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우편투표·거리투표함 규제하는 선거법 개정안 통과

하석원
2021년 05월 2일 오후 11:18 업데이트: 2021년 05월 3일 오전 8:02

미국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 선거에서는 민주당에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내줬지만 내년 하원선거(중간선거)와 2024년 선거를 위해 하나하나 대책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플로리다 주의회 상원은 지난달 29일 우편 투표용지와 거리 투표함(drop box·드롭박스)을 몇 가지 제한을 두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원을 77 대 40의 표결로 통과해 이날 상원으로 넘겨진 법안(SB 90)은 23 대 17로 이제 론 드산티스 주지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주지사가 서명하면 법안이 최종 승인된다.

플로리다주는 상원과 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으며, 드산티스 주지사 역시 공화당 소속이다. 드산티스 주지사는 법안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은 유권자의 신분 확인을 위해 우편 투표용지에 자필 서명을 하도록 했다. 인쇄하거나 다른 수단을 써서는 안 되며 펜을 이용해 직접 손으로 쓴 것이어야 한다.

또한 길거리나 다중이용시설, 공공기관에 설치된 거리 투표함은 유권자들이 사전투표 기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단, 선거사무국에 설치된 거리 투표함은 예외다.

이 법안은 거리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을 때도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했다. 신원 불명의 인물이 위조한 투표지나 타인의 명의를 가로채 우편 우표용지를 발급받은 뒤 대리 투표 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상식적인 수준의 규제들이지만, 지난 2020년 선거 당시 모두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우편투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무시됐었다.

선거 독려 시민단체들이 “모든 유권자의 투표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거리 투표함 확대 설치를 지원하고, 현장에서는 서명이나 신분증 확인을 ‘유권자 차별’이라며 생략·간소화됐다.

이 법안은 기표가 끝난 우편 투표용지를 유권자 본인을 제외하고 아무나 발송하지 못하도록 하고, 선거 관리 공무원이 대리투표 동의서를 작성·제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우편 투표용지 신청 접수 역시 선거 때마다 새로 하도록 했다.

이는 유권자가 한번 우편 투표용지를 신청하면 이후 신청이 자동 갱신돼, 선거 때마다 투표용지가 자동으로 발송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렇게 발송된 투표용지가 유권자 사기에 악용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

아울러 이 법안은 누구든지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런 의도를 가진 어떤 활동에도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다만, 투표소 등 제한 구역에서 선거 관리 공무원이 유권자들에게 물과 음식 등을 포함한 지원 물품을 제공하는 것은 허용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시민 혹은 단체 회원들이 투표소 부근에서 투표를 위해 기다리는 유권자들에게 물과 음식을 나눠주며 부당한 선거 운동을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으로 여겨진다.

지난 2020년 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일부 시민과 단체 회원들이 주로 중남미나 흑인 유권자들에게 식료품 쿠폰 혹은 현금 등을 살포하며 투표 독려 활동을 펼쳐 선거법 위반 등으로 문제가 됐다.

이 법안은 또한 선거감독 공무원들에게 선거 30일 전에 거리 투표함 위치를 선정하고 공지하도록 요구했다. 한번 위치가 공지된 투표함은 어떠한 이유로도 위치를 변경할 수 없도록 했다. 유권자들이 ‘허탕’ 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법안 초안에서는 거리 투표함을 전면 금지했으나 이후 다소 완화했다.

플로리다에서는 지난 2020년 선거(대선, 연방의회, 주의회 등 포함)가 허술한 관리와 유권자 사기로 인해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주정부와 의화, 주민들이 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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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주지사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4.1 | 에포크타임스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해 플로리다 주지사 드산티스의 대변인은 “플로리다가 선거 보안, 공정성, 투명성 면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주가 될 것”이라며 지지했다고 미 ABC 방송은 보도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애나에스카마니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조지아주와 마찬가지의 유권자 탄압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에스카마니 의원은 “우편 투표를 어렵게 만들고, 시민단체가 유권자들에게 식수를 나눠주는 것을 금지하고, 투표함 설치를 규제하고 있다”며 “이번 결과로 마음이 아프지만 열심히 싸운 민주당 의원들이 자랑스럽다. 계속 싸워야 한다”고 썼다.

미국은 연방정부에서 선거법을 제정하기는 하지만, 실제 선거는 주의회에서 정한 주 선거법에 따라 카운티 단위로 치러진다. 카운티 위원회가 정한 선거 규정들도 함께 고려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작년 선거 이후 40여 개 주의회에서 공화당 주도로 선거법 개혁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중 가장 첫 번째로 지난달 초 조지아에서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가 상하원을 통과한 선거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이 개정안은 플로리다의 선거법 개정안과 유사하다. 거리 투표함 설치를 제한하고 투표 시 서명 확인과 사진이 든 신분증 제시를 의무화했다. 투표소에서 시민단체가 유권자들에게 물과 음식을 나눠주지 못 하도록 했다.

그리고 주 의회 의원들이 카운티의 선거 운영에 더 많이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특정 정당에 대해 편파적인 카운티 공무원들이 주정부나 의회의 감독을 거부하며 선거를 마음대로 운영할 수 없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 같은 조지아주의 법안 통과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뿐만 아니라 코카콜라, 델타항공 등 기업 임원들, 메이저리그 구단까지 들고 일어나 격렬한 비난 성명을 내며 반대했다.

할리우드의 일부 감독과 영화인들도 조지아에서 촬영을 보이콧하고 나섰다. “투표장 문턱을 높인 인종차별법”이라는 극단적인 비난까지 나온다.

그러나 조지아 주지사 켐프는 개정된 선거법이 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접근성을 높인다며 이를 일축했다.

한편, 애리조나 등 공화당이 우세한 다른 주에서도 우편투표를 중심으로 선거 시스템을 손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