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상처를 끌어안고 발을 내딛다

류시화
2023년 02월 21일 오후 5:02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9

과거 18, 19세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한 예술 사조인 ‘낭만주의’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독일의 낭만주의 예술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가장 많이 언급합니다.

작품 속에는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산봉우리들이 들쑥날쑥하게 배치되어 있고, 짙은 안개가 거칠게 산을 휘감고 있습니다. 안개는 공기 위로 떠올라 흩어집니다.

그림 속의 남자는 산봉우리와 안개 속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어쩌면 정말 광대하거나 지독한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예술계에서 ‘장엄한, 숭고한(Sublime)’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데요, 이 단어는 동시에 고체가 바로 기체화하는 ‘승화한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프리드리히는 이 작품을 통해 ‘승화되는’ 순간의 감정을 공유합니다.

낭만주의 미학

낭만주의 사조의 예술가로서 프리드리히는 자연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주로 신비로운 색채의 풍경과 인물들의 뒷모습을 그렸고, 시대의 감성과 당시 독일인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평과 함께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평가받았습니다.

상처와 공포를 마주하다

프리드리히는 가슴 아픈 가정사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천연두에 걸려 사망하고, 이후 두 명의 여동생도 같은 병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그가 열세 살이 되던 해 겨울에 남동생과 함께 꽁꽁 언 바다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의 동생이 바다에 빠진 그를 구해냈지만, 동생은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프리드리히는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의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개인사에 비춰봤을 때, 이 작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어릴 적 경험에서 나온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도 함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다

이 작품은 세계 많은 이들에게 여러 영감과 감동을 줬습니다. 웅장한 자연을 신선한 색채와 기법으로 표현해서만이 아니라, 그림에 담긴 메시지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전달하는 바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무저갱의 안개 바다를 바라보는 결연한 뒷모습에서 그가 어떤 대상을 마주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앞에 서 있는지가 느껴집니다.

자신의 안에 있는 고통과 두려움을 꺼내어 펼쳐두고 그는 등을 돌리거나 숨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서 고통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그는 무거운 발을 떼 한 걸음씩 나아갈 채비를 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자 미술사학자인 조셉 코너는 이 작품의 중심점이 그림 속 남자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그의 마음이 곧 우주의 중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림 속의 남자는 우주의 중심인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나아갈 방법과 해답을 찾으려 합니다. 마음속의 어둡고 아픈 부분을 마주해 그것을 바르고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킬 방법’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해낼 것입니다.

우리도 어쩌면 우리 안의 어두움을 묻어두기보다는 내면을 들여다보고 진실한 마음으로 직접 부딪치고 이겨내려 한다면 더 참되고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