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법원, 중국 ‘화교사무처’ 간첩 조직으로 지정

정용진
2022년 02월 28일 오후 8:58 업데이트: 2022년 02월 28일 오후 9:00

中 교민단체 지원 조직, 통일전선공작부 소속
캐나다 법원·이민부 “간첩 조직…캐나다에 유해”

캐나다 연방법원이 중국 국적 이민 희망자 2명의 이민신청 소송(항소)을 기각했다. 중국공산당(중공) 국무원 교무판공실과 관련해 간첩 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교무판공실(화교 지원업무 사무처)이 캐나다 이익에 어긋나는 간첩 행위를 했다고 확신할 합리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캐나다 공식 기관이 중공 화교조직의 간첩 행위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이민 신청이 기각당한 2명은 중국인 부부이다. 이들은 이미 캐나다 국적을 취득한 딸을 보증인으로 내세워 ‘동반가족 추가’ 이민을 캐나다 이민부에 신청했다. 그러나 이민부는 남편이 화교사무처에 20년간 재직한 고위 간부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캐나다 매체 ‘내셔널 포스트’에 따르면, 이민부 심사 담당관은 ‘간첩 행위 등 캐나다의 이익을 해친 조직과 그 구성원의 캐나다 이민을 금지한다’는 이민법 관련 조항을 근거로 제시했으며, 중공 화교사무처가 이런 조직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중국인 부부는 이민 신청이 거부되자 연방법원에 사법적 재심을 요청했는데, 이번에 기각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이민부 결정은 문제가 없다”며 “심사 담당관이 확보한 증거에 근거할 때, 화교사무처가 간첩행위에 연루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캐나다의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전 베이징 주재 캐나다 대사관 영사이자 캐나다 싱크탱크 맥도날드-로리에 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찰스 버튼은 “화교사무처는 오랫동안 캐나다 화교사회에 영향을 행사해왔다”고 지적했다.

버튼 연구원은 “하지만 캐나다 당국이 이를 공식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번 판결은 매우 고무적이다. 좋은 선례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을 한 것은 그동안 그가 중국의 ‘우호친선’ 조직 및 ‘교민’ 조직의 간첩 행위에 대해 캐나다 정보기관과 정부, 의회에 꾸준히 제기해왔지만 정치인들이 “중국과의 교역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버튼 연구원은 “중국(중공) 화교사무처의 목표물이 된 중국계 이민자들은 이미 해외에 정착한 지 오래됐더라도 중국에 남은 친지들에게 가해질 불이익이 두려워 그들(사무처)의 요구에 따른다. 이러한 사실을 공식석상에서 언급조차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국계 이민 사회에서도 이번 판결을 반기는 이들이 있다. 토론토의 ‘중국민주연합’ 전 대표 관줘중(關卓中)은 내셔널 포스트에 “캐나다 법원이 화교사무처를 간첩 조직이라고 공식 인정했다. 이제는 이 사실을 공론화할 때가 된 것”이라고 밝혔다.

관줘중은 “캐나다 정부와 의회는 중국 교민단체의 간첩 행위를 더는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중공이 캐나다 영토 내에서 간첩 행위를 하면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국가안보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외국에 정착해 수십 년이 지났거나 귀화해 완전히 현지인이 된 인물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화교’라고 주장한다. 이는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 정착한 대만 출신 화교와는 구분된다. 화교사무처는 중공 화교사무처의 해외 조직이다.

이번 법원 판결과 그에 앞선 캐나다 이민부의 ‘화교사무처=간첩 조직’ 판단에는 아시아뉴질랜드 재단(ANZF) 제임스 지안 후아 토 선임고문의 연구가 뒷받침됐다.

화교사무처를 분석한 그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사무처는 표면적으로는 교민 지원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중공 정권의 유지와 안정을 위한 조직이다. 중공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국제사회에서 이미지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해외에 진출한 중국인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화교사무처는 각국 중국 대사관, 영사관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회 보수당 빈센트 커 의원은 화교사무처가 주최한 한 콘퍼런스에 참석했는데, 콘퍼런스 기간 내내 중국 측 참가자로부터 ‘중국몽’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했다.

화교사무처는 지난 2019년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에 합병됐다. 통일전선은 전선을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로, 더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적과 손을 잡거나, 적 내부에 내통자를 심는 등 간첩과 선전·선동, 뇌물 등을 이용한 공산당 특유의 전략전술이다.

한국에서는 ‘중국 재한교민 협회’, ‘한화(韓華) 중국화평(和平)통일촉진회(화통회)’ 가 중공 화교사무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국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화통회는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대만과 통일을 촉진하는 단체로, 2020년 10월 미 국무부에 의해 ‘외국정부 대행기관’으로 지정됐다. 순수 민간단체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기관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