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황호의 飮食藥食] 연재를 마무리하며

2013년 12월 24일 오후 9:05 업데이트: 2019년 06월 28일 오후 4:20

올 가을부터 담당기자와 사전 논의 과정에서 빈번하게 비슷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상추에 대해 써볼까요?” “아 그거 작년에 하셨습니다.” “아 그래요? 제가 칼럼을 작년부터 썼나요? 오래 됐네요.”

이와 유사한 대화가 몇 차례 오가면서 ‘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구나’는 생각이 자연스레 스쳤습니다. 늘 공부가 부족해서 충분한 이야기를 드리지 못하는 점이 죄송스러웠는데, 소재 고갈을 핑계로 이번 참에 조용히 물러나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음식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고, 칼럼을 잘 쓰기 위해서, 진료실에서 환자분에게 좋은 조언을 드리기 위해 음식과 약재에 대해서는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고 모르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사실 저는 제게 맞는 음식을 특별히 찾아 먹거나 가려 먹지 않는 편입니다.

한참 크는 나이에는 라면 하나를 끓여먹어도 110그램인지 125그램인지 무게를 일일이 비교해 무거운 것을 사먹었습니다. 그 당시 음식의 선정 기준은 얼마나 가격 대비 배가 부르냐 였습니다. 이 계산을 자꾸 하다보면 요즘 대형마트에서 그램당 몇 원이라고 표기한 것처럼 금방 계산이 됩니다. 이제 그리 배고픔을 심하게 느끼는 나이는 아니기 때문에, 요즘은 점심을 먹을 때 한의원서 가깝고 덜 질리고 등등… 몇 가지 조건으로 음식을 찾습니다.

간혹 특정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그게 내 몸에 필요하구나 싶어서 몸을 위해서 먹습니다. 음식을 잘 먹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즉 음식을 잘 먹으면 건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리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닙니다만, 결과적으로 건강을 잘 관리합니다.

한의학의 근간이 되는 고대 서적에서 제일 강조한 것 중에 하나가 염담허무(恬憺虛無)입니다. 쉽게 말해서 마음을 비우고 담담히 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질투하거나 싸우려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이러면 자연히 몸이 편해지게 됩니다. 쉽지 않습니다만 이것은 건강을 위한 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음식을 잘 먹으면 건강해지는 경향이 강하지만, 만약 마음이 편치 않고 몸이 많이 고되다면 쉽게 건강해지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공황장애 환자 시절

저는 대학교 신입생 즈음, 불면증과 공황장애를 앓은 적이 있습니다. 염려가 있거나 닥쳐올 부담스러운 일이 있으면 밤새 진정되지 않는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밤을 샜고, 호흡곤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유년기 시절부터 담고 있었던 마음의 갈등, 몸 관리를 소홀하게 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빚어진 일입니다.

현재 제가 한의원에서 공황장애 환자를 주로 보게 된 계기도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과부 마음을 아는 홀아비처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마음이 편치 않기에 속도 편하지 않고, 음식도 잘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속편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를 저는 ‘감정을 소화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꽉 막히고 화병이라던가 불면증이라던가 공황장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당시 제가 저를 치료하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나 약을 떠올려보면 제법 적절한 선택도 많았습니다만, 결국 저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 마음을 잘 살피고 잘 닦아내는 과정 속에서 하루하루 조금씩 치유가 됐고, 수년이 지나면서 속편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늘 드리는 조언들

가볍지 않은 질환을 치료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여러 가지 한의학적인 방법으로 관찰하면서 진단을 합니다. 맥을 보고, 얼굴과 몸을 살피고, 호흡도 살피고, 색을 비롯해 자세와 습관, 성격과 화법, 식습관과 대소변 등등 되도록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재 어떤 마음가짐인가입니다. 오랜 질환으로 자존감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마저 버리지 않았는지가 중요합니다. 대부분은 자존감이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아픈 자신이 싫고, 이를 이겨내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기도 싫어합니다.

처음 나누는 대화는 막대 그래프 두 개를 그리면서 시작합니다. 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현재 6이고 나의 생명력이 4 정도라면 6-4=2 2점 차이로 병에게 지고 있어서 아프기 때문에, 병의 힘을 1만 낮추고 나의 힘을 1만 올려도 동점이 되어서 그리 아프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었을 것인데….

대부분의 환자는 병의 힘을 6 정도가 아니라 10정도로 강하게 느낍니다. 도저히 내가 넘볼 수 없는 무서운 존재이자 지긋지긋한 공포이기에 10점으로 4점이나 더 크게 봅니다. 동시에 나의 생명력이 실제로는 4정도로 그리 나쁘지 않음에도 내가 한없이 약하고 실망스럽기에 2 정도로 더욱 약하게 봅니다. 병이 10, 내가 2면 그 차이는 무려 8입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어서 낫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병은 제 짧은 소견으로는 실제 어떠한가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욱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늘 처음 드리는 조언은 병은 그리 크지 않고, 나는 그리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일입니다. 이 작은 차이는 몇 달 지나 큰 차이를 만듭니다.

나를 괴롭히지 맙시다

부디 스스로를 타박하지 말고 몰아 세우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팽팽한 긴장감은 간을 망가뜨리고, 우울한 생각과 부정적인 마음은 심장을 상하게 하며, 반복된 고뇌와 꼬리를 무는 생각은 비위를 망가뜨립니다.

슬프고 비관하는 마음은 폐를 망가뜨리고, 두려움과 고독함은 신장을 약하게 합니다. 이를 위해 내 마음의 지표가 될 좋은 마음이나 사상을 지닐 수 있도록 꼭 찾아야 하고, 조금씩 쌓이는 갈등과 분노를 풀 취미나 습관도 꼭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내 화를 참지 못하고 툭툭 내뱉는 말, 상대방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눈빛은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그 화는 다시 내게 돌아오기 마련이어서 악순환은 끊이지 않습니다. 내 억울함보다는 상대방을 용서하는 마음이 중요하고, 악하고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를 불쌍히 여기면 좋겠습니다.

많은 부조리와 질환은 내 마음 속에서 비롯되고, 가족 간의 긴장과 냉대, 직장에서 그리고 지인간의 분노와 억울에서 비롯됩니다. 아름답게 살아보자는 것이 제가 늘 진료하면서 다짐하고 그리고 환자분들에게도 끊임없이 말씀드리는 핵심입니다.

그동안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시 인연이 닿고 제 능력이 된다면 더욱 좋은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글을 쓰는 오늘은 동지입니다. 밤이 가장 길지만 내일부터는 낮이 길어집니다. 어두운 밤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밝은 아침이 꼭 온다는 말씀 드리면서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
 

   강남경희한의원 원장

저서
 ‘채소스프로 시작하는
아침불끈대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