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덮친 ‘달러 강세’…환율 급등, 수입 물가 비상

이윤정
2022년 04월 30일 오전 11:10 업데이트: 2022년 04월 30일 오후 9:25

환율, 2년여만에 최고…“달러당 1300원도 가능”
美 연준 긴축에 강(强)달러 지속할 듯
국내 물가상승, 외국인 자본 이탈 우려
WB “50년 만의 스태그플레이션” 경고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달러에 비해 원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국내 소비자 물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인플레이션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달러당 1270원을 넘어서며 2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6거래일 만에 1250원대로 하락했다. 지난 4월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6.6원 내린 1255.9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정부가 환율 안정에 나서겠다며 이틀 연속 외환시장에 개입할 의지를 밝힌 것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2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주재한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외환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급격한 시장 쏠림이 발생할 경우 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미국의 금리 인상 가속화와 중국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가 맞물려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금리 여건 변화와 이에 따른 국내외 금융시장, 실물경제의 파급 효과 등을 예의주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하루 전인 28일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필요한 경우 외환시장 안정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 강세 지속할 듯…환율 1300원도 가능

4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272.5원에 마감했다. | 연합뉴스

연일 가파르게 상승하던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모처럼 하락세를 보였지만 지금처럼 달러화 강세가 계속되는 한 큰 흐름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월 21일 이후 6거래일 동안 36.4원이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했다. 달러당 1230원대에서 26일 달러당 1250원대를 넘어서더니 28일에는 달러당 1272.5원에 장을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1270원대로 올라선 건 코로나19 발생 초기였던 지난 2020년 3월 이후 2년 1개월 만이다.

최근 달러 가치가 높은 수준으로 오른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공격적 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부터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물가 상승세와 경기 둔화에 따른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도 강(强)달러 현상의 요인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중국 대도시 봉쇄가 공급망 차질을 악화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환율은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달러 강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4월 27일(현지 시간), 러시아는 폴란드와 불가리아가 가스 대금을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아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며 달러화 강세를 부추겼다. 중국과 일본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추진하면서 달러화 대비 위안화, 엔화 약세를 유발하는 것도 원화 약세를 가중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28일 오전 잠시 주춤하는 듯하던 원·달러 환율이 이날 오후 일본 은행(BOJ)의 금리 동결 소식에 1270원대로 올라섰다.

일각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00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치솟는 국제유가에 환율 급등까지…국내 물가상승 부채질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유가정보 | 연합뉴스

이전에는 환율 상승이 수출에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환율이 올라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우리나라가 수출품의 가격을 낮춰 무역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다르다. 원화보다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가치가 더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해외 현지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해 바로 판매하는 기업이 늘면서 ‘환율 효과’는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의하면 지난 5년간 한국 100대 기업의 해외 법인 매출은 평균 5.6% 증가했다.

이처럼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 경쟁력 강화 효과는 미미해진 반면, 원자재 가격 등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은 악화일로 형국이다.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 상승을 통해 국내 소비자 물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여기다 국내·외 요인으로 석유류 등 에너지 가격이 1년 전보다 급등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달 국제 유가 급등으로 수입물가지수가 7% 이상 뛰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수입물가지수는 148.80으로 1971년 1월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보다는 7.3% 올랐고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35.5% 급등한 수치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더 상승하면서 수입 물가도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수입품 가격 상승은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가 지난 3월,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 4.1% 올라, 10년 3개월 만에 4%를 넘어섰다.

지난 몇 년간 외국인의 투자가 많이 늘어난 국내 자본시장도 환율 상승에 취약하다. 최근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예고에 따른 불안이 번지면서 글로벌 증시는 이미 약세로 돌아섰다.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면서 국내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우려도 적지 않다.

강달러 충격 속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급등과 환율 상승이라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됐다. 기업 실적 감소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공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미 워싱턴DC의 세계은행(WB) | 연합뉴스

세계은행은 26일(현지 시간) ‘상품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가 50년 만의 최대 물가 충격을 맞고 있다”며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탓에 올해 식량·에너지 가격이 50% 이상 상승한 후 2024년에야 진정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전 세계 가계가 생활비 부족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