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B는 없다’ 美제재에 막다른 골목 몰린 화웨이

한동훈
2020년 09월 17일 오후 4:00 업데이트: 2020년 09월 17일 오후 5:26

미국의 제재가 지난 15일 발효되면서 전 세계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더 이상 화웨이에 제품을 납품할 수 없게 됐다.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파운드리)인 중신궈지(中芯國際·SMIC)도 “미국의 제재를 철저히 준수한다”며 공급을 승인받기 위해 미국에 신청서를 냈다고 밝혔다. 허가 전까지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 공급을 중단한다는 의미다.

궁지에 몰린 화웨이의 대응에 촉각이 곤두서는 가운데, 한 중국 현지 매체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화웨이가 다른 대책을 마련해 놓지 못했다고 전했다.

중국 경제전문지 증권시보(證券時報)는 최근 “지난 14일 화웨이 고위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화웨이에 플랜B는 없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부에서 공급처를 찾아보기는 하겠지만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화웨이의 생산 구조에 정통한 중국의 반도체 전문가 역시 “화웨이 칩은 마땅히 대체할 국산제품이 없다”며 “첨단 칩은 미국 기술과 장비의 규제를 우회하기 어렵다”고 했다고 증권시보는 전했다.

이 전문가는 “하위 칩은 쓸 수는 있지만 하위업체와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런 제품들은 SMIC가 이미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프리미엄급 제품으로 유지하고 있는 내수 시장 점유율을 잃게 된다.

또한 이 전문가는 “화웨이는 이제 정말로 길이 없다. 프리미엄 쪽은 확실히 불가능하다. 자동차나 OLED 스크린 등으로 규모를 축소하고, 노트북이나 태블릿 등 휴대기기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화웨이의 핵심사업은 스마트폰과 5G장비 사업이다. 두 사업 모두 반도체 의존도가 결정적이다.

화웨이는 이번 제재 발효에 앞서 대만 TSMC 등 공급처들로부터 프리미엄 반도체와 메모리를 대량 사들였지만, 최대 1년 반 정도만 버틸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홍콩 빈과일보는 업계 전문가를 인용해 최신 기술과 1년 이상의 단절을 겪게 되면 차세대 기기 개발 경쟁에서 완전히 배제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제조사별 스마트폰 주력 제품은 7나노 공정 칩이 들어간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의 기술력은 3~4년 뒤처진 14나노에 머문다.

SMIC가 기술 혁신을 통해 3년 뒤 7나노 공정을 따라잡더라도 경쟁사들은 더 발전된 3나노 공정 칩을 개발해 여전히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소비자 신뢰도 하락 등 화웨이가 구축한 브랜드 가치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제품 수리나 교환에 제약이 생기고, 향후 더 좋은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굳어질 경우 소비자들의 외면이 예상된다.

대만 TSMC와 미디어텍, 미국의 인텔, 퀄컴, 마이크론, 한국의 삼성, SK하이닉스 등은 지난 15일 화웨이에 제품 공급을 중단했다.

중국 업체인 SMIC마저 미국 정부의 제재 규정을 철저하게 준수하겠다며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에 신청서를 냈다”고 밝혔다. 미국이 SMIC에 대해서도 제재를 검토하자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사형선고’까지는 아니지만 ‘사형집행 유예’로 비유된다.

대만 TF 인터내셔널의 궈밍치 분석가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화웨이의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 모두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상황이 나쁘면 화웨이가 휴대전화 시장에서 퇴출당할 것”이라고 봤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의 최신 보고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화웨이는 1억 9천만 대를 출하해 시장 점유율 15.1%를 차지하며 세계 3위로 내려앉았다.

미국의 제재가 장기화하면 시장 점유율이 4.3%로 대폭 하락해 화웨이가 선두권에서 탈락할 것으로 보고서는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