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인계획’ 비상…첨단 로봇기술 빼돌린 中 연구원 덜미

한동훈
2023년 06월 7일 오후 1:25 업데이트: 2023년 06월 7일 오후 1:25

대형병원 연구소 중국 국적 연구원 A씨
‘천인계획’에 상용화 앞둔 국내기술 넘겨
경찰, 국정원 제보로 잠시 입국한 A씨 붙잡아

한국 유명 대형 병원 연구팀이 1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기술이 한 중국 국적 연구원에 의해 중국에 넘어간 사실이 경찰 수사로 확인됐다.

이 연구원은 중국 중국 공산당이 직접 관장하는 해외 인재 영입 프로그램인 ‘천인계획’에 해당 기술을 넘기고 자금을 지원받아 중국에서 회사를 차리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YTN 단독보도에 따르면, 서울 대형병원 산하 연구소에서 개발한 첨단 의료로봇 관련 기술이 이 연구소 소속 중국 국적 40대 연구원 A씨를 통해 중국으로 유출됐다.

이 로봇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거나 좁아졌을 때 이를 복구하는 시술인 ‘심혈관 중재기술’을 보조하는 로봇이다. 해당 시술은 시술자의 오랜 경험과 숙련도가 요구되는데, 이 로봇을 활용하면 정밀 제어를 통해 숙련된 시술자의 동작을 구현할 수 있어 성공률이 높아진다.

연구팀은 수년에 걸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2019년 의료로봇 개발회사를 설립하고 임상시험 성공 후 3년간의 보완을 거쳐 이번 제품을 만들었으며, 올해 2월 식약처 승인을 받고 상용화를 앞둔 상태였다. 2021년에는 국내 벤처투자자로부터 89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팀이 기술 개발과 투자 유치, 경영에 집중하는 사이 연구 소속 중국인 연구원 A씨는 이들의 성과를 가로챌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2015부터 연구팀에 재직하다 2020년 퇴직한 A씨는 퇴직 무렵 관련 연구를 집중적으로 빼낸 정황이 포착됐다.

A씨는 이 연구성과를 자기 혼자 해낸 것처럼 꾸며 중국의 과학 인재 영입 프로그램에 제출했고, 그 결과 중국 공산당의 ‘천인계획’에 선정됐다. 자금을 지원받아 중국에서 관련 회사를 세우는 절차에도 착수했다.

이미 한국을 떠난 A씨가 경찰에 붙잡힐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의 첩보 덕분이었다. 지난 3월 A씨는 한국 생활을 정리하려 잠시 입국했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노트북과 휴대전화 등에서는 연구소 고유 기술 다수를 포함해 그동안 빼돌린 자료 1만 개가 발견됐다.

A씨는 천인계획에 넘긴 자료는 이미 공개된 자료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경찰은 A씨를 출국금지 조치하고 지난주 사건을 경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YTN은 연구소 측이 유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후 기술 개발을 계속해 현재는 더욱 높은 수준의 기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천인계획은 중국 정부의 해외 인재 영입 프로그램으로 보도되고 있으나,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가 설립한 ‘인재사업 협조사무실’에서 직접 관할하는 프로젝트다. 이후 국제 사회에서 비판 여론이 제기되자 공산당 소속에서 과학기술부 산하 국가자연과학기금위원회로 넘어갔다. 공산당과 거리 두기를 한 셈이다.

2008년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에서 향후 5~10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입, 세계적 수준의 학자와 교수 2천 명가량을 중국으로 유치한다는 전략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실상은 외국의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절취하는 계획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입 대상은 해외 박사 학위 취득자로 55세 이하이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년 중국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할 수 있는 사람 중 다음 조건의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해외 유명 대학 및 과학연구 기관의 교수급 전문 학자나 국제 유명 기업 및 금융기관의 고위 전문기술 인재와 경영관리 인재 △독자적인 지식재산권이나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해외에서 창업한 경험이 있는 인재 △국가가 급히 필요로 하는 혁신창업 인재 등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항목은 두 번째의 ‘독자적인 지식재산권이나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해외에서 창업한 경험이 있는 인재’이다. 중국인 연구자 중에 독자적인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연구자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회사, 연구소가 보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천인계획에 선정되면 개인 연구지원금(약 9천만원~3억5천만원), 창업 지원금(약 3억5천만원~9억원)이 지급된다. 특별히 유망한 창업 분야라면 최고 약 90억 원의 자금을 받는다.

아울러 각종 혜택이 쏟아진다. 대학, 연구소, 국유기업에서 중급 이상의 간부나 전문직에 임용되며, 국가 기술 프로젝트 책임자가 될 기회도 주어진다. 일정 지분을 받아 프로젝트 성과의 일부를 나눠 받을 수도 있다. 그외 다양한 면세 혜택과 표창, 자문위원 위촉, 의료 혜택, 주택 구입비 융자 등이 보장된다.

이 때문에 해외 연구기관에 진출한 중국 국적이나 중국계 인재들은 자신이 속한 해외 연구기관의 지적재산이나 핵심기술을 빼돌려 중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한탕주의 유혹에 계속 시달린다. 이런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도 중국에 돌아가면 ‘애국자’ 대우를 받는 것도 문제점으로 비판받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천인계획은 중국의 해외 인재 영입 프로그램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는 2020년 8월20일 천인계획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세계 연구기관 600개 이상이 중국과 연결됐으며, 천인계획이 연구비 제공 등을 내걸고 해외 우수과학자들의 부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각 지방정부들도 경쟁적으로 인재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11월 허베이성에서 열린 ‘연례 과학기술 인재 유치 심포지엄’에 따르면 허베이성 한 곳에서만 2013년부터 약 4만9천 명의 해외 전문가를 영입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러한 중국의 파상공세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 2020년 9월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B교수가 중국에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B교수 역시 천인계획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