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여성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서양 학자들의 자존심이 뭉개졌다

황효정
2020년 10월 30일 오후 12:47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후 5:14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고서 전시회.

이곳에 나타난 한 동양인 여성이 있었다. 여성을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뭘 안다고 지껄이냐!”

여성의 정체는 1950년 서울대를 졸업한 박병선. 대학 졸업 후 박병선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떠나는 박병선에게 당시 스승이 말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한 우리 도서가 많다. 기회가 있다면 한번 찾아보라”

스승의 말을 마음 깊이 새긴 박병선은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공부와 고서 찾기를 병행했다. 이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국립 도서관 사서가 된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픽사베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박병선은 중국 서적 코너에서 우연히 먼지 더미에 파묻힌 고서 하나를 발견한다.

직지심체요절이었다.

누구 한 번 훑어보지도 않고 방치된 직지심체요절을 읽은 박병선은 놀라운 구절을 찾아냈다.

이 책은 쇠를 부어 만든 글자로 찍어 배포하였다

직지심체요절 / 연합뉴스

당시까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정받았던 책은 독일 구텐베르크의 성서였다.

직지심체요절은 그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었던 것.

박병선은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 뒤로 몇 년 동안 홀로 연구했다.

시간이 흘러 1972년이 됐다. 파리 고서전이 열리던 해였다.

파리 고서전에 참가한 박병선은 발표한다.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입니다!”

연합뉴스

동양 여성의 발언에 자존심이 상한 서구학자들은 “말도 안 된다”며 박병선에게 비판이 아닌 비난과 무시를 쏟아냈다.

철저한 국제적 검증이 진행됐다. 직지심체요절은 1년 뒤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받는다.

그런데 정작 박병선이 충격받은 이유는 한국에서의 반응 때문이었다.

“여자가 그런 일을 해낼 리 없다, 거짓말 하지 마라!”

한국과 프랑스 모두의 의심과 냉대, 무시를 견뎌야 했던 박병선.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르던 1975년, 박병선은 또 한 번 일생 최대의 발견을 해낸다.

외규장각 의궤 / 연합뉴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폐지 창고였다. 그곳에 병인양요 때 빼앗긴 조선왕실의 외규장각 의궤가 있었다.

박병선은 이후 매일 의궤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976년 한국에 의궤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자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격분한 프랑스 정부가 박병선을 기밀 유출 명목으로 해고했다.

해고된 다음 날도, 박병선은 도서관을 찾았다. 자신 앞을 가로막는 프랑스 직원들을 향해 박병선은 말했다.

“저는 방문객일 뿐입니다. 한낱 개인인 제 출입을 막을 이유가 있나요?”

그렇게 박병선은 도서관 방문객으로 매일 도서관을 찾았고,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도 의궤를 대여해 매일 홀로 연구했고 의궤 반환 운동을 펼쳤다.

박병선 빈소 / 연합뉴스

평생을 푼돈 수준에 불과한 연금으로 살며 오로지 의궤에 바친 일생이었다.

만년에 다다른 박병선의 책상에는 각종 약과 끼니를 때울 비스킷, 연구자료로 가득했다.

의궤는 2011년 5월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해 11월, 박병선은 의궤가 145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하는 모습을 보고 눈을 감는다.

마지막까지 박병선은 “‘대여’ 방식의 의궤 반환이 완전히 우리의 ‘소유’가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외규장각 의궤 반환은, 누군가가 36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하여 치른 값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