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中 첩보활동 도운 전직 경찰 기소…“내정간섭 조사의 일환”

정향매
2023년 07월 28일 오전 9:55 업데이트: 2023년 07월 28일 오전 10:13

캐나다 경찰 당국이 중국 당국을 위해 첩보 활동을 벌인 혐의로 은퇴한 기마경찰관 윌리엄 마처(60)를 체포·기소했다. 

캐나다 연방경찰 조직인 왕립 캐나다 기마경찰(RCMP)은 지난 21일(이하 현지 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같은 소식을 공개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RCMP가 이끄는 통합국가보안집행팀(INSET)은 지난 2021년 가을부터 마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INSET는 특수 훈련을 받은 RCMP 요원, 연방 및 주(州)·시(市)의 법 집행 기관 직원, 국가 보안 부처 요원 등으로 구성된 팀이다. 캐나다 전역에 분포돼 있으며 소속 팀원들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 단체·개인의 범죄 활동을 추적한다. 

INSET는 조사를 통해 마처가 자신의 지식과 캐나다 내 광범위한 인맥을 이용해 중국 당국에 유리한 정보와 서비스를 수집한 정황을 포착했다. RCMP는 20일 캐나다 법이 규정한 범위를 벗어나 개인을 식별, 협박한 혐의로 마처를 체포했다. 

21일 온라인으로 밴쿠버 롱게우일 법정에 출석한 마처는 캐나다 ‘정보보안법(SIA)’ 상 ‘외국법인의 이익을 위한 준비행위’ ‘공모죄’ 두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각 혐의에 대한 최고 처벌은 징역 2년이다. 이후 25일 열린 2차 법정에서 담당 판사는 마처의 보석을 허가했다. 다만 그는 여권을 반납하고 밴쿠버에 머물면서 매주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캐나다 매체 CTV, CBC 등에 의하면 마처는 1985~2007년까지 22년간 RCMP에 몸담았다. RCMP을 떠난 후 홍콩으로 이주한 그는 2016년 EMIDR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앞서 한 인터뷰에서 “중국 당국과 중국계 기업들이 잃어버린 자산을 되찾는 것을 돕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며 자신은 ‘경제 용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청구 내용이 타당하고 합법적이며 올바른 일이면 우리는 기꺼이 일을 맡는다. (우리는) 대기업이나 정부가 자기네 자산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마처의 피소를 두고 그가 중국 당국이 주도하는 악명 높은 ‘여우사냥’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거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중국은 지난 2014년부터 이른바 ‘반(反)부패운동’의 명분으로 해외 도피 사범을 잡아들이는 ‘여우사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프로젝트 명칭을 ‘톈왕(天網)’으로 바꿨다. 해당 프로젝트에 따라 중국은 외국인 경찰, 개인 탐정, 변호사를 모집해 목표 인물을 추적하는 데 동조하도록 했다. 

스콧 맥그리거 캐나다 전 군사정보관은 26일 CTV 방송에 “마처는 중국 당국이 지정한 이른바 ‘범죄 사범’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 혐의로 기소됐을 것”이라며 “중국 측은 마처가 수집한 정보를 통해 타깃 인물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들에게 귀국하거나 재산을 반납하도록 협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여우사냥 프로젝트를 연구해 온 맥그리거는 “반(反)부패 활동은 국제법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 분야는 회색 지대”라고 평했다. 

캐나다 당국은 앞서 2016년 9월, “중국 당국과 협력해 중국이 ‘도둑맞은 자산’을 되찾아 주자”는 취지로 중국과 관련 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중국 관영매체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는 중국이 반부패운동을 전개한 이래 중국과 이러한 협정을 체결한 첫 국가다. 

중국은 당국이 수배한 범죄자의 25%가 캐나다로 도피한 것으로 추정했다. 협정에 따라 캐나다는 중국의 수사에 협조하고, 회수된 자금은 양국이 분배한다. 그러나 양국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자 기소 여부는 협상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5년 뒤 캐나다의 태도는 달라졌다. 2021년 2월, 캐나다 공공안전부는 여우사냥 프로젝트와 관련해 “중국 당국의 이른바 반부패운동은 범죄자만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캐나다 내에서 중국의 국가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조성하는 데에도 이용된다”고 파악했다. 그 해 가을, INSET는 마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캐나다 당국은 지금까지 조사된 여우사냥 관련 안건의 내역을 모두 공개해 왔지만, 마처 안건을 담당한 INSET 소속 데이비드 보도인은 마처의 여우사냥 참여 여부를 공개할지는 법원이 결정할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RCMP는 이번 안건을 두고 “외국이 캐나다에 대한 내정 간섭을 조사하는 100여 안건 가운데 하나”라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번 안건으로 인해 체포 또는 기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해당 안건 피해자의 신분은 공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