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찾은 다큐 ‘영원한 봄’ 감독 “감춰진 진실 널리 알려졌으면”

제이슨 로프터스 감독

이윤정
2023년 06월 6일 오후 5:46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5

中 당국의 사업 방해·가족 위협 겪어
탄압 두려워할수록 中 정부에 힘 실어주는 격
진실 알리려 목숨 건 이들의 희생·용기에 감명

애니메이션 ‘영원한 봄(창춘·Eternal Spring)’은 20여 년 전 중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캐나다 영화감독 제이슨 로프터스(Jason Loftus)가 중국 창춘 출신의 저명한 만화가 궈징슝(郭競雄·필명 ‘다슝’)과 손잡고 6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은 2002년 3월 5일 오후 8시, 중국 지린성 창춘시에서 발생한 이른바 ‘케이블TV 삽입방송’을 다뤘다.

중국 당국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생산해 중국인들을 오도하자 창춘 지역 파룬궁 수련자들은 창춘 케이블TV 채널에 파룬궁의 진실을 알리는 다큐 영상 2개를 삽입해 50분가량 송출했다. 당국은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파룬궁 수련자 5000명 이상을 체포했고 이 중 최소 8명이 고문으로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영원한 봄은 검열되지 않은 뉴스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주의 체제 중국에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파룬궁 수련자 18명의 이야기다.

‘영원한 봄’은 지난해 북미 최대 규모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캐나다 핫닥스 국제 다큐 페스티벌’에서 63개국 출품작 225편 가운데 관객상을 받았다. 관객상은 캐나다 현지 관람객들 투표로 선정한 최고의 다큐멘터리에 주는 상이다. 지난해 개봉 이후 캐나다를 비롯해 그리스·네덜란드·미국·호주 등 다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캐나다의 아카데미 국제 장편 영화상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원한 봄’은 지난 6월 1일부터 6일간 서울에서 열린 제3회 락스퍼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도 소개됐다.

에포크타임스는 ‘영원한 봄’ 시사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제이슨 감독을 만나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6월 2일 서울 종로구 북촌마을에 자리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20년 전 사건을 영화로 제작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세요.

“뉴스에서 처음 이 사건을 접했지만,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쿵푸 비디오게임 제작에 같이 참여한 동료 아티스트가 삽입방송 사건 때문에 자신이 나고 자란 창춘을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사건 당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체포되고 탄압당하는 바람에 창춘에서 더는 살 수 없었다고 했어요.”

그가 말한 아티스트는 중국 창춘 출신의 저명한 만화가 궈징슝이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궈징슝은 ‘저스티스 리그’ ‘스타워즈’ 등 코믹스 작품에 참여했다. 홍콩 무협소설 작가 고(故) 김용과 작업한 ‘천룡팔부’로 2006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전에서 최고상인 특별상을 받았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홍콩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포스터를 그려 소셜미디어에 공개하기도 했다.

“2014년 무렵 다슝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그가 겪었던 일이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저와도 관련 있는 일로 느껴졌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때는 중국에서 탈출한 분들의 목소리도 많이 나오던 때였고 삽입사건에 직접 참여한 김학철 씨를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영화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영화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이렇게 탄압받으면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죠. 이런 문제는 흔히 거론되는 게 아니어서 더 알려야 한다는 동기를 갖게 됐습니다. 중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더욱 억압받고 있는데 그런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분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전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영화 제목 ‘창춘’은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면서요.

“‘창춘’은 도시 이름이자 영원한 봄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영화에 몇 가지 상징적인 장면을 사용했습니다. 창춘은 영원한 봄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북쪽에 위치해 아주 척박하고 살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혹독한 추위처럼 매우 가혹한 환경에 처해 있지만, 여전히 희망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매화는 봄이 오기 전 겨울의 끝자락에 피는 꽃으로 중국 시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고난 속에 있지만 미래에 더 나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동시에 희생을 상징하는 매화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모진 고통 속에서 일부는 목숨까지 잃었지만, 우리는 그들이 더 많은 사랑과 이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징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6월 2일, 서울 북촌의 카페에서 에포크타임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제이슨 로프터스 감독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나요?

“사건에 참여한 생존자들을 만나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도 그런 고초를 겪었고 거사를 공모한 동료들이 사망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나 두려움, 망설임 같은 건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한 일의 중요성을 확신하는 모습이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전하지 않으면 중국 공산당의 프로파간다(선전 선동)에 의해 진실이 다 묻혀버릴 것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공산당에 맞서 싸우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보면 적어도 공산당에 밀고하기 전에 한 번 정도 더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라도 저항의 움직임에 대해 더 퍼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나 에피소드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 제이슨 감독은 주저 없이 량전싱(梁振興)과 류청쥔(劉成軍)을 꼽았다.

“두 분 다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지만, 다슝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마음에 더 와닿았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영화 속에 담았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서는 창춘에서 온 한 여성이 영화를 보는 내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영화 속 등장인물 중 몇 명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그분들을 스크린에서가 아니라 직접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저에겐 의미심장했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리스 시사회에선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관객들이 너무 조용한 거예요. 처음엔 이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Q & A 시간에 관객들의 질문이나 목소리 톤을 통해 이분들이 영화를 정말 감명 깊게 봤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6년간 모은 이야기를 90분으로 압축했는데, 그 내포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공감을 일으키는 걸 보고 이런 게 영화라는 예술의 힘이구나 싶었죠.”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만화를 그린 다슝은 이 사건과 관련해 트라우마가 컸기 때문에 작업하면서 감정을 다스려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작 과정에선 언어 장벽에다 문화적 차이도 있었어요. 애니메이션 팀은 중국 사람들이 아닌데 스토리 관련해서 중국인들과 중국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차츰 서로 배워가면서 결국 극복해 냈습니다.”

“또 다른 난관은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각각의 제작상 어려운 점을 합친 만큼의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매우 많은 준비 과정을 거치고 세세한 부분까지 다 확정된 뒤에 애니메이션을 그리지만, 다큐멘터리는 수백 시간의 촬영분을 깎아나가는 형식이라 작업 과정이 달랐어요. 여기다 만화를 그리는 다슝과 생존자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장면도 그려야 했기 때문에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거의 모험에 가까운 제작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6월 2일 서울 종로구 피카디리 극장에서 열린 ‘영원한 봄’ 시사회에서 제이슨 감독이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 김국환/에포크타임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압력이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나요?

“저의 사업을 방해하고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협했습니다. 다슝과 함께 제작한 쿵푸 게임이 중국 대기업 텐센트를 통해서 발매될 예정이었는데 발매일이 다가오자 텐센트의 모든 판매처와 매장 진열대에서 우리 게임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중국 당국이 텐센트 측 우리 사업 파트너들에게 우리 회사와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했고 결국 모든 거래가 끊겼습니다.”

“가족도 위협했습니다. 제 아내의 고향이 창춘인데, 중국 공안이 창춘에 사는 아내의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너희 가족이 해외에서 하는 일을 알고 있다. 중국 정부의 지시를 거역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나. 가족이 누군지도 알고 있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으셨군요.

“중국 공산당의 탄압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실제로 이런 압박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사람들이 관련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사업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겠죠. 이게 바로 중국 당국이 쓰는 당근과 채찍 수법인데, 이런 게 먹힌다면 중국 당국은 이미 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키를 쥐게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다슝을 비롯해 사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희가 어떤 불편함이나 사업적 위험성을 감수하더라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걸 희생한 분들이 직면한 위험과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서구권에서는 자유나 표현의 자율성에 대해서 늘 중요하게 다루지만, 자기 사업에 리스크가 생기거나 자기 삶이 좀 불편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런 얘기를 알리지 않고 덮어버린다면 결국 중국 공산당 억압자들과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거대한 위협에 직면해서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어떤 분은 중국 남부에서 체포돼 고문받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문 강도가 약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탈출해서 해외로 나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는데, 그의 가족이 미국을 포함해 여러 인권 단체에 그의 이름을 알렸고 중국 정부에서 더는 그를 심하게 다룰 수 없게 된 것이죠.”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중국 공산당의 탄압에 맞서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은 탄압받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울 수 있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두려워 말도 못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중국 정부는 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파룬궁에 대해 알게 되셨나요.

“파룬궁을 처음 알게 된 건 제가 고등학생이던 199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때 만난 몇몇 파룬궁 수련자들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은 분들이었는데 그로부터 몇 년 뒤 갑자기 중국 정부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은 악한들이고 파룬궁 수련을 당장 멈춰야 한다는 등의 선전을 하기 시작했어요. 중국 정부의 주장은 제가 직접 경험한 것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파룬궁으로도 알려진파룬따파(法輪大法)’ ((() 핵심 가치로 하는 명상 수련이다. 1992 중국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된 이후 건강 개선 효과가 뛰어나 인기를 얻었으나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였던 장쩌민은 이를 공산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해 1999 7 20일부터 대대적인 파룬궁 탄압을 시작했다. 

“창춘 정부 관계자의 딸인 제 아내는 당시 중국에서 발생한 박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이후 다슝같이 실제 박해를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모든 중국인에게 중요한 사실이며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캐나다 태생의 제이슨 감독은 ‘영원한 봄’ 시사회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이 영화를 알리기 위해 한국 말고 또 어느 나라를 방문하셨나요?

“유럽, 호주, 인도를 포함해 10여 개국, 50여 개 영화제에서 상영했고 이번 주 남아메리카에도 갈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 여러 곳에서도 상영했습니다.”

-이 영화는 어떤 점에서 특별하다고 평가하나요?

“이 영화는 스토리도 특별하지만, 제작 과정까지 보여준다는 점이 다른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됩니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한 꺼풀 벗겨내서 제작자들이 매 순간 어떤 감정으로 스토리를 짜고 그림을 그렸는지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과 더 소통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또 다른 점은 관객들을 아티스트의 경험 속으로 데려가 그의 마음을 직접 체험하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넘나들며 좀 더 관객 마음에 다가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슝은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도시의 디테일한 모습까지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자동차에 마커로 그린 낙서까지 구현했으니까요. 다만 그가 그린 이미지는 매우 아름답지만, 일러스트라 평면적이고 깊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모든 공간을 3D로 제작하고 2D 드로잉을 결합해 관객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으세요?

“현재 VR(가상현실) 관련 일, 게임 개발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 인권 문제 관련한 작품을 하나 계획 중인데 아직 초기 단계이고, 지금 찍고 있는 장편도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해 보고 싶어서 계획 중입니다. 영원한 봄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김학철 씨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1인칭 시점의 VR 영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직접 김학철 씨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감독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어려운 일에 도전하면 그만큼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어떤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풀어가는 일은 그걸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사람 모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영화인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영화를 편집하는 1년 동안 수도 없이 봤고, 영화제 출품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영하는 동안 최소 100번은 넘게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질리지 않는 건 등장인물들이 보여준 희생과 용기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영화를 볼 때마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역경이 떠올라 감명이 더 깊어짐을 느낍니다. 영화 제작 과정은 저와 가족, 동료,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 영화를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