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세대 맞은 美 진보운동…‘행정국가’에서 ‘딥스테이트’로

허칭롄(何淸漣)
2022년 06월 24일 오후 1:37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0

“나는 사실 우리가 계속해서 잘못된 결정을 한다면 수십 년 안에 우리의 헌정 민주주의를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중략)…나는 우리 민주적인 형태의 정부 구조에 대해 지금처럼 걱정한 적이 없다.”

지난 16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민주당 대통령이 CBS 방송의 ‘더 레이트 레이트 쇼’에 출연해 한 말이다.

세계화에 앞장섰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적극 지원한 그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잃을까 봐 걱정하는 미국 국민들의 우려를 한 번이나마 공유한 셈이다.

이에 앞서 15일 야후 뉴스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민주당원 55%, 공화당원 53%가 ‘미국이 언젠가는 민주국가가 아닐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클린턴이 말하는 ‘민주주의 형태의 정부 구조’는?

2020년 이전까지 미국이 표방한 미국의 정치 체제는 개인의 자유(특히 표현의 자유)와 법치에 기반한 헌정 민주주의였지만 최근 몇 년간 이 정치 체제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더힐’은 CBS 방송 진행자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매우 암울한 몇 년 동안을 어떻게 버텨야 하느냐”고 물으면서 이에 대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답변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의미로 확대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진행자의 말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명실상부한 약세 대통령이었기에 그의 ‘파괴력’은 제한적이었다. 행정기관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가 백악관을 떠난 뒤 행정시스템 전체가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한 지 1년 반밖에 안 됐지만 그는 미국과 국제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부채가 10조5000억 달러나 늘었고 △1981년 이래 최고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성소수자(LGBTQI) ‘무지개 문화’가 미국의 주류 가치관이 됐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항해 대리 전쟁에 나서면서 냉전 이후 이어온 단극 세계가 다극 세계로 대체되고 있다.

따라서 클린턴이 우려하는 것은 트럼프가 아니라 그의 민주당 후임인 바이든이 ‘민주주의 형태의 정부 구조’에 미치는 영향일 것이다.

클린턴이 민주주의 형태의 정부 구조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미국 정부가 이미 민의에서 벗어나 전문직 관료들이 국가를 관리하는 ‘행정국가(administrative state)’가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이 행정국가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이후 꾸준히 지적해온 ‘딥스테이트(Deep State·정부 내부의 정부,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 정책 결정집단)’이다.

조나 골드버그(Jonah Goldberg)는 2018년 발간한 ‘서방의 자살(Suicide of the West)’이란 책에서 행정국가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첫 임기가 끝날 무렵 탄생한 후 100년을 거치면서 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 존재가 됐다고 지적했다.

조나 골드버그(Jonah Goldberg)가 2018년 발간한 ‘서방의 자살(Suicide of the West)’ 책 표지. |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진보주의 사조, 19세기 독일에서 기원

골드버그는 이 책에서 미국의 진보주의 사조는 일찍이 19세기에 시작됐다고 했다.

당시 새로운 학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미국의 사회학자, 철학자, 경제학자들은 독일에서 대학을 다녔거나 독일에 유학한 스승에게서 배웠다. 당시 독일에서는 마르크스, 헤겔, 헤르더(Herder)의 사상이 만연했다. 이들 사상가는 독일의 두 번째 르네상스, 즉 독일의 신흥 사회과학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의 실증주의도 미국 대학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콩트가 제시한 실증주의를 믿고 인류 사회가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3단계인 ‘실증적(과학적)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진보적이고 현명한 전문가들이 인류를 완벽한 경지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본질적으로 집단주의로 갈 수밖에 없었고, 개인주의는 근본적으로 ‘서구 세계가 앓고 있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대의 진보주의 사조의 리더로서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바로 토머스 우드로 윌슨(1856년~1924년) 미국 28대 대통령이다. 그는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진보운동을 본 궤도에 올려 놓은 핵심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프린스턴대 총장을 지냈고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철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그가 주장한 이념은 후세에 ‘윌슨주의’로 불렸다. 윌슨은 미국에 두 가지 중요한 정치적 유산을 남겼다.

대내적으로는 ‘행정국가(administrative state)’ 개념을 제시했다.

윌슨은 1880년대 “현명한 정치인이 다스리는 가장 전제적인 국가는 민심에 현혹된 정치인이 다루는 가장 자유로운 국가보다 낫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치와 행정을 분리해 국민들이 투표로 결정해서는 안 될 일을 너무 많이 투표로 결정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전문가로 구성된 관료들이 국가 행정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집안일을 관리하는 사람이 직접 요리하기보다는 요리사를 믿고 맡겨야 하는 것처럼, 이른바 자치라는 것은 국민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자신이 주장을 합리화했다.

둘째, 그는 “정부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고, 공공 여론이 일부 일은 통제할 수 있어도 다른 일에는 간섭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정부는 행정상의 유연성과 재량권을 가져야 한다. 조직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낡은 관념을 사수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것이 행정국가다. 행정국가를 세운 것을 ‘미국의 2차 혁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윌슨 대통령 때 세워진 행정국가는 결국 유권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방대한 공무원 시스템을 형성했다. 이 시스템의 상위 관료들은 이 나라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어 그들이야말로 미국 정치의 주인이다. 그들은 공무원 노조의 보호를 받고 있어 함부로 해고할 수도 없다.

행정국가는 과거에는 통제형 국가 또는 ‘네 번째 정부기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수많은 관료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규범으로 구성된, 헌정체제에서 작동하는 복잡한 네트워크로부터 독립된, 빛이 비치지 않고 민주적으로 감독할 수 없는 ‘평행정부’가 됐다. 가장 분명한 것은 행정국가의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사법체계에 의해 규범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행정국가를 수호하는 사람들과 진보파들은 책임을 추궁할 수 없는 ‘방해받지 않는’ 권력이 있어야 가장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2016년부터 비난받기 시작한 ‘딥스테이트(Deep State)’는 행정국가가 극단화된 형태이다.

대외 정책에서 윌슨 대통령은 폐쇄주의에 반대하면서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폴란드와 같은 약소민족이 ‘민족자결 원칙’ 아래 민족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이후 미국 외교정책 이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상주의자들은 이를 모방했지만 현실주의자들은 이를 배척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주의는 미국 외교정책의 주류가 됐다. 미국은 1950년대 이후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화평연변(和平演變)’ 전략을 시행했고, 소련 붕괴 이후 화평연변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보급하는 ‘색깔혁명’으로,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성소수자(LGBTQI) 인권’ 등 미국의 진보주의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이념으로 변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당시의 진보주의자들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뉴턴적’ 헌법적 질서를 승자독식의 ‘다윈주의적’ 패러다임으로 대체하려 했다. 그들은 정권을 현명한 소수의 ‘천사들’, 즉 사회과학자나 행정관료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국민(We People)’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우월한 통찰력과 윌슨이 말하는 소위 ‘전문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독일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깊이 받은 미국의 각 학파는 여러 세대를 이어오면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각별히 사랑했다. 결국 그들은 1960년대부터 시작한 ‘제도권 문화 침투를 통한 긴 행진’을 통해 미국 대학, 연구소, 언론을 장악함으로써 미국 대학 시스템을 형형색색의 신마르크스주의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범한 이래 ‘워싱턴의 늪(Washington Swamp·기득권 세력)’을 걷어내고 딥스테이트(행정국가)를 척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딥스테이트’라는 표현이 일반에 알려졌다. 그러나 ‘딥스테이트’가 사실 ‘행정정부’에서 출발해 발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의 1세대 진보주의의 핵심 인물인 윌슨 대통령의 대내외 정책이 시행된 이후 미국은 사실상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고립주의 원칙을 버리고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반세기 동안의 세계 부침을 주도했다.

그러나 좌파는 ‘태생적인 고질병’을 앓고 있다. 모든 진보는 자신들이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역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윌슨 대통령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1930년 프린스턴대학교는 공공국제정책대학원(Princeton School of Public and International Affairs)을 설립했다. 1948년 13대 총장을 지냈고 제28대 대통령을 지낸 우드로 윌슨의 이름을 따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문제 스쿨’로 이름을 바꾸었다.

2020년 6월 ‘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비롯한 미국식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시위자들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국가(國歌) 작곡가의 동상을 훼손하고 온갖 방식으로 모욕했다.

프린스턴대 이사회는 진보주의 교사들의 집단적인 압력하에 투표를 통해 교내 명칭에서 우드로 윌슨의 이름을 삭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문제 스쿨’은 ‘프린스턴 공공국제문제 스쿨’로 변경됐다. 그가 인종차별 정책을 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학교나 대학 명칭에 넣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나 윌슨 대통령은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보다는 운이 훨씬 좋은 셈이다. BLM 시위대는 제퍼슨 대통령의 동상을 쓰러뜨리고 온갖 방식으로 모욕했기 때문이다.

골드버그가 분석한 ‘행정국가’는 바로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청소하겠다”고 선언한 ‘워싱턴의 늪’ 딥스테이트(Deep State)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트럼프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트럼프가 자주 쓰는 이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라이노(RINO·무늬만 공화당원인 사람, 내부의 적)’임을 인정했다. 그는 글로벌리즘(세계화)에 찬성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의 주장을 ‘부족주의’라고 폄하했다.

골드버그의 책 ‘서방의 자살’이 책은 2018년 출간됐고, 미국 정치의 병폐는 2020년 5월 BLM 운동 이후에 집중 폭발했다. 만약 그가 BLM 운동이 폭발한 이후에 이 책을 썼다면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형성된 딥스테이트에 대해 더 심도 있게 해부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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