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준비하나?…시진핑, 책사 왕후닝과 열흘째 행방 감춰

리윈(李韻)
2021년 04월 16일 오후 12:35 업데이트: 2021년 04월 18일 오후 3:03

중공의 막말 외교가 국제적 반발을 부른 가운데 시진핑이 또다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국요(國妖·국가적 요괴)’라고 불리는 장쩌민파 왕후닝(王滬寧) 상무위원 역시 같은 시기에 모습을 감춰 두 사람이 공개석상에서 나타나지 않은 지 열흘이 넘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라면 두 사람이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은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은 지난 2일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 등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 6명과 함께 베이징에서 나무를 심은 뒤 지난 13일까지 11일째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14일 홍콩 명보는 “청명절 연휴가 중간에 있긴 했지만, 연휴가 끝난 지 일주일이 넘었고, 베이다이허(北戴河) 휴가를 제외하고 이처럼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그동안 시진핑의 직업교육 지시나 응우옌 쑤억 푹 베트남 국가주석 선출 축하 통화, 영국 필립 공 애도 통화 등 시진핑 관련 보도는 관영매체에 심심찮게 등장했다.

하지만 시진핑 본인이 이런 지시나 전문을 전부 처리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리커창(李克強), 리잔수(栗戰書), 왕양(汪洋) 등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공개석상에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중공의 장쩌민파 상무위원이자 서기처 상무위원회 서기 왕후닝은 시진핑을 따라 줄곧 모습을 감췄다.

홍콩 언론들은 시진핑의 해외 방문을 자주 수행했던 류허(劉鶴) 부총리, 발전개혁위원회 허리펑(何立峰) 주임 등이 전부 베이징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을 들어 시진핑이 베이징을 떠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시진핑이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이 아니라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각 왕후닝이 함께 모습을 감췄다는 것은 그들이 ‘큰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는데, 이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과 제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제회의(19기 6중전회)와 관련 있을 수도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시진핑은 7월 1일 중공 창당 100년 행사에서 연설할 것이고 10월의 6중전회 결의안 역시 전례대로 입안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시진핑이 왕후닝에게 관련 문서의 초안 작성을 위한 기조를 정하도록 지시했을 수도 있다. 전체 기조는 역시 시진핑의 핵심 권위를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시진핑의 열흘이 넘는 ‘은신’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월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던 때에도 시진핑이 며칠을 ‘은신’하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같은 해 7월 시진핑은 재차 20일간 모습을 감췄다. 연말에 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이 시진핑을 따라 함께 몸을 숨긴 것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왕후닝은 그동안 장쩌민을 위해 ‘3개 대표론’을 만들어 내고, 후진타오(胡錦濤)를 위해 ‘과학적 발전관’을 세우고, 시진핑을 위해서는 ‘중국몽’, ‘시진핑 사상’, ‘시진핑 핵심’ 등을 포장해 중공 3대 지도자의 ‘정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여겨진다.

19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에 낀 왕후닝은 중공의 사상 통제와 선전을 주도해 ‘국요’, ‘중공의 대뇌’ 등으로 불린다. 외부에서는 시진핑이 왕후닝의 전폭적인 보좌 속에 19차 당대회 이후부터 당을 지키기 위해 좌회전을 가속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19년 3월 3일 정협 개막식에 참석한 시진핑, 리커창, 왕후닝(왼쪽부터) | GREG BAKER/AFP/Getty Images 연합

전문가들은 세계 정세가 이미 과거와는 달라 반공(反共)에 집단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반면, 시진핑은 여전히 왕후닝에게 오도돼 서방 민주국가에 대해 오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문제 전문가 천포쿵(陳破空)은 “왕후닝이 ‘중공 3대 왕조(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의 브레인’으로, ‘3대 왕조의 책사’라고 불리는 점을 고려하면 왕후닝의 수준이 중공의 최고 수준을 대표하지만, 정상적인 국가와 비교선상에 놓으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문명 세계의 끝자락에 있다. 왕후닝 현상은 중공이 문명 세계와 호환되지 못하고 여전히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의 한 홍얼다이(紅二代∙혁명원로 2세)는 에포크타임스에 19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의 모든 전략은 장쩌민파 출신의 왕후닝이 낸 잔꾀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시진핑이 많은 중대사를 결재하긴 하지만, 결재자가 반드시 전체의 국면을 통찰하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라서 측근 참모들의 정보와 조언에 의존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왕후닝이 시진핑의 가장 중요한 막료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시진핑의 이념은 왕후닝의 사고방식과 떼려야 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