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NGO단체, ‘재일교포 북송사업’ 진상 규명·공식 조사 요청

이윤정
2022년 12월 10일 오후 9:01 업데이트: 2022년 12월 11일 오전 6:21

1959년부터 1984년까지 25년간 9만3000여 명의 재일교포가 북한으로 송환된 ‘재일교포 북송사업’ 피해자들이 해당 사안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를 신청했다.

‘재일교포 북송사업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2월 9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를 방문해 해당 사안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하고 공식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대규모 재일교포 북송사업과 관련한 조사 신청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위원회는 ‘재일교포 북송사업’의 진상 규명을 위해 이달 한·일 NGO 연대 형식으로 조직됐으며, 참여 단체는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결성된 시민단체인 ‘모두 모이자(대표 가와사키 에이코)’를 비롯해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김석우), 전환기정의워킹그룹(대표 이영환), (사)북한인권(이사장 김태훈),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등이다.

신청자는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이주했다가 탈북한 한국 국적 재일교포 10여 명과 북한에서 출생 후 탈북한 북송 2세 및 3세 20여 명 등 총 30여 명이다. 신청서에는 북한 정부와 북한 적십자사,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등이 가해자로 기재됐다.

위원회는 진실 규명이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송사업에 수반된 인권 유린의 광범위함·체계성·중대성 ▲북송사업을 주도한 북한 정부의 동기 규명 ▲기만·사기를 통해 북송사업을 기획한 가해자의 책임 규명, 관련 자료 체계화 ▲북송자 대부분이 남한 출신임에도 이들의 북송을 저지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의 부채 의식 속죄 ▲대한민국 내 북송사업에 대한 대중의 문제의식 개선 및 해결 의지 고취 ▲피해자 고령화로 진실 규명을 위한 시간 촉박

재일교포 북송 사업은 북한과 일본이 체결한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59~1984년까지 187회에 걸쳐 총 93340명의 재일교포와 그 가족이 북한으로 이주한 사건이다. 북한 정부와 조총련의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선전하에 북한으로 이주한 재일교포들은 일본이나 남한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북한의 최하 신분으로 전락해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인권 불모지에서 더 혹독한 차별과 고통을 견뎌야 했다.

앞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보고서에서 “북한 내 납치와 강제 실종 대부분이 북송사업과 연관돼 있다”며 “그들은 출신 및 배경 때문에 ‘적대 계층’으로 분류돼 외딴 지역의 농장이나 광산에서 강제노동에 투입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북송사업에 따른 10만 명의 재일교포 및 일본인 배우자의 강제 실종을 ‘반(反)인도범죄’로 규정하고 가해자로 북한 정부, 북한 적십자사, 조총련을 명시했다.

재일교포 북송 피해자들이 12월 9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방문, 재일교포 북송사업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 모두모이자 제공

위원회는 “북한으로 강제 이주된 약 10만 명의 재일교포 대다수는 38선 이남 지역 출신자로, 북한 정부에 의한 조직적인 차별과 착취, 인권 유린을 경험했다”며 조사 신청 취지에 대해 “북송사업 문제는 대한민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관련 피해자를 지원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북송사업과 북송자들의 북한 내 인권유린에 대한 진실 규명이 공식적으로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상조사의 일환으로 북송사업 시행 당시와 이후 대한민국 외교부, 정보기관 등 정부 측에서 파악하고 있던 상황과 관련 기록을 수집하고 분석·정리·공개해 달라”며 “대규모로 조직된 북송사업의 주요 책임 가해자와 세력에 대해 밝히고, 북송 재일교포와 그 자녀들이 북한에서 세대에 걸쳐 지속해서 경험하고 있는 인권유린의 실체를 규명해 주기를 요청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진상조사 진행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 적십자사, 국제적십자 위원회 같은 북송 사업 관련 주체의 협조를 요청해 북송자 전체 명단을 확보·공개하고 정확한 피해 규모 확인, 사례 수집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위원회는 “북송사업에 관여한 책임 주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북송사업을 기획·조직한 주요 가해자인 북한과 조총련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북송이 자발적 귀국이었다고 주장하며 사기와 기만, 당시 사회적 압력 등으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동의를 할 수 없었던 북송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이번 신청서 수리를 통해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대사의 일대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북송사업의 전모와 관련 인권 침해의 유형이 밝혀지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