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설’ 中 부동산 재벌 헝다 임원들, 계열사 투자금 미리 빼내

김윤호
2021년 09월 18일 오후 3:43 업데이트: 2021년 09월 18일 오후 4:02

계열 투자회사, 만기 도래한 고객에 “돈 못 돌려줘”
돈 빼내간 임원에 투자회사 사장 포함됐단 보도까지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이 파산 위기를 맞은 가운데, 그룹 임원 일부가 투자상품을 조기 상환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헝다그룹은 18일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5월 1일 기준, 계열 투자회사인 ‘헝다차이푸(財富)’ 투자상품을 보유한 그룹 임원은 44명이며, 이 중 6명이 조기 상환받았다고 공지했다.

헝다차이푸는 최근 만기 도래한 상품의 투자금을 구매자에게 돌려주지 못했지만, 그룹 임원들에게는 조기 상환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는데, 이를 사실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헝다그룹이 불리한 의혹을 시인한 것은 만기 도래한 상품의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투자자 일부가 광둥성 선전시의 헝다그룹 건물 앞에 몰려가 항의를 하면서 파산설이 크게 증폭됐기 때문이다.

일단 어느 정도 사실을 인정해 파산설을 ‘자금난’ 정도로 낮추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다만, 헝다그룹은 조기 상환을 인정한 공지문에서 조기에 상환받은 회사 임원 6명의 실명이나 투자상품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해당 임원들에게 상환받은 돈을 정해진 기간 내에 반환하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허난상보, 펑파이 등 중국 매체는 조기 상환받은 임원 중 한 명으로 헝다차이푸 총경리(사장)인 두량을 지목했다. 보도에 따르면, 두량 사장은 가족들 명의로 투자한 990만위안(약 18억원)을 돌려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헝다그룹이 ‘자기 돈’만 먼저 빼낸 임원 6명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점도 그중 한 명이 헝다차이푸 사장으로 확인될 경우, 사태 수습이 불가능할 지경으로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헝다그룹이 진정으로 투자자에게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헝다그룹 회장인 쉬자인 회장의 부인도 헝다차이푸 투자상품에 투자했으며 지난 7월 조기 상환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이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수습 노력이 직원과 투자자들만 인질로 삼은 시간끌기 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 말 기준 헝다그룹의 부채는 1조9500억 위안(약 350조원)으로 천문학적 규모를 기록했다. 마구잡이 사업 확장을 하던 중, 중국 당국이 주택 거품을 잡겠다고 안정 조치를 내놓으면서 급속히 경영난에 빠졌다.

헝다그룹의 한 관계자는 “500대 그룹이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사태 수습 의지를 믿어달라고 말했지만, 중국 문제 전문가 천웨이는 “개인적으로 수습 방안 자체는 납득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신뢰”라고 꼬집었다.

중국 공산당이 헝다그룹을 구제하려는 의지가 크지 않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 공산당의 ‘입’으로 불리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의 편집장 후시진은 지난 17일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기업은 반드시 시장 방식의 자구 능력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천웨이는 “헝다그룹은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만 믿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아왔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에 살아남든 살아남지 못하든 헝다그룹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