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고물 팔아 평생 모은 ‘유산 800만원’ 길거리에 뿌린 손자, 그 뒤에 벌어진 일

김연진
2020년 08월 18일 오후 1:30 업데이트: 2022년 12월 14일 오전 9:29

대구 도심 한복판에 돈다발이 뿌려졌다. 5만원권 지폐 160장. 총 800만원이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교통은 마비됐다. 현장에는 사람들이 뒤엉키며 앞다퉈 돈을 주워갔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이미 돈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대구 돈벼락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 지난 2014년 12월 29일, 한 20대 남성의 손에서 시작됐다.

당시 20대 남성은 대구의 한 도로에서 800만원을 뿌렸고, 이를 발견한 시민들은 모두 달려들어 지폐를 주웠다.

TBC

누군가 훔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돈을 뿌린 것이기에 돈을 가져간 사람들을 처벌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가슴 아픈 사연이 밝혀졌다.

이 20대 남성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또 그가 길에 뿌린 800만원은 할아버지가 고물상을 운영하며 평생 모은 돈이자 손자에게 물려준 유산이었다.

할아버지가 아픈 손자를 위해 물려준 귀한 돈이 한순간의 실수로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Facebook ‘대구경찰’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대구경찰 측은 “당시 사정을 모르고 돈을 습득하신 분들은 경찰서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주인에게 돈을 돌려주길 부탁드립니다”라며 호소했다. 돈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사연을 접한 대구 시민 6명이 차례로 경찰 측에 돈을 돌려준 것이다. 그렇게 총 285만원이 모였다.

하지만 원래 돈이었던 800만원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한 시민이 익명으로 500만원을 기부했다. 당시 길에서 주운 돈은 아니었지만, 할아버지와 아픈 손자의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기 위해 자신의 돈을 선뜻 기부한 것.

“돌아오지 못한 돈도 사정이 있겠지요”

“그 돈이라고 생각하시고 사용해주세요”

연합뉴스

그렇게 500만원이 더해져 총 785만원의 돈이 모였다. 15만원이 부족했지만 원래 돈과 비슷한 금액의 돈이 다시 주인에게 전달됐다. 대구 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감동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난 뒤, 또다시 돈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나머지 금액인 15만원이 경찰로 전달됐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한 시민은 “돈벼락 사건의 사정을 알게 돼 주운 돈을 반납합니다”라고만 전했다.

그가 내민 봉투에는 5만원권 2장과 1만원권 4장, 5천원권 2장이 들어 있었다.

사실 돈벼락 사건 당시에는 모두 5만원권만 뿌려졌다. 그런데 이 시민은 “주운 돈을 반납한다”라며 5천원권까지 넣어 15만원을 채웠다.

대구지방경찰청

아마 실제로 주운 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단 15만원을 채워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자신의 돈을 기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왔다.

경찰 측은 “파출소에 들러 15만원을 건넨 시민의 옷차림새, 종이뭉치가 실려 있는 트럭 등을 봤을 때 파지 수집상으로 보였다. 형편도 매우 어려워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15만원과 함께 이런 내용이 담긴 손편지도 전했다.

“어르신, 돌아오지 못한 돈은 이제 다 돌아왔지요”

“이제부터 마음 편히 잡수시고, 건강하시고, 장수하십시오”

결국 800만원이 모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