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책임 놓고, 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갈등 양상

윤건우
2020년 02월 20일 오후 2:23 업데이트: 2020년 02월 20일 오후 2:25

신종 코로나(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싸고, 중국 지도부와 지방정부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책임론에서부터 대응방안까지 지방정부와 보건당국이 중앙정부와 다른 의견을 내거나 제각각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5일 몇몇 지역 언론에서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 가오푸(高福) 주임(센터장)이 방역실패에 따른 책임으로 기율과 법령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이 중국 온라인에 확산되면서 진위여부와 조사의 적절성에 대해 논란이 가열되자, 해당 언론들은 즉각 기사를 삭제하고 오보에 대한 사과문을 냈다.

그러나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17일 가오푸 센터장이 직접 경제신문 차이징(財經·재경)과 인터뷰에 응해 “다들 저처럼 온힘을 다해 방역에 전념해달라. 생업 등의 이유로 전념하지 못한다면 유언비어를 믿거나 유포하는 일이라도 멈춰달라”고 부탁했다.

19일 정치평론가 탕징위안은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놓고 중국 중앙정부 내 파벌간 분열 조짐이 보인다고 논평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15일 시진핑 서기가 2월3일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을 주최하며 한 발언을 전하며 폐렴 발생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시진핑 총서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 발생 이후 1월7일 정치국 상무위 회의를 열어 방역·통제 업무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또한 “1월22일 후베이성에 인민의 이동을 포괄적이고 엄격하게 통제해줄 것을 분명히 요청했다”고 했다. 22일은 우한시 봉쇄 하루 전이다.

신화통신이 시진핑 총서기 발언을 12일이 지난 시점에서 뒤늦게 보도한 것은 후베이성 공산당 장량차오 서기와 우한시 공산당 마궈창 서기가 경질된 이유에 대한 해명 차원으로 풀이된다.

시진핑 총서기가 초기부터 철저한 대응을 주문했는데, 후베이성과 우한시 최고 책임자들이 그에 잘 따르지 않아 사태를 키웠고 결국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됐다는 의미다.

지난달 우한시 봉쇄 이후 후베이성 고위관리들은 ‘신종 폐렴 발병 사실을 중앙정부에 보고했지만 정보공개를 승인해주지 않았다’며 공개석상에서 사태의 책임을 중앙정부로 돌려왔다.

저우센왕 우한시장 역시 지난달 27일 “우리 역시 감염병과 관련해 정보 공개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며 정보와 권한이 매우 제한됐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 CCTV에 출연한 저우센왕 우한시장 | CCTV 방송화면 캡처

저우센왕 우한시장은 또한 도시 폐쇄 결정 역시 자신과 마궈창 서기가 했다고 항변했다.

해외에서는 도시 봉쇄발표가 뒤늦었다는 지적이 많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뒤늦은 도시 봉쇄라도 없었으면 더 큰일났을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돼 있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서는 도시 봉쇄의 공로를 서로 다투고 있다.

정치평론가 탕징위안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도시 봉쇄를 누가 결정했는지가 후베이성 고위 관리들과 시진핑 총서기 사이의 갈등”이라고 논평했다.

탕징위안은 “중앙과 지방 사이에 갈등은 또 있다”며 “지도부에서는 후베이성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기업과 중소상인의 영업재개를 요청했지만 지방정부에서는 제각각 다른 방침을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4일 상하이 시는 다른 지역 거주민과 차량의 상하이 진입을 거부한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규정 발표 전에 진입한 모든 사람과 차량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빨리 상하이를 떠나도록 종용했다.

5일 베이징의 한 아파트 안에 ‘예방통제는 개개인의 책임’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중국기업 대다수는 인력을 농민공에 의존한다. 농민공은 호적을 지방에 둔 채 도시에 귀성해 거주하며 근로하는 빈곤층이다. 외지인에 대한 도시 진입 차단은 농민공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대부분 사업체가 인력부족으로 정상영업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이날 베이징 시에서도 중국 내 다른 지역에서 온 모든 사람에게 출근 전 14일간 자가격리할 것을 요청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이나 추방에 처해질 수 있다.

탕징위안은 “이런 규정은 지방정부가 시진핑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 가오푸 센터장은 지난 22일 발표한 연구에서 “신종 바이러스는 우한의 해산물 시장에서 팔린 박쥐로부터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조사에서 해당 시장에서는 박쥐가 거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거짓말 논란을 빚었다.

또한 가오푸 센터장을 포함한 질병예방통제센터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사람 간 전염을 이미 지난해 12월 말부터 알고 있었으나 한달 이상 감춰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