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검수완박, 국민 피해 명확”…청문회서 작심발언

이윤정
2022년 05월 10일 오전 7:40 업데이트: 2022년 05월 10일 오전 10:15

“검수완박, 사법 시스템 골간 바꾸는 개헌 수준”
“권력자 눈치 안보고 부정부패 단죄하는 게 검찰개혁”
“檢 74년 수사역량은 대한민국 국민 자산”
“文 정부, 지난 3년간 유례없는 ‘검찰 정치화’”

“부패한 정치인과 공직자의 처벌을 어렵게 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이 보게 될 피해는 너무나 명확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5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국민적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했다.

한 후보자는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정부패를 단죄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검찰개혁”이라며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절제해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책임 수사를 통해 검·경의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관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용기와 헌신으로 일하겠다”며 “정의와 상식의 법치를 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 후보자는 민주당의 검찰 개혁 입법을 “야반도주”라고 직격했고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서도 검수완박 입법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검사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거나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답한 바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 연합뉴스

한 후보자가 청문회 본 질문을 받기도 전에 ‘검수완박’을 비판한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집중포화를 퍼붓기도 했다. 김종민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후보자가 인사말에서 ‘검수완박’이라는 용어를 굳이 쓴 것은 싸우겠다는 것”이라고 따졌고 김영배 의원도 “의도적으로 ‘검수완박’ 발언을 했다면 청문회를 도발하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한 후보자는 물러서지 않고 청문회 내내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검수완박의 내용·절차상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이 내용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한 후보자는 “전문가적 양심으로 확신한다”며 검수완박의 문제점을 4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경찰이 수사했을 경우 이의신청 사건을 보완 수사하는 범위를 극도로 제한했다”며 “예를 들어 몰카 사건이 무혐의 의견이 나오면 다른 몰카 사건이 수백 건 나와도 검찰이 수사를 못 하고 풀어줘야 하고 피해자는 구제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고발인의 이의신청 권한을 뺏었다”며 “장애아 학대 사건을 목격한 이웃 주민이 고발하거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해 시민단체가 고발해도 경찰이 불송치하면 그걸로 끝난다”고 부연했다.

이어 “더 심각한 부분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조항”이라며 “이 조항은 기본적으로 시험공부 한 사람과 시험 치는 사람을 나누는 것이라 무죄가 속출할 것이고 검찰 수뇌부가 사건을 마음대로 말아먹을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인혁당 사건에서 수사 검사가 증거가 부족하다고 기소를 안 하겠다고 버텼지만, 그 때 검사장이 당직 검사에게 배당해 기소를 해버렸다”며 “인혁당 사건을 법으로 제도화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은 1964년 박정희 정권 시절 혁신계 인사들을 체포했던 대표적인 간첩 조작 사건이다.

그는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 수사 검사는 의견을 낼 수가 없어서 내가(검사장이) 원하는 기소검사에게 맡겨 기소·불기소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며 “이런 의도로 (검수완박을) 한 건 아니겠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이게 제일 먼저 보였고, 이렇게 운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원질의에 답변하는 한동훈 후보자 | 연합뉴스

한 후보자는 검수완박 법안 처리의 절차적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검수완박 법안이 법률이지만 74년을 이어온 사법 시스템의 골간을 바꾸는 개헌 수준의 입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렇다면 어떤 법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졌어야 한다. 그런데 공청회 한번 없이 진행된 건 큰 문제”라고 평했다.

이어 “헌법상 적법절차는 헌법에 규정된 자구(字句) 이상의 정신”이라며 “공청회를 안 해도 될 경우라도 공청회를 통과하지 못할 법률이라면 만들지 말라는 뜻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저같이 현직에 있는 사람조차도 당일까지 어떤 법이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했다”며 “이렇게 중요한 입법을 하면서 그런 식의 절차라면 큰 흠결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지금도 변호사의 74%가 현저한 ‘지연’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 법 시행으로 향후 서민들 입장에서 사건은 더 지연될 것이고 변호사 선임에 따라 사건 처리의 속도와 질이 달라질 것이다. 결국 각자도생의 세상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아울러 “지난 74년 동안 검찰이 쌓은 수사역량은 갑자기 어디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 같은 검찰의 중대범죄 수사역량은 검찰만의 자산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검찰 수사 능력을 대책 없이 증발시켰을 때는 우리나라가 그만한 자산을 잃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는 과잉수사였다”고 비판하자 한 후보자는 “어려운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과잉수사가 아니었다”며 “당사자(조국)가 어떤 음모론을 펴면서 수사팀을 공격하고 여론을 동원해 수사팀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집중적인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저는 민주당이 조국 사건에 대해서 사과한 걸로 알고, 조국 사태의 강을 건넜다고 한 것으로 아는데 그러면 저희가 수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여쭙고 싶다”고 되묻기도 했다.

한 후보자는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문재인 정권이 잘못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라며 법무 행정에 대한 평가를 묻자 “조국 전 장관 사태 이후로 할 일 하는 검사는 내쫓고 그 자리를 말 잘 듣는 검사로 채우고,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을 행사해서 수사했던 검사들에 가혹하게 했던 부분은 반성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저도 검찰 생활을 오래 했지만 지난 3년간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검찰이 정치화됐던 시기”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