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빙, 미·필리핀 밀착…전문가 “동북아 반공 연대 강화”

한동훈
2023년 03월 26일 오후 3:42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49

“中 공산당, 한일 과거사 쥐고 동맹 분열 노려”
“공산주의 위협 맞서 협력 강화는 세계사 흐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 진영이 공산주의 중국의 팽창에 맞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자유민주 진영 국가들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 공산당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면서 역사적인 반공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 사건으로는 먼저 12년 만에 이뤄진 한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꼽힌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 도쿄를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일관계 해빙은 중공 포위의 핵심 사건”

윤 대통령은 21일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한일 정상회담을 통한 양국관계 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 위기, 북핵 위협 고도화 등 복합 위기 속에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작금의 엄중한 국제정세를 뒤로하고, 저마다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이미 수십 차례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표했는데 야당 등 정치권 일각이 과거사 문제로 계속 양국관계에 발목을 잡는다면, 새로운 미래로 진입할 수 없다는 게 윤 대통령의 시각이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 Kiyoshi Ota – Pool/Getty Images

한일 관계의 불씨가 되는 과거사로는 주로 일본군 위안부와 일제의 강제징용 등이 언급된다.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국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협상 타결로 일단락됐다. 고(故) 아베 당시 총리는 서면을 통해 일본 총리 신분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반성을 표했고, 박근혜 정부는 이 문제가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강제징용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해결에 나섰다. 윤 정부는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6일 강제징용 피해자 해법을 내놓고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관계 해결을 시도했다. 일본 기업 대신 한국 정부 산하 재단에서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에게 지급한다는 ‘제3자 변제 방식’이었다.

이로써 단절된 양국 간에 소통의 물꼬가 트이게 됐지만, 불씨가 완전히 진화된 것은 아니다. 한국 야당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대만 중산대 중국아시아태평양 연구소의 궈위런(郭育仁) 교수는 에포크타임스에 “최근 한국 여론조사(갤럽)에서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34%,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64%로 나왔다”며 “한국 국내 상황은 여의치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 정치학 박사로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낸 궈 교수는 “하지만, 한국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제다”라며 “단적으로 말하면, 재선을 염두에 둬야 하는 압박감은 약한 편”이라고 말했다.

궈 교수는 현재 한국이 한미일 동맹 복원에서 키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을 계속 추진한다면 현재 형식적인 수준의 한미일 동맹이 내년에는 구체적인 부분까지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북아 정세를 장기간 연구해온 대만 중정 대학 전략국제문제연구소 린타이허(林泰和) 교수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복잡한 과거사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안보상 취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은 이를 이용해 미국의 동맹을 분열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 뮌스터 대학 국제관계및외교학 박사인 린 교수는 “한일 양국이 그동안의 교착상태를 돌파해 협력관계를 회복한다면 동북아의 국제안보에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8년 상륙훈련 모습. | 연합뉴스

5년 만에 부활한 ‘쌍룡훈련’도 중요한 이벤트로 평가됐다. 2012년부터 격년제로 시행된 이 훈련은 북한과의 전면전이 벌어지면, 한미 최정예 해병 전력이 북한에 기습 상륙한 뒤 평양으로 진격하는 내용이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륙훈련으로 알려졌으나 2019년 중단됐다.

궈 교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내에 한미일 동맹을 강력하게 끌어올리려 했다”면서 “하지만 한미 군사훈련은 북한과 공산주의 중국을 도발할 수 있다는 주장에 밀려 중단됐고 작년부터 재개됐다. 특히 올해 대규모 훈련은 북한에 대한 강한 억지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린 교수는 “윤 정부는 출범 이후 한일 관계에 있어 이전 정부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서 “군사협력은 물론 한일 양국 간 경제 및 공급망 협력도 구체화하고 있는데, 미국의 협조가 더해진 한일 관계 해빙은 중국 공산당의 이간질을 차단하는 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오는 5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세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한미일 안보협력에서의 중대한 전기가 될 것으로 린 교수는 전망했다.

닛케이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번 G7 정상회의에서는 인도·태평양 문제가 처음으로 개별의제로 다뤄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과 함께 공산주의 중국의 군비 증강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궈 교수 역시 “5월 G7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내놓을 구상이 한미일 안보협력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필리핀, 미군기지 4곳 추가 건설 허용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중국공산당 포위망 구상에서 필리핀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22일 향후 추가 건설될 미군기지 4곳이 필리핀 북쪽과 남쪽 등 여러 지역에 설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방어 능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앞서 미국과 필리핀은 2014년 체결된 양국 간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에 따라, 기존 5곳에 추가로 4곳의 미군기지를 필리핀에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특정 국가를 지목하진 않았지만, 협정은 중국 공산당을 겨냥하고 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분쟁 중이다.

베트남, 필리핀, 중국 3개국이 자국 영토로 주장하는 남중국해의 티투섬 상공에서 촬영한 사진. 필리핀이 실효지배하고 있으나 인근 해역에 중국 함정이 출몰하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023.3.9 | AM STA ROSA/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집권 2기였던 2014년 2월 필리핀 등 아시아 4개국을 순방했는데, 그 핵심 성과가 필리핀과의 안보동맹 확대였다. EDCA 체결로 미군은 1992년 철수 이후 22년 만에 필리핀에 복귀했고 필리핀 기지는 대중 포위망의 핵심 고리가 되고 있다.

궈 교수는 “필리핀의 반공 대열 합류에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며 “마르코스 대통령은 전임자와 달리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중국의 ‘도발’도 작용했다. 지난 2월 중국 함선은 남중국해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필리핀 해안경비대 함정에 레이저를 쏘면서 도발했다. 레이저를 맞은 필리핀 승선원 일부는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고, 마르코스 대통령은 필리핀 주재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궈 교수는 “지난해 북한은 한 해 가장 많은 수의 미사일을 발사해 동북아 정세를 자극했다”며 “중국과 북한이 한·미·일과 대결하면서 필리핀의 대중 포위망 역할도 중요해졌다. 미군은 필리핀을 핵심 전방기지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 필리핀 관계도 강화되고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지난 2월 일본을 방문하면서 미국, 일본, 필리핀 사이에 3국 국방협력이 체결됐다. 일본 언론은 “이를 통해 한국-일본-필리핀-호주를 연결하는 중국 포위망이 구축됐다”고 평가했다.

미·영, 호주에 中 견제할 원자력 잠수함 지원

한일관계 해빙이 이뤄지던 3월 중순, 호주는 최대 3680억 호주달러(약 318조원) 규모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 계획의 세부 사항을 공개했다.

이 원자력 잠수함 건조 계획은 호주·영국·미국의 3국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공산주의 중국의 태평양 해양 공세에 맞서기 위한 전략의 하나다.

호주 앤소니 앨버니지 총리는 지난 14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미 해군기지에서 열린 오커스 동맹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현재 노후된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3~5척의 미국산 핵추진 잠수함을 구입하고, 2040년대부터 영국이 설계한 잠수함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오른쪽에서 둘째)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오른쪽에서 셋째), 리시 수낵 영국 총리(오른쪽)가 13일 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포인트 로마 해군기지에서 핵 추진 잠수함 미주리함을 배경으로 미 주도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또한 호주는 빠르면 2027년부터 미국 잠수함 4척, 영국 잠수함 1척으로 호주 서부 해역을 순회하기로 했다. 중국 공산당의 급속한 해군력 확장에 맞서, 잠수함이 건조되는 10~15년 동안 발생할 전력 공백을 미국과 영국의 도움으로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오커스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참가국 총리들은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맞설 것임을 명확히 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우리는 모든 국가의 주권이 존중되고 모든 개인의 존엄성이 유지되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며 보편적 가치를 위협하는 중국 공산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영국 리시 수낙 총리는 “(오커스 협정 후) 지금까지 18개월 동안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증가하기만 했다”며 “(중국, 러시아 등의 도전은) 세계를 위험과 혼란, 분열로 이끌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국은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를 가진 국가”라고 BBC에 논평했다.

궈 교수는 “호주 해군은 2021년 오커스 체결 발표 당시, 이미 미국과 영국에서 훈련을 받은 상태였다”며 “미국의 잠수함이 도입되면 단기간에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핵추진 잠수함은 급유가 필요 없어 항속거리에 제한이 없고 3~4개월 동안 중단 없이 잠수할 수 있어 중국 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력 중 하나”라며 “핵추진 잠수함이 남중국해와 필리핀해에 투입되면 중국 해군에 막대한 저지력이 될 것이기에 중국 공산당은 전력을 다해 반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유민주 진영, 독재 정권 사이 경쟁 가열”

린 교수는 한일관계 해빙, 미· 필리핀 방위협력 강화, 오커스의 군비 증강에 대해 “미국의 반공 포위망이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며 “미국과 서방이 마주하게 될 압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 중·러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일본 기시다 총리, 호주 앨버니지 총리, 독일 숄츠가 잇달아 인도를 방문해 협력관계를 강화했다. 반공 포위망에서 인도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맞서 주변국이 갈등을 봉합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세계사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린 교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연합, 일본, 대만, 인도와 아시아 국가 등 민주 진영과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독재 정권 간의 대결이 격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대립은 앞으로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이 기사는 린첸신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