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패권전쟁서 가장 좋은 협상카드…양향자 “첨단기술 확보가 중요”

이연재
2022년 09월 28일 오후 9:20 업데이트: 2022년 09월 28일 오후 9:20

최근 미국發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상황에서 한국의 대응방향을 점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28일 ‘반도체, IRA(인플레감축법) 등 美 공급망 재편 전략과 한국의 대응’을 주제로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양향자 국회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前 주제네바 대사), 연원호 대외경제정책 연구원 경제안보팀장,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장,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美 공급망 재편 전략의 본질은 반도체 등 미래 첨단산업 패권 확보에 있으며, 한국은 과학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첨단기술 경쟁서 패배한 국가新식민지화될 수 있어..

미국 공급망 재편 전략과 한국의 과제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맡은 양향자 의원은 “기술력이 있으면 우방이 되고 없으면 무릎을 꿇고 굴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과학기술이 곧 외교이자 안보, 국방인 시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당장은 중국을 고립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메모리 1위인 한국을 따라잡고 대만을 추월하는 것이 목표다. 첨단기술 경쟁에서 패배한 국가는 新식민지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이어 외교 전쟁에서 가장 좋은 협상 카드는 첨단산업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반도체를 중심에 둔 여·야·정·산·학의 공조는 계속돼야 한다. 반도체특위의 탄생과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법(K-칩스법) 발의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K-칩스법은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총 2건의 패키지 법안이다.  ‘K칩스법’ 중 하나인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은 지난 19일 산자위에 상정됐지만, 조례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지난달 발의된 이후 계류 중이다.

양 의원은 반도체특위에서 국회 차원의 ‘첨단산업 특별위원회’ 구성, 정부 차원의 ‘과학, 기술, 산업 컨트롤타워 설치’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한국 첨단산업의 발전을 수호하고 기업들의 역할을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WTO FTA 제소 ▲상하원을 통한 입법 수정 ▲시행령 韓 입장 반영 등을 제시했다.

IRA가 한국과 미국 기업‧제품 간 차별을 금한 내국민대우(NT 조항)와 한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MFN 조항) 등을 위반하는 부분에 대해 EU, 일본 등 IRA의 영향을 받는 다른 국가들과의 공조를 통해 대응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또한 인플레감축법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최대한 한국에 유리한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 미 국무부·무역대표부(USTR)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미 의회 대상으로도 설득 작업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어진 전문가 토론에서는 미국 반도체와과학법, IRA 등 최근 미국 내에서 통과된 법안들에 대해 앞으로의 전망과 대응방향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첨단산업 패권을 주도하려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 중요한 상황임을 강조했다.

美, 2024 대선까지 대중국 압박 이어질

한미 정책 공조 선제적으로 강화해야

연원호 대외경제정책 연구원 경제안보팀장 | 에포크타임스

연원호 팀장은 “최근 미국의 대중국 견제 기조가 변하고 있다”며 “특히 반도체 산업에 있어 동적견제(dynamic control)에서 정적견제(Static control)로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 팀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대중 반도체 견제는 동적견제에 가까웠다. 그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도 중국을 최대 시장으로 삼고 있는 만큼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에서 대중 견제를 모색했다. 당장의 최첨단 기술은 안 되지만 미국이 더 나은 기술을 확보하며 일정 격차를 유지하는 선에서 중국에 일부 기술을 허용하는 식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미국의 견제 목표는 더 이상 중국과의 격차 유지가 아니라 현 수준에서 중국의 발전을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반도체에 한해서는 중국의 발전을 막고 중국이 해외에 더욱 의존하도록 만든다는 전략이다.

연 팀장은 최근 시행되는 미국의 견제 정책이 특정 기업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중국 전체에 대한 통제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바이든 정부가 중국 내에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위한 투자 확대가 일어나는 것을 전면적으로 막을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이전 트럼프 정부와 달리 특정 기업에 대한 제재보다 우방국과의 연대를 통해 우려 국가(Country of concern) 전체에 대한 제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연 팀장은 이어 미‧중 긴장에 대해 “미국은 경제안보를 위해 자체 역량 강화와 국제 협력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올해 11월 중간선거뿐만 아니라 2024 대선을 앞둔 내년 하반기까지 미국 내 자국 우선주의적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일례로 미국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장비의 경우, 앞으로 대중국 견제가 강화될수록 美 장비 기업들에 불리한 측면이 있지만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한국은 가만히 기다리기보다는 한미 정책 공조를 위한 대화와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지 자동차 공장 가동 앞당기는 조치 필요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에포크타임스

조 철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IRA로 인해 단기적으로 국내 자동차 업체의 미국 내 전기차 수출에 어려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전기차 전환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IRA는 결국 자국 산업 보호 및 육성이 주요 목적”이라며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은 한국의 자동차와 배터리산업”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관련 보조금(세액 공제)을 받기 위해서는 북미지역에서 생산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전기차 본격 생산은 2025년 예정된 전기차 전용공장이 가동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당분간 미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전기차 판매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IRA는 전기차와 관련해 미국 중심 생산과 공급망 구축을 꾀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국의 전기차 공급망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우리 수출차에 대한 예외 인정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현지 공장 가동을 앞당기는 조치와 함께 자유무역협정(FTA)을 기준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핵심광물 확보 역량 위해 국가가 나서야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장 | 에포크타임스

한편 핵심 광물의 공급망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동환 원장은 “미국의 IRA로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 칠레 등 자원 부국에서 조차 광업법, 세법을 통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제한하고 고세율을 적용하는 등, 신(新)자원민족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내년부터 주요 광물과 배터리 부품의 제조 비율 조건을 단계적으로 상향해 2027년에는 광물 80%, 2029년에는 부품 100%를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에 김 원장은 한국 업체들 또한 이번 법안 시행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의 주원료 약 80~90%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수산화리튬의 중국 수입 비중은 84.4%에 달했으며 코발트와 천연흑연의 중국 수입 비중 또한 각각 81.0%, 89.6%로 집계됐다. 니켈과 코발트, 망간의 혼합물인 전구체는 지난해 수입 물량의 94%가 중국산으로 조사됐다.

양극재뿐만 아니라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4대 핵심 부품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50~70%에 달하는 만큼 당장 중국을 대체할 만한 공급망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 원장은 “배터리 광물보다 배터리 광물 제련시설이 중국에 집중됐다. 그런 제련시설을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게 관건인데, 당장 환경문제 이슈가 걸려 있다. 그렇게 되면 지역 주민과의 협상이 필요한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이러한 환경에서 IRA가 제시한 2027년까지 80%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은 민간기업들의 역량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정부 차원에서 공공 부문의 자원개발 생태계를 복원시켜 핵심 광물 개발에 앞장서는 것과 동시에 민간기업의 광물 투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