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경제안보 전략’.. 韓 강점 살려 위기를 기회로

이연재
2022년 09월 2일 오후 8:24 업데이트: 2022년 09월 2일 오후 9:00

세계 경제의 화두로 떠오른 ‘글로벌 공급망(GSCㆍGlobal Supply Chain)’ 이슈가 우리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이 최근 제정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한국산 전기차가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현대·기아 전기차의 현지 수출에 비상이 걸린 것이 대표적이다.

IRA에 따라 전기차 구매자에 대한 미국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한국산이 제외된 건 미국 의회가 공급망 안정화 정책 차원에서 보조금 지급 대상을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로 제한하는 규정을 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공급망 안정화 정책 시행이 미국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며 적용 품목 또한 전기차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한국 경제에 심각한 도전이 될 전망이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 에포크타임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경제안보 : 미중 경제 전쟁,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양 의원은 인사말에서 “지난해 요소수 부족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국제사회의 공급망이 흔들리면 산업계뿐 아니라 국민들의 일상까지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한다”며 “반도체, 배터리와 같은 핵심 품목들의 공급망 문제는 모든 국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첨단 기술과 필수 원자재 확보는 기업은 물론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경제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교한 경제정책과 차별화된 전략이 시급하다”며 “이번 세미나에 다양한 대응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공급망 이슈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

이날 발제를 맡은 김양희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국제사회가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각자도생과 보호주의가 만연해졌다”며 “경제와 안보는 불가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김양희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의 모색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응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에포크타임스

김 교수는 이어 “글로벌 공급망 이슈 파고(波高)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라며 “격변에 맞춘 경제안보 전략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일관된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형 경제안보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형 경제안보전략을 “경제안보의 불가분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정책 수단을 구사해 국익을 최대화하는 경제안보 복합연계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강점 즉 ▲5대 제조강국 ▲최빈국에서 세계 10위 선진국으로 도약 ▲개방적 통상대국 ▲ICT 강국, 디지털 선도국 ▲문화 강국(Soft power)을 최대한 살려 우리나라에 국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원칙을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형 경제안보전략의 6대 추진 방향으로 ▲예측가능성(원칙적 일관된 접근으로 예측가능성과 신뢰 제고) ▲주동성(차별화된 강점을 선제적 개발·구사해 갈등 요인 관리, 해결) ▲점진성(기업의 전환 비용 최소화와 전환 역량 제고) ▲개발성(국제협력으로 집합적 협상력 문제 해결 능력 제고, 신흥 규범 형성 주도) ▲포용성(국내외 이해관계자 간 성과 공유, 선진국·개도국 간 가교 역할) ▲창의성(가보지 않은 길을 여는 개척정신과 발상의 전환 발휘)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이어 “향후 우리나라가 산업 경쟁력을 유지·발전하기 위해서 미국과의 협력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제조 강국이지만, 그 원천기술과 장비는 여전히 미국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십수 년간 우리가 성장해왔던 자유무역은 완전히 퇴조되고 신뢰할 수 있는 나라·기업들과 새로운 규칙과 규범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미국의 보호주의 진영화 전략이 투사된 공급망 재편 전략을 ‘신뢰가치사슬(Trust Value Chain·TVC)’이라고 불렀다.

김 교수는 “미국 주도로 새 판 짜기가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가 중국의 반발이 우려돼 미국에 경도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한다면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원천기술, 핵심기술을 얻을 곳이 없다”며 “중국이 그걸 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관계를 긴밀히 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가 있지만 이를 상쇄, 혹은 뛰어넘는 이익이 있다면 협력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한국의 글로벌 공급망 강화를 위해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실효성 있는 대응전략을 논의했다.

토론자로 강희민 기획재정부 공급망안정화기획단 총괄과장,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 김계환 산업연구원 본산업통상연구본부장,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 박철범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 상무 등이 참여했다.

강희민 기획재정부 공급망안정화기획단 총괄과장(좌)과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팀장(우) | 에포크타임스

강희민 과장은 “최근 공급망 문제가 정치적 측면과 결부돼 위험이 장기화·상시화하고, 해결도 쉽지 않다”며 “공급망 변화는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다자간 공급망 협력채널에 적극 참여하는 등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외교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제정을 통해 다양한 지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팀장은 “공급망 재편은 단기적으로 우리의 해외시장 진출 및 확대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국들이 국내 생산 역량 강화를 주요 전략으로 채택했지만,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연 팀장은 “한 국가의 제조 역량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번 공급망 재편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다변화 시급

김계환 산업연구원 본산업통상연구본부장(왼쪽에서 2번째),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왼쪽에서 5번째), 박철범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 상무(왼쪽에서 6번째) | 에포크타임스

강석구 본부장은 “IRA법 등 미국 주도의 새로운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망의 다변화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자유무역과 투명한 공급망 구축과 같은 원론에 충실히 하고, 복원력이 강한 공급망을 스스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최종 서명한 IRA를 살펴보면 오는 2024년부터 전기차 구매자를 대상으로 7천500달러의 보조금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지급한다. 다만,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한 광물이 전기차 배터리의 40%를 채워야 한다. 또 북미에서 제조되는 배터리 주요 부품 비율도 50% 이상을 만족해야 한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니켈·코발트·망간(NCM) 전구체 수입 비중을 살펴보면 지난해만 중국에서 약 94%가량 공급받았다. 중국산 광물이 절대적인 국내 배터리 업계로서는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김계환 본부장은 장기적으로 중국에 편중된 원자재·중간재 공급망의 다변화가 이뤄지지 못하면 교역 구조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대중 무역적자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배터리 소재 등은 중국산이 가성비가 뛰어나 공급처를 다각화하는 게 쉽지 않다”며 “수입 다변화와 기술력 확보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처별-분야별 정책의 리스트 나열이 아니라 새로운 발전 모델로 나아가는 정치 어젠다를 국회가 제시해야 한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중심), 안미경세 (안보는 미국, 경제는 세계와 더불어)를 넘어 전략적 자율성을 목표로 한 한국 경제 발전 모델에 대한 양당의 공감대,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철범 상무는 “현재 상황은 기업의 예측능력과 대응력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며 “정부-국회-기업 간 긴밀한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종합대책을 정부와 기업이 함께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