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을 ‘500번’이나 지켜봐야 했던 이유

이서현
2019년 09월 8일 오후 11:48 업데이트: 2022년 12월 20일 오후 6:24

지난 2016년, 취업을 준비하는 스물다섯 청년 권대희 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군을 전역한 후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턱 때문에 유명 성형외과를 찾았다.

수술실에서 다량의 출혈로 뇌사상태에 빠졌고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49일 뒤 숨을 거뒀다.

고(故) 권대희씨 | 유족 제공

그가 죽기 전, 유족은 사고가 났으니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병원 측에 경위서와 CCTV 영상을 요구했다.

권씨의 죽음까지는 예상치 못한 듯 병원 측도 순순히 자료를 내줬다.

하지만 권씨가 사망하자 과실을 인정했던 병원 관계자는 말을 바꿨다.

유족은 확보한 수술실 영상을 차마 볼 수 없어 법적 절차를 밟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병원 측과 세 번을 만났지만 원장은 “감방을 갈 일이 있으면 가겠다”라며 당당한 모습이었다.

병원 측의 태도에 유족은 법적 싸움에 돌입했다.

권씨의 어머니는 병원 측 과실을 입증하려고 결국 보고 싶지 않았던 수술실 CCTV 영상을 500번 넘게 돌려봤다.

영상 속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담겨있었다.

당시 수술실 CCTV 영상 | 유족 제공

집도의는 오랜 시간 수술실을 비웠고 간호조무사는 수술 도중 눈화장을 고치는가 하면 휴대전화를 수시로 들여다봤다. 또 수술 중 비정상적 출혈이 발생하자 대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유족은 영상을 통해 병원 측의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는 걸 입증했다.

수술 중 과다출혈, 집도의의 잦은 외출과 약속되지 않은 의료진의 대리 수술,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행위, 맥박이 130에 이르는 환자를 두고 의사들이 퇴근, 수혈 없이 대학병원 이송, CCTV 영상과 의무기록지 불일치 등.

당시 수술실 CCTV 영상 | 유족 제공

지난 5월 28일 유족은 병원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소했고 4억 3000여 만원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이는 유족 측이 요구한 피해자의 상실수익 및 위자료의 80% 수준이다. 법원이 의료진의 과실을 높은 수준으로 인정한 것이다.

의료사고 소송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원고 측이 이 정도 결과를 끌어낼 수 있던 것은 모두 CCTV 덕분이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며 수술실 CCTV 법제화 움직임이 일었다. 수술실 CCTV 설치·운영과 무자격자 대리 수술의 의료인 면허 취소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현재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