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자국 의원 사찰 혐의 중국 영사 추방…중국도 캐나다 외교관 맞추방

최창근
2023년 05월 10일 오전 7:56 업데이트: 2023년 05월 10일 오전 7:59

캐나다 정부가 자국 국회의원을 사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중국 외교관을 추방하기로 했다. 중국도 대응 조치로 자국 주재 캐나다 외교관 1인을 맞추방하기로 결정하여 외교 양국 간 외교 갈등이 격해지고 있다.

5월 8일, 캐나다 정부는 주토론토 중국총영사관 소속 직원 1인을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했다. 대상자는 자오웨이(趙巍) 총영사관 정치공보교무영사(政治新聞僑領)팀 팀장이다.

캐나다 정부는 “오랜 기간 캐나다 내정에 간섭하고 캐나다 국회의원의 중국 내 친족을 괴롭혔다.”고 자오웨이 추방 이유를 설명했다. 한 캐나다 매체는 “멍완저우(孟晚舟)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캐나다에 구금 됐을 때, 자오웨이가 캐나다 거주 중국 교민들을 동원해 멍 부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등 여러 차례 교민 활동을 조직해 중국 정부를 지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연방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성명을 발표하여 “우리는 어떠한 형태의 내정 간섭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캐나다 주재 외교관들에게 이런 행동에 관여할 경우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는 라틴어로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 혹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란 뜻으로서 외교 관계에서 ‘외교적 불청객’을 의미한다. 대사나 공사 등 외교 사절 중 특정 인물을 주재국 정부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거나 자국에 주재 중 심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페르소나 논 그라타를 선언한다.

해당 선언이 있으면 외교관의 ‘면책특권’이 사라진다. 주재국의 선언 후 파견국은 해당 인사를 본국으로 소환한다. 파견국이 이를 거부하면 주재국은 기한을 정하여 강제 퇴거 명령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 외교관 추방 조치의 발단은 지난 5월 1일, 캐나다 일간지 ‘로브앤드메일’ 보도이다. 신문은 캐나다 정보기관 보고서를 인용하여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자치구 등의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해온 캐나다 보수당 소속 마이클 청(Michael David Chong‧莊文浩) 연방 하원의원의 홍콩 친인척 정보를 수집하는 등 이들을 탄압하려 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캐나다보안정보국(CSIS)이 작성한 9쪽 분량의 보고서는 “중국 국무원 국가안전부(MSS)가 2021년 2월, 캐나다 의회에서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 등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발의한 마이클 청 하원의원을 겨냥해 ‘구체적 조처’를 취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가 추방을 결정한 자오웨이는 정보 수집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서에 적시됐다.

홍콩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마이클 청 의원은 지난 2021년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을 ‘인종학살’로 규정하자는 결의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중국의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올랐고, 결국 중국의 제재 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

중국 외교부의 5월 9일 자 성명. 자국 외교관 추방 조치에 대해 캐나다 정부에 엄중 항의하며 대응 조치로 주상하이 캐나다총영사관 영사를 추방한다고 명시했다. |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갈무리.

중국 외교부도 반격에 나섰다. 외교적 보복 조치로 제니퍼 라론드(Jennifer L. Lalonde) 주상하이 캐나다총영사관 영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하고 오는 5월 13일 이전에 중국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상호주의 원칙’을 원용하여 대응에 나선 것이다. 추방 명령을 받은 제니퍼 라론드는 정치경제홍보 담당자로 캐나다 총영사관의 핵심 인물이다.

중국 외교부는 5월 9일 자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캐나다 측의 자국 외교관 추방 조치에 강력 규탄하고 단호히 반대하며, 엄중 항의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캐나다의 비양심적 조치에 대한 상응 조치로 제니퍼 라론드 영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로 선언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제니퍼 라론드 주상하이 캐나다총영사관 영사. | HK1.

이 같은 조치를 취하기에 앞서 주캐나다 중국대사관은 대변인 명의 담화를 통해 캐나다의 조치가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 규범, 양국 간 협정을 엄중히 위반하고 중국과 캐나다 관계를 고의로 훼손하는 것이다.”라며 “강력히 규탄하고 단호히 반대하며 캐나다 측에 엄정하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의 내정 간섭 의혹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중국에 대한 노골적인 비방이자 정치적 조작이다.”라며 캐나다 측에 “낭떠러지에서 현애늑마(懸崖勒馬)하기를 권한다.”고 촉구했다.

성명에 사용된 ‘현애늑마’는 청(淸) 건륭제(乾隆帝) 때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한 기윤(紀昀)의 ‘열미초당필기(閲微草堂筆記)에서 유래한 말로 ‘말 등에서 졸다가 천길 낭떠러지에 이르러 정신 차리고 말고삐를 죄다’라는 뜻이다. 위험에 빠지고서야 정신을 차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구사하려는 적대국을 겨냥해 더 이상 나아가지 말고 스스로 접으라는 경고성 용어다. 당장은 예의주시하겠지만 마지노선을 넘어가면 무차별 보복 수단을 동원해 타격할 것이니 상대국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라는 의미를 내포했다. 중국 외교관들이 타국을 협박할 때 자주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