 의문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상을 잘 모르는 외국인을 텔레비전에 등장시켜 그들로 하여금 중공이 원하는 발언을 하게 한다. 아울러 상품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기술과 형식상에서 “세계와 연결”, 현장생방송, 핫라인 전화, 심층 보도, ‘여론’ 조사 등 화려하게 수식한다.

중공은 세계 최대의 선전기구들을 갖고 있다. 이들 기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설사 양지(良知)가 다 사라지지 않았고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는 생각이 있어도 중공의 엄밀한 통제 하에서는 그들도 어쩔 수 없다. 중공 중앙의 ‘정책방침’이 결정되기만 하면 이 대군이 각자 능력을 다 발휘해 각종 황당한 거짓말을 생산해내지 않을 수 없다. 중공은 방대한 거짓말 기구를 가동하여 중국인들에게 수십 년 동안 무신론, 유물론, 투쟁철학과 형형색색의 왜곡된 사설(邪說)을 주입했다. 이 왜곡된 사설들이 “혈관 속에 스며들고 행동으로 실행”되어 매 하나의 개체들이 모두 그것을 이용해 문제를 사고할 때면 당문화의 수확기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2.인민들에게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책을 강요

서양 민주국가에서는 매우 많은 보통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사악’과 동의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서적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저작을 자유롭게 출판, 유통하고 읽을 수 있다. 비록 마르크스레닌의 폭력혁명학설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버려지긴 했지만 학자들은 여전히 그 이론을 사회학 혹은 정치학의 한 유파로 삼아 연구한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사고하고 글을 쓰게 하며 교수들도 학생들에게 반드시 무엇을 믿으라고 규정하지도 않는다. 사회적으로 보수에서 진보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들 사상유파가 자유롭게 경쟁하며 사람들의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때문에 비교적 개방적이며 쉽게 무엇을 맹종하지 않는다.

문장내용 :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만세 | 에포크타임스

하지만 사람들이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을 관대하게 대한다고 하여 그들 역시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공산당은 정권을 찬탈한 후 이데올로기를 가장 중시하여 사교의 정교합일을 실행해 폭력과 조직적인 수단을 통해 인민들에게 이들의 저작을 읽도록 강요해 사교의 교의를 주입해 왔다. 수십 년 동안 중공의 사상체계에서 마르크스는 서양문명을 집대성했고 마오쩌둥 사상은 ‘최고의 가장 생생한 마르크스주의’라고 여겨져 왔다. 때문에 모든 정통적인 전통사상은 혹은 뜯어고쳐지거나 왜곡되거나 혹은 아예 금지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변종만 전해져 세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중국인들을 독해시켜 왔다.

그렇다면 중공은 왜 인민들에게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의 서적을 강제로 읽게 하는가?

첫째, 조직을 수단으로 이용해 ‘조직생활’, ‘정치학습’을 통해 당원과 단원들에게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의 저작과 중공의 문건을 학습하게 한다. 일찍이 중공의 조직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들 중공이 어떤 일이 있어도 정기적인 ‘조직생활’, ‘정치학습’을 꾸리며 이들 회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레닌의 저작과 중공 문건을 읽을 것을 요구받는다. 또한 늘 학습 체험과 사상보고를 제출하게 한다.

둘째, 정기적인 정당(整黨)과 정풍(整風)은 당원들에게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의 저작과 중공의 문건을 정기적으로 학습할 것을 강요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숙청되거나 처분을 당한다. 40년대의 정풍(整風), 50년대의 반우파 투쟁, 6,70년대의 문화혁명, 80년대 초의 정당정풍, 80년대 중기의 ‘정신적인 오염 제거’, ‘자산계급자유화 반대’, 얼마 전에 나온 ‘보선(保先) 운동’ 등 몇 년 혹은 십몇 년을 주기로 하여 사람들에 대한 중공의 통제력이 약화될 때면 중공은 곧 ‘당성(黨性)’ 교육을 강화하고 ‘당조직’의 당원에 대한 사상통제를 다시 확인한다.

2004년 말 <9평 공산당>이란 책이 발표된 이후 중공은 전대미문의 통치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2005년 1월 종공 중앙은 ‘보선운동’을 발기했고 2005년 1월부터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이용해 전당에 “‘3개 대표’ 중요사상 실천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공산당원 선진성 유지 운동”을 전개했다. 당원들은 문건을 학습하고 맹세를 되새기며 명부에 새로 등록할 것과 장편의 사상보고와 학습 체험을 써낼 것을 요구받았다.

중공이란 고목에 보선(保先)의 페인트를 칠해 신선도를 유지(保鮮)해 보려는 시도. | 에포크타임스

비록 2006년 6월 29일 소집된 중공중앙 정치국 총결회의에서 보선운동을 “주제가 선명하고 지도력이 있고 조치가 적당하며 공작이 착실하여…중략…실천적으로나 제도적, 이론적으로 현저한 성과를 거뒀다.”라고 했으나 간부, 당원들은 보선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가졌고 이는 완전히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사람들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불평을 토로하고, 괴상한 말을 퍼뜨리며, 원성이 자자했지만 다른 한편 어쩔 수 없이 형식적인 문장을 썼다.

반복적인 이데올로기의 고조는 비록 사람들의 미움을 사긴 하지만 여전히 은연중에 영향을 받게 된다. 1964년 교육에 관한 첫 번째 담화 중에서 마오쩌둥은 “시험은 귓속말을 하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할 수 있다. 명의를 도용함은 단지 남의 것을 한번 베끼는 것에 불과하며 내가 하지 않아도 당신이 쓴 것을 내가 한번 베꼈다면 역시 약간의 심득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공은 ‘한번 베끼’고 반복하는 것이 당원과 군중들에게 거짓말에 대해 좀더 깊은 인상을 준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런 거짓말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쌓인다면 나중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거짓말을 반복하여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을 독해할 것이다.

다른 한편 인성과 양지가 남아 있는 그런 당원들 역시 그 사람의 인격과 몸가짐을 모욕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하나의 거짓말을 퍼뜨려도 거짓말을 확산하는 것이며 한번 타협을 해도 역시 타협한 것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이들은 단지 자신의 인격을 확고히 지킬 수 없게 되고 시류에 편승하게 된다. 중공이 이렇게 하는 것은 동시에 또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해 싫증나게 하려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면 중공은 사람들의 정치적인 열정을 선동하고 “국가 대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고취하면서 정치적으로 뒤떨어진 사람들을 ‘소요파(逍遙派)’라고 비판한다. 지금 중공은 또 사람들에게 정치에 참여하지 말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정치를 한다’는 딱지를 붙인다. 매 차례 정치 운동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제도적으로 거짓을 꾸미고 형식적으로 지나치며 중국인들에게 일종 ‘정치는 너무나 어둡고 암담’하며 ‘누가 그런 더러운 곳에 가겠는가’ 등의 심리를 갖게 만든다. 이에 온 국민들이 돈만을 추구하게 만들고 이기적이며 냉담하고 세속적이고 모든 것을 의심하며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어느 단체가 중공에 의해 탄압을 당하면 몸을 사릴 줄 모르며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런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정치에 대한 염증 속에서 중공은 다시 한 번 강산을 안정시키고 계속적으로 국민들의 재산을 미친 듯이 약탈하며 아울러 양지와 선념(善念)이 남아 있는 그런 사람들을 악독하게 박해하고 있다.

셋째,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저작은 양이 방대하기에 문화 수준이 높지 않은 그런 당원들은 이들의 책을 통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에 마르크스 레닌을 읽는 데서부터 중국화된 마르크스주의인 마오쩌둥 사상(마오는 27년 동안의 집권 기간에 5, 60억 권의 책을 발행했다)을 읽고, 《마오쩌둥 선집(毛選)》을 읽다가 《마오쩌둥 어록(毛語錄)》과 《마오쩌둥 3부작(老三篇)》을 읽게 된다. 이리하여 원래 박잡(駁雜)했던 주의가 갈수록 간단하고 거칠게 변하며 황당무계한 표어와 구호로 변질된다. “마르크스주의의 이치는 매우 복잡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반란에는 이치가 있다(造反有理)는 것이다.” 문화혁명 중에 다음과 같은 웃기는 일화들이 있다. 야심한 삼경에 확성기 소리에 놀라 깨어난 사람들에게 ‘최고지시’가 전달된다. 물건을 살 때면 사람들은 “‘이기주의와 투쟁하고 수정주의를 비판하자!’ 이 고기 한 근에 얼마요?” 그러면 판매하는 사람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 1원8푼이요.”라고 대답한다. 지금까지도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벽에 그려진 마오쩌둥 시대의 표어와 구호들을 볼 수 있다. 이런 표어와 구호는 확실히 현실을 해석할 수는 없지만 린자오(林昭)에서 위뤄커(遇羅克), 장즈신(張志新)에 이르기까지 공산당보다 진실했던 사람들은 모두 좋은 결말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런 기억들은 오히려 새롭고 생각만으로도 몸서리를 친다. 이에 운동에 습관화된 사람들은 더 이상 진지하지 않으며 ‘적당히 지나가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마비되어 목숨을 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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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매 차례의 정치운동을 따라 공산당이 책을 금지하고, 불태우고 훼손한 것은 인민들의 정신생활을 결핍하게 만들었고 단지 중공이 허락하는 약간의 책만 볼 수 있었다. 문화혁명이 발발한 이후 중국의 인쇄소들은 모두 마오쩌둥 어록과 선집을 인쇄하느라 정신없이 바빠 정상적인 출판인쇄는 거의 전부 중단했다. 문화혁명이 시작되던 해에 중국 출판업계는 거의 공백상태에 처했다. 대량의 도서들이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의 쓰레기로 간주되었고 4가지 낡은 것을 태울 때 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서점 역시 지도자의 저작만을 팔 수 있었다. 그때 매우 많은 가정에는 ‘홍보서(紅寶書 역주: 직역하면 붉은 보배 책으로 문혁기간에 마오의 선집이나 어록을 지칭한 말)’ 외에는 그 어떤 책도 없었다. 매우 많은 양심수, 지식인, 우파로 몰려 시골로 쫓겨난 사람들은 모두 《마오쩌둥 선집》을 십여 차례 심지어 수십 차례 본 경험이 있다.

다섯째, 중공은 교육영역에서 정치를 최우선으로 실행해 각급 학교교재에서 온통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문장과 이들의 공덕을 찬양하는 문장을 실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면 중공의 세뇌와 주입을 피할 수 없으며 이중 많은 부분은 암송할 것을 요구한다. 청소년들은 기억력이 좋은 반면 분석 능력이 떨어지기에 어릴 때부터 공산당의 황당무계한 이론을 주입 당하는데 이 중 매우 많은 관념과 사유습관이 사람의 일생을 좌우지할 수 있다.

50여 년이 넘는 고심에 찬 경영을 겪은 후 중공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의 저작과 많은 문인들의 책을 이용해 중국에 천지를 뒤덮는 그물을 설치해 놓았다. 이 그물을 조성하는 것은 바로 하나하나의 개념, 판단과 추리이다. 이런 개념, 판단과 추리로 자신의 방식으로 천, 지, 인, 인류사회, 사람의 사상을 해석하고자 시도하며 사람들을 철저히 현실세계에서 격리하고, 자연과 인성(人性)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판단을 철저히 대체하고 이식해 최종적으로 중공 사당의 말만 듣는 뿌리 없는 사람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이 거대한 그물은 비록 이미 썩어문드러졌지만 사람들의 사유에는 일정한 관성이 있기에 잠시나마 그것은 여전히 일부 사람들의 사상을 속박하고 있다. 《구평(九評)》이 전파되어 당문화를 타파함에 따라 사람들은 결국 그물에서 철저하게 벗어날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폭력과 거짓말을 양 축으로 버텨온 중공이 구평 공산당의 칼에 최후를 맞고 있다. | 에포크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