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세계 무역질서 ‘새판짜기’ 나섰다… 영향력 잃은 ‘WTO’

리무양(李沐陽)
2018년 08월 11일 오후 10:30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3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를 이용해 무역 파트너를 1대1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며 수많은 불공정 무역에 대처해 왔다.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장클로드 융커(Jean-Claude Juncker) EU 집행위원장이 회담 후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과 유럽 간의 ‘관세 제로, 무역 장벽 제로, 비자동차 보조금 제로’의 자유무역을 위해 WTO 개혁을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8월 9일, 미국과 일본이 제1차 무역협상을 개시했다. 이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경제재생담당상이 8월 1일 밝힌 것이다.

미∙일 무역 협상은 미국과 EU가 맺은 협정처럼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서방세계에 곧 새로운 ‘부국(富國) 클럽’이 탄생할 것이며, 냉전 종식 후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재조정으로 인해 WTO는 점차 영향력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는 줄곧 WTO의 불공정성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며 미국에 장기적인 대규모 적자를 초래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이 규칙이 지속돼선 안 되며 반드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밝혀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렇게 진행될 경우 미국의 국가 안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단번에 WTO의 영향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는 이미 미국의 WTO 탈퇴를 주장했다. 올해 6월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가 백악관 인사에게 여러 차례 WTO 탈퇴를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 중에는 소식통이 “WTO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설계한 것이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작년 무역 고문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WTO는 중국 등의 국가가 불공정한 방식을 취해 생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이는 미국을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하기 때문에 WTO는 반드시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WTO 회원국들 역시 현행 규칙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목소리는 미국보다 온화하지만 이들의 우려도 마찬가지다. 도날드 투스크(Donald Tusk)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지난달 WTO 개혁과 새로운 무역 규칙 제정을 호소했다.

4월 중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부가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 Getty Images

또한, 중국은 경제 규모를 확대한 이후 세계를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부 개도국에 수출한 ‘홍색(공산당) 이데올로기’는 미국과 유럽을 몹시 불편하게 했다. 지난달 열린 WTO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이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이라고 정의 내린 이유는 세계 무역 규칙의 점진적 자유화에 대한 요구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직접 지적했다.
WTO에 가입한 이후 중국은 줄곧 규칙을 따르지 않고 국제 시장에 맞는 시장개방, 법제화 등을 하겠다고 공언하며 세계화에 합류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WTO에 계속 간섭함으로써 많은 국가가 불만과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중국이 시장경제가 아니며 중국과 무역 거래를 할 때 많은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WTO는 이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왜냐하면 WTO의 분쟁 해결은 설득과 협상을 통해서 이뤄지며 법원이 아닌 전문가 집단으로 160개 회원국 간의 무역 분쟁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어느 회원국이 규칙을 어기면 WTO 전문가 집단은 똑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할 뿐이다.

중국은 이처럼 불완전한 규칙을 악용해 WTO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외교적 수단과 이익을 이용해 WTO 회원국 중 70여 개도국이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WTO는 160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방대한 국제기구는 효율도 낮을 뿐만 아니라 개혁 속도도 느리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WTO를 좋게 보지 않는 이유다. 그는 차라리 자신이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EU의 경제 규모를 합치면 세계 경제의 50%에 이르러 발언권과 실질적인 권력을 거머쥘 수 있으며 다른 국가의 가입을 쉽게 유도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WTO가 자발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WTO의 핵심 조항에 대한 수정은 ‘만장일치, 한 국가 한 표’ 규칙을 따라야 하며 모든 회원국이 동의를 해야만 발효된다. 만약 반대표가 하나라도 있으면 규칙을 수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은 ‘만장일치, 한 국가 한 표’ 규칙을 이용해 미국의 발언권을 축소시키고 있다. 이는 미국이 WTO를 벗어나 해결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7월 25일 오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EU집행위원장 장 클로드 융커와 백악관에서 회담을 한 뒤 공동협정을 체결해 관세장벽을 낮추고 비자동차 제품에 대해 비관세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 Samira Bouaou/에포크타임스

트럼프와 융커가 체결한 ‘쓰리 제로’ 협정은 WTO를 벗어난 단독 행위로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에 대해 “현실적인 선택”이라며 “미국이 기대하는 WTO 개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만약 수정을 한다면 실질적으로 WTO를 재구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많은 국가의 이익에 저촉될 것이며 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국제문제 전문가 탕하오(唐浩)는 “WTO의 규정은 부국이 빈국을 도와 발전시킨 뒤 WTO의 회원국으로 만들어 함께 다른 국가를 돕는 국제적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할 당시엔 개도국이었지만, 20년 동안 WTO의 허점과 빈틈을 노리며 대량의 부당한 재산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후엔 당시에 했던 약속을 이행한 적이 없으며 여전히 이익만 도모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탕하오는 트럼프가 유엔(UN)을 포함한 국제기구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여러 차례 비난하면서 “UN, WTO 등 기구가 모두 어떠한 변화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이러한 기구들을 피해 스스로 EU와 독립적인 협정을 맺는 것은 WTO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만약 미국이 일본과도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면 미국과 유럽, 일본의 제로관세 시장의 실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국가가 WTO가 아닌 ‘국가 대 국가’로 협정을 체결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WTO는 영향력을 잃는 데 그치지 않고 존립 위기까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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