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당(黨)문화]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중)

9평 편집부
2007년 02월 13일 오전 1:57 업데이트: 2021년 10월 26일 오후 5:39

상편:당문화는 어떻게 건립되었는가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중)


목차

3.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1)중공이 투쟁사상을 주입하는 목적 
2)정치투쟁 중의 주입 
3)조화로운 공존으로 회귀하는 길 


3.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2005년 중공군 소장(少將) 주청후(朱成虎)가 홍콩에서 서양 기자들을 마주하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일단 중미(中美)가 전쟁을 시작하면 중공은 시안(西安) 동쪽의 모든 도시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미국인들도 장차 반드시 수백 개 도시를 희생시킬 준비를 해야 하며 2백여 개 심지어 더 많은 도시가 중국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이것은 중공 당문화(黨文化) 중에서 투쟁사상의 전형적인 반영이다. 실제상 당문화 중의 투쟁과 유혈(流血)은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고 화합과 포용은 반대로 비정상으로 되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후자는 “혁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투쟁사상이 지도하는 생존논리는 바로 발전하고 생존하자면 반드시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희생양이 되는 것은 우선적으로 무능하고 자유롭게 선택할 권력이 없는 약자들이다. 주(朱) 장군은 비록 중국과 미국이 전쟁을 시작할 때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 명백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주 장군과 같은 이런 “국가의 동량”들은 자연히 일반 국민들보다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일찍이 “자연과학의 계급성”을 고취하여 중앙선전부(中宣部) 과학처(科學處) 처장의 칭찬을 받았고, 나중에 또 《홍기(紅旗)》잡지의 추천을 받아 중국과학원 원사(院士)가 된 허쭤슈(何祚?)는 2005년 말 언론의 취재를 받을 때 중국에서 탄광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이때 그는 “누가 당신에게 불행히도 중국에서 태어나라고 했는가?” “중국이 발전하자면 어느 정도 대가는 피할 수 없다.”라고 했다. 사실 상당수의 젊은이들 역시 이런 식으로 중국 하층 민중들의 불행과 고난을 본다. 아마도 그들은 전부 “허(何) 원사”, “주(朱) 장군”과 같은 엘리트로 자처하지 자신을 발전의 대가로 여기진 않을 것이다.

당문화 중의 투쟁사상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중공의 주입을 거쳐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반 경제, 문화, 사회생활의 각 영역에 침투되었다. 이런 투쟁사상은 명백히 말하자면 다윈의 진화론을 인류사회에 응용하여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바로 짐승들의 정글의 법칙이다. 이런 법칙 하에서 옳고 그름, 선(善)과 악(惡)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정계나 경제계나 애정(情) 싸움이든지 막론하고 말이다.

에포크타임스

 

생존경쟁, 약육강식, 폭력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긴장된 투쟁, 아귀다툼, 경계심으로 가득 찬다. 이것은 또한 전 사회적으로 가짜 약, 가짜 술, 가짜 간장, 독이 든 쌀, 독이 든 밀가루, 독이 든 씨앗이 범람하고 더욱이 물 먹인 고기, 하수찌꺼기로 만든 기름, 아이들의 머리가 커지게 하는 유독성 분유 등이 범람하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단지 졸업증명서만 쉽게 조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량, 댐 등도 가짜가 있고 심지어 결혼마저도 믿을 수 없게 만들어 여자는 남편이 배신할까 두려워하고 남자는 아이가 진짜 자기 자식인지 의심할 정도에 이르렀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아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돌을 던지는 것도 이미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런 대가를 수반한 “발전”이 최종적으로 중국민족을 강대하게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1) 중공이 투쟁사상을 주입하는 목적 

조지 오웰의 명작 《동물농장》에서는 한 무리의 동물들이 인류의 “착취”를 견디지 못해 혁명을 일으킨다. 결국 사람을 내쫓고 동물 자신이 주인이 된 “동물농장”을 만들었다. 동물들을 거느리고 “혁명”을 일으킨 지도자- 돼지는 얼마 안 가 단독으로 우유와 사과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애초에 품었던 “모든 동물은 똑같이 평등하다”는 신념을 지니고 혁명에 참여한 다른 동물들의 의혹에 대해 스노볼(선전을 책임진 돼지)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우리가 이것들을 먹는 유일한 목적은 우리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농장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조직하는 일을 우리가 도맡아야 한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때문에 당신들을 위해 우리는 비로소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 돼지들이 실직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아는가? 존스가 다시 올 것이다. 그렇다. 존스가 다시 온다! 동지들! 이것은 정말이다.”

존스는 원래 동물농장의 주인, 즉 “낡은 사회”의 통치자이다. 일부 동물들은 존스가 있었을 때 동물들의 생활이 지금보다 못하지 않음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반복적인 선전을 통해 존스가 다시 온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이미 조건반사 식으로 모든 동물의 머릿속에 주입된 것이다. 때문에 모두들 돼지의 특권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곧 돼지의 특권은 갈수록 많아졌고 다른 한편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존스가 다시 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특히 존스와 결탁해 농장의 건설을 파괴한 “배신자”들과 투쟁하고 학살했다. 이는 동물들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이러한 “가장 큰 일” 앞에서 기타 불만과 다른 의견들은 모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되었다. 그리고 수시로 “경각성을 높이고”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모든 사회생활을 초월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오웰은 우화의 형식을 통해 극권(極權) 통치자가 투쟁철학을 고취하는 실질을 심각하게 묘사했다. 즉 사람들의 머릿속에 늘 존재하는 적을 만들고 유지했으며 시시각각 적의 위험성을 강조하여 “일치단결”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극권통치자의 모든 만행을 “잠시 인내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만행은 결국 민중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좋은 소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런 투쟁은 늘 “장기적이고 복잡하며 아주 고생스럽고” 사람들이 “잠시 인내함”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우리 중국인들은 다 시시각각 존재하는 이런 “위험”에 익숙하다. 이런 위험은 전에는 “장(제스) 일당의 특무”에서 왔고 “천지를 뒤집으려는 한 무리의 지주, 부호, 반동”에서 왔고 “미친 듯이 사회주의를 공격하는 한 무리 우파분자들”로부터 왔으며 “자본주의의 길을 걸으려는 한 무리 집권파”에서 왔다. 또한 “한 무리의 어중이떠중이들”에게서 왔다…. 이런 “위험한 적”은 일찍이 우리 곁의 친지, 선배, 스승, 이웃이었다. 중공의 “너 죽고 나 살기” 식 투쟁논리의 지도하에 그들은 한 무리씩 “소멸 당했다.” 이미 적어도 4천만 중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비명횡사했다.

에포크타임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공산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파산되었고 오늘날 중공은 이미 국민들에게 똑똑히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 당시 이런 “인민의 적”들은 도대체 무엇이 위험했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위험”이 주위에 여전히 존재함을 발견하게 되며 민중들의 의식 중에서 투쟁은 여전히 필요했다. 단지 오늘날 “위험한 적”의 죄명은 이미 유행이 지난 “반당(反黨), 반사회주의”에서 소위 “국가안전을 해치고”, “정권을 전복하며”, “반(反)중국세력”, “X교 활동에 종사” 등으로 조용히 변했다.

이것은 바로 중공이 지난 몇십 년간 민중들에게 투쟁사상을 주입한 결과이다. 실제상 전통문화는 거의 파괴되고 명예가 실추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몇천 년 동안 전해온 중국 전통의 선악(善惡) 가치관이 철저히 전복되었으며 동시에 중공은 이미 민중들에게 당문화의 시비(是非)가치관을 주입했다. 이런 가치관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투쟁철학이다.

공산당의 세계관은 계급투쟁의 이론 위에 건립된 것이다. 그것의 철학사상인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은 세계의 모순성, 대립성, 투쟁성을 주장하며 일의 내부에서 투쟁을 통해 양질이 변화하고 이로부터 저급한 단계에서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고 전화(轉化)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상을 인류 역사에 응용한 것이 바로 소위 역사유물주의(歷史唯物主義)이다. 즉 사회 발전사는 바로 계급투쟁의 역사이며 투쟁의 핵심은 국가정권이고 국가정권은 폭력에 의해 획득되고 또한 폭력에 의해 운행, 유지된다. 명백히 말해서, 이것은 다윈의 진화론을 인류사회에 운용한 것으로 계급 간의 잔혹한 투쟁을 통해 결국 약육강식하고 적자(소위 “선진계급”)가 생존한다는 것이다.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중공은 자신에게 “합법 정권”이란 딱지를 붙이기 위해 늘 “역사가 중국 공산당을 선택”했고 인민들이 역사를 결정하므로 이것 역시 인민들이 선택한 것이라고 말해 왔다. 중공이 말하는 “역사가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에 함축된 논리는 바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다. 중공은 반란을 통해 성공했기 때문에 그 승리자가 “역사발전의 조류”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그 투쟁이란 사설(邪說)을 주입하는데 열중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시비(是非)를 뒤섞고 인과를 뒤집는 이런 사설은 300여 년 전 중원의 한인(漢人)들이 만주족의 침습과 청나라의 건립을 “선택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700년 전에 한인들이 몽골의 침입을 선택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공이 집권한 역사는 50여 년에 불과하며 역사의 선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성급한 것이다.

사실 변증법은 마르크스가 만든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 자신도 변증법은 헤겔에게서 내원했다고 승인했다. 그러나 헤겔의 사상은 중국 고대의 변증법적 사유에서 계발을 받은 것이다. 사실 중국 고대의 『역경(易經)』, 팔괘(八卦), 하도(河圖), 『황제내경(黃帝內經)』, 『손자병법(孫子兵法)』 등에는 변증법적 사유의 지혜로 가득 차 있다. 『역경』은 64괘를 통해 인류가 인식할 수 있는 우주 층차 중에서 사물 중의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요소 사이의 상호제약, 전화(轉化), 의존관계와 이를 통해 사물의 발전법칙을 연역해 냈다.

여기에서는 단지 사물이 운동 발전하는 중에서 동정(動靜)의 변화, 음양(陰陽)의 소장(消長), 오행(五行) 상생상극 등의 요소를 서술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물이 “잠룡물용(潛龍勿用)”, “현룡재전(見龍在田)”에서 결국에는 “비룡재천(飛龍在天)”과 “항룡유회(亢龍有悔)”(『역경―건괘』)의 완전한 발전과정을 묘사했다. 더욱이 박복(剝復)순환, 비극태래(否極泰來 역주: 불운이 극에 달하면 행운이 온다는 의미)의 변화법칙을 묘사했다. 마르크스가 유물변증법에서 논술한 사물의 보편적인 연계, 변화발전, 양질변화, 부정의 부정 등은 단지 표현의 차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경』에서는 단지 정성(定性)적인 논술뿐만 아니라 정량적인 파악도 있다. 『역경』을 기초로 하는 이런 사상은 한의학에 운용되었고 고대 군사 병법에 운용되어 고대 동양의 뛰어난 지혜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의 소위 “발전”에서 특히 투쟁성을 강조하고 과장했으며 모순의 대립충돌방면을 강화했다. 그는 “대립면의 통일은 조건적인 것으로 일시적이며 곧 사라지는 것으로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상호 배척하는 대립면의 투쟁은 절대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공산당 이론가들은 투쟁성을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혁명영혼”으로 여겼다. 이를 기초로 할 경우 사회적인 모순을 처리하는 방법은 오직 투쟁뿐이며, 투쟁을 통해 대립면을 소멸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이 투쟁성을 강조하게 된 원인은 사실 공산당이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데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역사 유물주의에서는 계급투쟁은 계급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며 폭력혁명은 “새로운 사회”의 산파이며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것을 사회 진보의 요소로 미화했다. 마오쩌둥은 전에 “마르크스주의의 이치는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뉘지만 그 뿌리는 한마디 즉 “반란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造反有理)”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실질적인 정곡을 찔렀다. 이것이 바로 피비린내 나는 전투적인 당문화(黨文化)의 근원이자 또한 모든 공산 독재국가들이 겪는 불안과 충돌이 끊이지 않는 것의 근원이다.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인심(人心)이 냉담하고 서로 시기하며 서로 신임하고 포용할 수 없는 것 역시 당문화 중의 투쟁철학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2)정치 투쟁 중의 주입 

중공은 투쟁철학에 의지해 정권을 잡았고 또 투쟁철학에 의지해 통치를 수호하고 있다. 사실 중공이 일으킨 여러 차례의 끊임없는 정치투쟁은 민중들 머릿속의 투쟁사상을 끊임없이 강화했다. 이는 결국 원래 중용의 도를 중시하고 조화를 소중히 여김을 따르던 중화민족으로 하여금, 사람마다 투쟁을 부득불 사회의 일반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경계심으로 충만한 것을 일반적인 상태로 여기게 했으며 서로 싸우고 속이는 것을 사회적인 경쟁에서 생존하는 도리로 여기게 했다.

에포크타임스

1951년, 중공이 막 정권을 잡았을 무렵 소위 지식인 “사상개조” 운동이 시작되었다. 『우쉰전(武訓傳)』이란 영화를 비판한 것이 중공이 정권 탈취에 성공한 후 일으킨 “사상개조” 운동의 서막이었다. 이 운동은 확실히 기본적으로 마오쩌둥의 희망에 따라 지식인들의 사상을 개조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의 사상에는 거대한 변이(變異)가 발생했고 이때부터 선악(善惡)을 가늠하는 표준은 오직 한가지뿐이라고 여겼는데 그것이 바로 “계급투쟁”이다.

청나라 말엽에 구걸을 하며 학교를 만든 우쉰(武訓)은 일생동안 갖은 굴욕을 당하면서도 근검절약하여 학교를 만들어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가 “봉건적인 경제기초와 그 상부구조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고 반대로 봉건문화를 미친 듯이 선전”(마오쩌둥의 말)했고 계급적인 입장을 “잘못 잡았다”는 이유로 중공에 의해 심한 비판을 당했다. 명나라 때 해서(海瑞)는 권세에 굴하지 않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했고 아주 청렴했기 때문에 역대로 많은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해서는 “착취계급”에 속하고 “지주계급의 이익을 충심으로 수호한 자”이기 때문에 중공은 그가 백성을 위해 행한 일체의 좋은 일들은 다 “통치계급을 수호하기”위한 것이라고 여겼다.

이리하여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마자 비판 대상이 되었다. 국민당 정부가 난징(南京)에 건설한 “항공열사묘지(航空烈士公墓)”에는 항일전쟁 시기에 희생된 전국 각지의 백여 명의 공군 열사들이 매장되어 있다. 아울러 중국의 항전(抗戰)에 헌신한 미국인 교관, 소련 비행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반동정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이유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마자 마오쩌둥의 홍위병들이 묘지에 달려들어 열사들의 묘를 전부 파헤쳐 훼손했다. 열사들의 유골은 이때 완전히 소실되었다.

공산당을 놓고 말할 때 투쟁성이 바로 혁명성이다. 모순과 충돌의 존재는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혁명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역사는 투쟁 속에서 전진하는 것이다(그렇지만 오늘날의 중공은 처음에 인민들이 혁명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쟁성은 사람의 선천적 본성이 아니기 때문에 공산당은 군중의 “혁명각성(革命覺悟)”을 계발할 필요가 있었고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그들의 “혁명각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었다. 아울러 기만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모순과 충돌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백모녀(白毛女)”는 원래 민간 전설 중에서 악을 제거하고 선을 널리 알리는 신선이었다. 하지만 인민을 “교육”하기 위해 “고통이 크고 원한이 깊은” 피압박 계급의 전형으로 형상화했다. 연극 중에서 복수 사상 즉, “천년의 원수를 갚고 만년의 억울함을 해소해야 한다.”고 관철시켰다. 그것의 선동성이 너무나 강해서 일부 병사들은 공연을 관람할 때 총을 들어 극중 악역을 맡은 “황스런(黃世仁)”을 죽이려 한 사건도 있었다!

소위 “계급적 각성을 계발”하고 “계급 정서를 배양”한다는 것은 사실상 바로 투쟁사상을 주입하고 원한을 선전하는 것이다. 과거에 중공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피의 빚은 피로 갚아야 한다.”, “마음속에 원한이 있으면 싹이 자란다”, “피눈물의 역사를 되새겨 계급의 원수를 잊지 말자”고 선전했다. 하지만 문호가 개방됨에 따라 문명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싫어하는 이런 원한 선전은 더는 공공연하게 할 수 없었다. 비록 중공이 또 다시 “고통스런 집안 내력을 말하고(痛說家史)”, “과거의 고통을 회상하고 오늘의 행복을 생각(憶苦思?)”하게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중공이 이런 수단을 포기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울러 그것은 면모를 바꿔 현대 과학기술로 정교한 포장을 했다. 예를 들어 2001년 8월 14일 국제교육발전조직이 유엔회의에서 발표한 정식성명에 따르면, 중공이 반복적으로 선전해 온 소위 “톈안먼 분신자살사건”은 정교하게 포장한 사기극으로 그 목적은 민중들을 선동하여 파룬궁(法輪功)을 증오하게 하려는 것이다.

에포크타임스

중공 역사상 잇달아 나타난 정치 운동과 미친 듯한 선전 중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공산당이 구분한 적에 대해 “뼈에 사무치는 원한”으로 충만했다. 적이란 “지주”, “부농”, “반혁명”, “우파”, “주자파(走資派)”, “민주운동인사(民運分子)”, “사교(邪敎)분자” 등이다. “혁명각성”은 “적”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원한으로 체현되었다. 레이펑(雷鋒)의 정신을 배워 적에 대해서는 엄동설한처럼 냉혹하고 무정해야 하는데 이를 “계급정서”라고 불렀다. 그것은 인류의 모든 감정을 초월하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사람을 때리는데 있어서도 계급을 분석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을 때리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하고,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때리는 것은 좋은 사람의 영광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때리는 것은 오해이다.” 마오의 이 말은 문화혁명 중 “홍위병” 속에서 널리 전해졌다. 기왕에 “계급의 적”에 대한 폭력을 그들이 “마땅히 해야” 했기에 폭력과 피비린내는 아주 빨리 중원대지로 확산되었다.

“혁명가”의 계급정서에 따라 국가 주석 류사오치(劉少奇)가 기왕에 인민의 “위대한 구원의 별(大救星 역주: 마오쩌둥을 지칭함)”을 반대했다면 그는 “죽어 마땅하다(死有餘辜)” 장즈신(張志新)이 죽어 마땅한 류사오치를 대신해 재평가를 요구했기 때 그녀가 감옥 경찰들에게 윤간을 당해도 “마땅하고” 후두가 잘려나가고 처결되어도 “마땅한 죄를 받은 것”이다. 레이펑의 “적에 대한 잔혹과 무정”은 여기에서 가장 진실하게 묘사되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베이징의 “붉은 8월(紅八月)” 속에서 자신이 직접 가르친 학생들의 구타로 사망한 교사는 아마 자신이 “당(黨)”의 요구에 따라 학생들에게 “적에 대해서는 엄동설한처럼 잔혹하고 무정해야”하며, “채찍을 빼앗아 적을 때려라”라고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계급의 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가르친 것으로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판 것임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군중들은 투쟁 장소에서 사람마다 앞을 다퉈 자신의 계급성을 표현했다. 어떤 사람이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많이 표현하면 할수록 애증(愛憎)이 분명하고 계급각성이 높다는 것을 설명한다. 반대인 경우 “계급적 입장이 불안정하다”는 무서운 혐의를 받게 된다.

가족이 “당의 적”으로 정해진 후에 가족들은 반드시 입장을 표명해야 하고 모호해서는 안 된다. 장보쥔(章伯鈞)이 우파로 몰린 후 그의 아들, 여동생은 모두 신문에 문장을 발표하여 비판했다. 마오쩌둥이 직접 지정한 또 다른 우파인 추안핑(儲安平)의 아들은 자신의 부친에게 다음과 같이 훈시했다. “나는 추안핑 선생에게 한마디 충언을 드린다. 당신이 즉시 벼랑 끝에서 말머리를 돌리고 인민의 의견을 듣기 바란다. 자신의 반(反)사회주의 사상의 근원을 파내고 자신의 문제를 철저히 제출해 인민들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여러 차례의 투쟁 중에서 한편으론 투쟁사상을 강제로 주입 당했고 다른 한편으론 마침 이러한 “영혼을 건드리는” 여러 차례 투쟁 중에서 생존하기 위해 핍박에 의해 두터운 냉담으로 자신의 양지(良知)를 포장하는 것을 배웠다. 또한 오로지 남을 공격하고 남을 무너뜨리는 방법만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임을 배웠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진실한 생활 법칙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중공에 의해 상영이 금지된 영화 『파란 연(藍風箏)』에는 실화에 근거한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반(反)우파 운동이 시작되자 주인공인 톄터우(鐵頭)의 아버지 린사오룽(林少龍)의 회사에 우파에 관한 지표가 내려왔다. 모두들 이 누명을 누구에게 씌울 것인지 의논했는데 이 지표를 완성하지 못하면 회의를 끝낼 수 없었다. 그런데 사오룽은 오히려 이 중요한 시각에 화장실에 갔다. 그때 그는 아마 화장실에 가는 것이 회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우파로 “추천”되어 있었다.

기왕에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정치 투쟁에서 사람들은 이미 도덕의 최저한계선을 넘었고 남을 짓밟고 자신을 보호하는 처세술을 습득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마찬가지로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경제전쟁 중에서 부패와 탐오, 저질의 가짜 상품이 판을 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등의 행위가 급속하게 범람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왜냐하면 이 속의 철학적 근거는 모두 같은 것으로 바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성공”을 개인의 가치를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으로 삼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는 논하지 않는다. 때문에 “큰 부자”, “갑부”를 만나는 것이 여자들의 목표가 되었고, 남자들은 옆에 아름다운 여자를 거느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부모들은 아이가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을 유일한 기대로 삼는다. 이런 투쟁 철학 속에서 “성공”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기초로 세워진다. 여기에는 양지(良知)와 공의(公義)도 없고 또 옳고 그름, 선과 악도 없으며 남은 것이란 오로지 성공과 실패뿐이다. 성공하면 좋은 것이고 실패는 바로 나쁜 것이다. 때문에 사람마다 앞 다퉈 “보스”가 되려 한다. 근무조건이 열악한 회사는 곳곳마다 넘쳐나고 근로자들의 대우는 참혹하여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유독하고 변질된 상품이 시장에 넘쳐 나고 “부자가 되려면 모질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권력만 있다면 법도 두렵지 않은데 “배경이 든든”하며 “관계(關係)가 강철 같다”고 여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란 당문화(黨文化) 사설(邪說)의 주입 하에 중국인들은 서로 투쟁하고 서로 시기하며 온 사회가 마치 흩어진 모래알과 같다. 힘을 응집하지 못하는 민중들은 중공의 극권(極權) 통치에 더 편리하게 되었다.

3)조화로운 공존으로 회귀하는 길

2005년 “늑대문화(狼文化)”가 전국을 휩쓸었다. “늑대문화”의 조류를 따르는 『늑대 혼(狼魂)』이란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늑대를 배우지 않으면 되겠는가? 안 된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너 죽고 나 살기 식 생존 경쟁에서, 승자가 왕이 되고 패자는 도적이 되는 시장 쟁탈전에서 만약 선량한 마음을 품고 경쟁상대를 자비롭게 대한다면 상대에게 여지없이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문화 투쟁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은 정수이다.

여기에서 앞서 언급한 사상과 대비되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그는 정적(政敵)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 한 관리의 불만을 샀다. 그는 링컨에게 마땅히 그런 사람들과 사귀지 말아야 하며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비평했다. 링컨은 이에 대해 아주 평화롭게 말했다. “그들이 내 친구가 되면 내가 적을 없앤 것이 아닌가?”

중국인들에게는 옛 속담이 있다. “바다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릇이 커야 한다(海納百川,有容乃大.)” 중화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성당(盛唐)나라 시기에 사상, 문화, 국력, 국토 등의 방면에서 거의 모두 최고조에 달했다. 이는 대당문화(大唐文化)가 일체를 포용하는 기질을 가진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당나라 초기에 일찍이 돌궐족 때문에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았고 당고조(唐高祖)는 국가 안정을 위해 돌궐에게 어쩔 수 없이 신하라고 칭해야만 했다. 그러나 당태종(唐太宗)은 돌궐을 대패시킨 후 그들을 죽여 부친의 치욕을 씻은 것이 아니라 아주 넓은 포용력으로 전에 당나라의 적이었던 투항한 돌궐 장수 100여 명에게 5품 이상의 장군(將軍)과 중랑장(中?將)을 맡겨 조정 무관의 약 절반을 차지하게 했다.

동시에 당나라는 또 투항한 돌궐족들이 중원에 들어와 사는 것을 허락했다. 이런 조치는 각 소수 민족들의 깊은 신임을 얻어 서북 지역 여러 민족의 지도자들이 공동으로 당태종의 존호를 “천가한(天可汗)”으로 칭하도록 요청했다. 역사적으로 토번[吐蕃 지금의 장족(藏族)]은 아주 사납고 호전적인 유목민족으로 중국과 여러 차례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당나라는 몇 차례 토번을 패배시킨 후 도리어 문성공주(文成公主)를 보내 화친을 맺었다. 문성공주는 토번에 농업과 불교를 전파해 이후 수십 년 동안 토번과 당나라는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는 문화와 교육(文?)의 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주 뚜렷한 것은 모두 몰아내고 죽인다면 원한을 강화할 뿐이며 변경지역은 여전히 불안정하여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는 점이다. 마침 당나라가 돌궐에 관용정책을 펼치고, 위구르족, 말갈족, 대리족(南詔) 등 종족의 수령에게 책봉정책을 펼치며 토번과는 화친(和親)정책을 펼쳐 인심을 얻었기 때문에 삽시에 주변의 여러 국가들이 복종하고 많은 나라에서 조공을 왔다. 멀리는 이란, 소무구성국(昭武九姓國 역주: 당나라 시기 서남쪽 변경에 자리한 9개 국가를 말한다), 우전국(于?國) 등에서 모두 자청해서 당나라에 복속되었다. 문화적으로도 당나라는 도(道)를 존중하고, 부처에게 예를 올리며, 유교를 숭상하는 개명한 “삼교(三敎)” 병립정책을 실시했다. 이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상 환경이 있었기에 당대(唐代)의 웅장한 문화기상을 만들 수 있었다.

에포크타임스

중화민족은 줄곧 “조화를 소중히 여기며” 중용의 도를 숭상해 왔다. 우리 선조들은 천하를 교화(敎化)한다는 소위 “평천하(平天下)”란 신성한 역사적 사명을 자신에게 부여해 왔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평천하(平天下)”의 이상을 실현하자면 의지할 것은 무공(武功)이 아니라 문치(文治)이며, 그것이 실행하려는 것은 패도(覇道)가 아니라 왕도(王道)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멀리 있는 사람이 불복하면 문덕(文德)을 닦음으로써 오게 한다(故遠人不服,則修文德以來之.)”는 것이다. 5천년 중국 역사에서 비록 화하(華夏)민족도 일찍이 각종 재난을 겪었지만 주변 종족들을 동화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을 응집시키고 융합시켜 “범중화(泛中華)”의 문화대국이 되었다. 역사상 몽골족과 만주족은 모두 전에 중원에 침입해 통치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은 모두 강대한 중화문화에 동화되었다. 몽골족과 만주족은 중화민족의 일부분이 되었고 청나라 강희황제는 스스로 중화의 천고일제(千古一帝)가 되려한다고 말했다.

당문화(黨文化)는 단지 역사적으로 중화민족의 조상들이 전해준 지혜를 단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또 횡적으로는 서양의 우수한 문명을 적대시하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당문화에 세뇌당한 중국인들은 오직 당문화에서 말하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기관총, 대포야말로 가장 권위 있는 물건이다”(엥겔스), “물질 역량은 오직 물질 역량에 의해서만 파괴할 수 있다”(마르크스)는 것만을 믿게 되었다. 중국 사람들에겐 오래된 속담이 있는데 바로 무력으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무력으로 통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은 예가 적지 않았지만 무력으로 자기 백성을 대하여 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백성들로 하여금 내부적으로 서로 다투게 만든다. 또한 사회속의 개체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폭력을 모순해결의 첫 번째 수단으로 삼게 했는데 아마도 이것이 중공의 “독창”일 것이다.

에포크타임스

비록 중공이 오늘날 또 소위 “조화 사회(和諧社會)”를 제출했지만 그 진실한 목적은 사실 사회의 하층 민중들이 더는 청원하지 말고 더는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위해 합법적인 항쟁을 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중공의 부패에 대해 민중들이 비평의견을 내지 말 것을 희망하는데 그 목적은 중공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당문화로 포장된 이런 소위 “조화(和諧)”는 중공의 장식품에 불과하며 전통문화 에서 “조화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상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인류의 사회모순을 해결한다면 종종 결국에 가서 사회적인 비용 지출이 수익보다 많아진다. 지난 몇십 년간의 유혈투쟁은 이미 중국사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모순의 쌍방은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투쟁관계를 제외하고 또 공존 관계, 조화 관계로도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투쟁관계는 가장 파괴적인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지도한 인권운동은 그 어떤 무력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흑인, 모든 백인과 유색인종의 평등권을 쟁취했으며 미국 역사를 변화시켰다. 인도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간디는 평화롭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인도 민족의 독립을 쟁취했고 인류 역사상 아주 좋은 모범을 남겼다.

미국이 911 테러 공격을 받은 이후 일부 지역에서 아랍민족을 습격하고 소란을 피운 사건이 나타났다. 메릴랜드 주의 이슬람 사원에는 사람들에 의해 낙서가 칠해졌고 한 고등학교 여 교사는 몇몇 친구들과 연락하여 이슬람 사원에서 이슬람 신도들을 위해 일주일간 야간 보초를 섰다. 오하이오 주의 이슬람 센터에서는 무슬림이 아닌 미국 국민들의 헌금을 받았고 다른 피부색을 지닌 많은 여성들이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을 쓰고 거리로 나갔다. 이로써 각기 다른 종교 신앙과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종족에 대한 존경과 지지를 표시했다. 911 사건이 발생한 4일 뒤 한 무슬림 여학생이 히잡을 쓰고 비 아랍계 인종인 친구들과 함께 뷔페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웨이트리스가 다가왔다. 23살 난 무슬림 여학생은 “우리를 쫓아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웨이트리스는 식사비 30불을 되돌려 주고 식당 측에서 그녀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다가간 것이다. 웨이트리스는 자신은 전쟁을 보고 싶지 않으며 무슬림 여학생이 용감하게 민족의상을 입고 외출한 것에 대해 탄복한다고 했다. 웨이트리스가 떠나고 나서 그 여학생은 눈물을 흘렸다….

한 파키스탄계 의사는, 911 이후 첫 금요일 이슬람 사원에 갈 때 내심으로 두려움이 생겼는데 남들이 욕할까 봐 두려웠다. 그가 이슬람 사원에 도착하자 문 앞에는 50여 명의 기독교 목사와 기독교인들이 집결해 있었고 그들은 단결과 연합을 표시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이 파키스탄 의사는 “그들은 내게 위안을 느끼게 했고 평화를 보게 했습니다. 미국의 강대함은 군사력과 과학이 선두를 달리기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의 대다수 국민들 마음속에 위대한 정신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의 이런 애국방식은 어쩌면 우리에게 한 가지 계시를 줄 수 있다. 중공 당문화(黨文化)의 오염 하에 수많은 중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애국(愛國)”은 이미 “증오”와 동격이 되었다. 한 가지 간단한 상식은, 일본을 증오하든 미국을 증오하든 이것들은 모두 중화민족의 강대한 정신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이민국가로서 아마도 각종 서로 다른 문화를 포용하는 데서 그 우세(優勢)가 나온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이것은 전통문화 중의 미덕(美德)이다. “하늘과 싸우고, 땅과 투쟁하며, 사람을 다스리는(戰天, 斗地, 整人)” 당문화를 버리고 조화로운 공존으로 회귀하는 길이야말로 민족의 강대한 정신적 근원이 될 수 있다.

<계속>

(판권은 에포크타임스에서 소유하며 전재(轉載)를 환영하나 내용을 고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