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족’ 된 중국 전투기…“조종사 일탈 아닌 국가 전략”

앤드루 쏜브룩
2022년 06월 24일 오후 1:36 업데이트: 2022년 06월 24일 오후 1:36

지난 5월 하순, 호주 정찰기 한 대가 남중국해 상공의 푸른 하늘을 활공하고 있었다. 호주 정찰병들은 국제 영공에서 일상적이고 정당한 감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떠한 문제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중국의 제트 전투기가 나타나 호주 정찰기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중국 전투기는 빠르게 플레어(flare·미사일 추적 교란용 장치)를 발사하고 호주 정찰기 기수 바로 앞으로 근접해 지나갔다. 그다음 중국 전투기는 호주 정찰기의 레이더 시스템을 교란하기 위해 작은 금속 섬유 조각으로 된 ‘채프(chaff)’를 살포했다.

이 ‘채프’의 무수한 작은 알루미늄 조각들은 호주 정찰기의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항공기를 손상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호주 공군은 정찰 임무를 예정보다 일찍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사회는 이 사건을 ‘전쟁 행위’로 판단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지만, 이 사건은 분명 중국 공산당 정권과 미국의 동맹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적대적 접촉’ 중 하나다.

호주 국방장관 리처드 말스는 이 사건에 대해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말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러한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가 인도·태평양 지역 서방 동맹국들을 위협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음이 명백하다고 보고 있다.

탄커페이(譚克非)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중국의 호주 정찰기 공격 사건에 대해 “호주 정찰기 승무원들이 중국 측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했다”며 오히려 원인을 호주 쪽에 돌렸다.

탄 대변인은 호주 정찰기가 남중국해에 작은 섬들이 모인 ‘파라셀 군도’ 상공에 진입했다고 비난했다. 이 지역은 중국이 대만,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 중인 지역이다. 하지만, 탄 대변인은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중국 전투기 조종사들은 국제 영공에서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으로 변했다. 이들은 서방 동맹의 공군기와 선박들을 위협하려 자주 근접 비행을 한다. 그렇게 발생한 난기류에 서방 동맹국의 공군기는 예정된 경로를 우회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캐나다 글로벌뉴스는 지난 1일 군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전투기들이 캐나다 정찰기로부터 20~100피트(6~30m) 떨어진 거리까지 근접해 비행하고 있다”며 양국 조종사들이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상황에서 중국 조종사들이 손가락 욕을 했다고 전했다.

글로벌뉴스는 또한 최근 몇 달 동안 공해상에서 중국 전투기 조종사들이 캐나다 항공기에 위협 비행을 한 사건이 60건 이상 있었다. 이 중에는 캐나다 조종사들에게 공중 충돌을 시도해 비행 경로를 바꾸도록 한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난폭한 중국 조종사들…당국, ‘순교자’ 만들려 하나

중국 조종사들의 방해를 단순한 시비 걸기로만 볼 수 없다. 은밀한 불법행위를 감추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캐나다 공군 정찰기들은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 주둔하며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네온(NEON) 작전’을 수행 중이다. 이는 북한이 대북 제재로 금지된 연료나 핵 개발에 필요한 물품 등을 선박으로 운송하는지 감시하는 작전이다.

중국 공산당은 현재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석유 등을 은밀히 제공하는 등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대북 제재를 위반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서방과의 다툼에서 사망한 ‘순교자’를 만들려는 의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 2001년, 중국 전투기 조종사 왕웨이는 남중국해 상공에서 미 해군 정찰기와 충돌해 사출 장치로 비상 탈출했지만 사망했다. 그는 서방 항공기에 대한 위협 비행으로 악명 높았다.

그러자 당시 중국 공산당 주석 장쩌민은 왕웨이를 “바다와 영공의 수호자”라고 선언했고, 중국 공산당은 그를 ‘혁명적 순교자’로 선전하며 그의 행동을 중국 군사전술문화사전에 영구 등재했다.

이는 모든 것을 정치화하고, ‘심리전·여론전·법률전(법률 시스템을 이용해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전쟁)’의 3대 전법을 구사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전략적 움직임이다.

21년이 지난 지금, 시진핑 정권은 인도·태평양에서 서방의 영향력을 몰아내려 하고 있다. 지난 10일 미중 국방장관 회담에서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 준비가 돼 있다”며 양국 간 충돌 방지를 위한 ‘가드레일(안전장치)’ 설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회담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9개 항목으로 구성된 ‘비전쟁 군사행동 요강’에 서명했다. 해외 파병과 평화 유지를 골자로 한 이 요강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 대신 사용한 용어인 ‘특수 군사작전’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은 자국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더 난폭하게 행동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어쩌면 인도·태평양 상공에서 ‘제2의 왕웨이’가 나올 수도 있다. 불필요한 폭력을 휘두르다 스스로 죽음을 초래한 가엾은 ‘영웅’ 말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번에도 그때처럼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주권 수호를 위한 숭고한 행위”라고 치켜세울 것이 분명하다.

미국 아닌 동맹국 노리는 중국 전투기들

미국과 중국 양국 전투기 간에 있었던 한 번의 근접 비행을 제외하면, 중국 공산당의 공중 위협전은 미국이 아니라 대부분 미국 동맹국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이것은 고의적인 전략이다. 이는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 의존도가 높은 동맹국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대만 침공 시, 미국을 도울 수 있는 동맹국들을 사전에 조금씩 약화하려 한다.

미국의 전략자문회사 ‘블랙옵스 파트너스’의 최고경영자(CEO) 케이시 플레밍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계획이라면 중국 공산당은 미국 동맹국을 위협해 경제 제재나 지상전 지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할 것”라고 말했다.

플레밍은 중국의 공중 공격의 빈도와 ‘쇼맨십’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군사적, 법적, 경제적, 심리적 수단을 통해 서방 민주주의의 능력과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무제한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이브리드 전쟁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적을 약화하는 전략”이라며 미국은 중국 공산당이 미국의 동맹국을 상대로 벌이는 무모해 보이는 위협을 개별적 사건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미국과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 미국의 동맹국과 우호국을 약화하려는 인도·태평양 핵심 전략의 하나라는 것이다.

플레밍은 “이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 공산당의 폭주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제 영공을 자유롭게 비행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중국의 위협을 정확히 알고 기록하면서 우리의 합법적인 비행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