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진핑을 위기에 빠뜨리는 4大 ‘함정’

왕요췬(王友群)
2021년 02월 27일 오전 9:59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8

내년은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가 개최되는 해이고, 여기서 시진핑이 3연임을 할 수 있을지가 판가름 난다. 따라서 시진핑으로서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시진핑은 지난 1월 22일 중앙기율검사회의 5차 전체회의에서 부패는 중국 공산당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고, 반부패는 “질 수도 없고 져서도 안 되는 정치투쟁”이라고 했다. 중공 관영 신화통신은 1월 23일 발표한 글에서 “정치 부패는 가장 큰 부패”라며 “일부 부패분자들은 이익집단을 결성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려 한다”고 했다.

시진핑은 2013년 초부터 반부패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2017년 10월 공산당 제19차 당대회에서 “반부패 캠페인의 압도적 태세가 이미 형성됐다”고 했다. 그는 2018년 12월 13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부패와의 투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2021년 1월에 와서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신화통신은 누군가가 당과 국가의 군력을 탈취하려 한다고까지 했다.

중국 공산당의 부패 척결은 근본적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중국 공산당 당·정·군(黨政軍) 고위층에서 가장 부패한 자들의 우두머리인 장쩌민, 쩡충훙이 여전히 법망에서 벗어나 있는 데다 그  ‘큰 나무’에 기대 사는 ‘원숭이’들이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쩌민, 쩡칭훙을 필두로 하는 ‘딥스테이트’, ‘그림자 정부’, ‘베이징의 늪’이 시진핑의 가장 큰 ‘악몽’이 됐다. 지금까지 그들은 최소 4개의 큰 함정을 파놓고 시진핑이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1. 선전선동으로 시진핑 띄우기

시진핑은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당 최고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특별한 치적이 없는 평범한 중공 관료였다. 당시 중국 공산당 훙얼다이로는 중공 원로 보이보(薄一波)의 아들 보시라이(薄熙來)와 중공 원로 시중쉰(習仲勳)의 아들 시진핑 등 2명이 있었다. 이 두 사람 중 보시라이는 대단히 건방지고 기세등등했고, 시진핑은 겉으로는 무던하고 성실하고 조용해 보였다. 중공 원로들은 앞뒤를 재다가 시진핑을 선택했다.

시진핑은 집권한 후 자신의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처럼 허수아비가 돼 장쩌민, 쩡칭훙을 필두로 하는 ‘딥스테이트’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장쩌민, 쩡칭훙으로부터 최고 권력을 빼앗기 위해 반부패 캠페인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시진핑은 ‘머리 석 자(尺) 위에 신명(神明)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도움을 얻은 듯했다. 그는 ‘발걸음을 떼기 어려운 상황’에서 ‘양군의 대결이 교착상태를 보였고’ 결국은 시진핑이 우위를 차지했다. 그는 5년간 부성(部省)급 이상 고위 관리 440명을 척결했고, 한때 화살을 장쩌민과 쩡칭훙에게 겨누었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대세가 좋지 않자 한발 물러나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과 타협했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시진핑 핵심’의 지위를 인정해주고, 시진핑은 장쩌민과 쩡칭훙의 부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장쩌민과 쩡칭훙은 암암리에 안팎에 진을 치고 이곳저곳에 함정을 파놓았다. 그중 하나는 선전선동을 주관하는 측근을 시켜 그의 공덕을 칭송하고 극도로 띄우는 것이었다.

중국은 예부터 ‘띄워서 죽인다(捧殺·봉살)’는 말이 있다. 후한시대 응소(應劭)가 저술한 풍속통(風俗通)에 이와 관련한 예가 있다. 1919년 5월 9일, 차이위안페이(蔡元培)는 베이징대학 학장을 사임하면서 이 전고(典故)를 인용해 “당신의 말을 죽인 자는 바로 당신 옆에 서서 당신 말을 칭찬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시진핑을 봉살하는 사람은 선전선동을 주관했던 18기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류윈산(劉雲山)과 지금도 선전선동을 주관하는 19기 정치국 상무위원 왕후닝(王滬寧)이다. 이들은 모두 장쩌민과 쩡칭훙의 측근이다.

2. 헌법을 개정해 국가주석 임기 제한 철폐하기

2018년 3월 11일, 중국 공산당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 주석의 임기를 ‘2기 10년’으로 정한 헌법 조항을 삭제했다. 이 조치로 국내외에서 큰 논란이 일었고 지금까지도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진핑이 이 같은 조치를 인정한 것은 부패 척결로 인해 너무 많은 적을 만들어 실각한 후 보복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헌법을 개정하면 종신 집권을 할 수 있고, 나아가 그와 가족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충족되기 어렵고 실질적인 의미도 없다. 오히려 비난만 쏟아졌을 뿐이다.

첫째, 덩샤오핑이 확립한 ‘지도간부 종신제 폐지’ 규칙을 깼다. 1982년 중국 공산당 헌법은 국가 주석을 “연속 2기 이상 재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7년까지 이 규정은 이미 35년간 시행됐다. 이 규정은 덩샤오핑의 중대한 치적으로 여겨진다. 덩샤오핑에서부터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종신 재직한 사람은 없다.

둘째, 중공중앙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은 임기 제한이 없다. 시진핑은 국가주석이 아니더라도 중공중앙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을 계속 연임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주석 종신제를 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셋째, 중국 공산당 국가주석은 실권이 별로 없는 의례적인 직책이다. 당시 류사오치(劉少奇)는 중공 국가주석이었지만 마오쩌둥은 그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당시 국방부장인 린뱌오(林彪)가 국가주석직을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하자 마오쩌둥은 결연히 반대했다. 린뱌오는 실각한 후 이 제안이 그에게 덮어 씌워진 “당과 국가의 정권을 찬탈하려 한다”는 죄증 중 하나가 됐다. 따라서 중공으로서는 국가주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다.

넷째, 중국 공산당은 “총대에서 정권이 나온다”는 말을 맹신한다. 그래서 군권을 장악하는 자가 진정한 ‘1인자’이다. 1992년 봄, 덩샤오핑은 ‘남순(南巡)’ 강화를 발표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중국 공산당 당원이었을 뿐 아무런 직무를 맡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이자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인 장쩌민은 반드시 덩샤오핑의 말을 들어야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덩샤오핑은 그를 내쫓을 수 있었다. 이에 앞서 덩샤오핑은 이미 중공중앙 주석, 국무원 총리, 중앙군사위 주석인 화궈펑과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字陽) 등 2기 중앙 당서기를 축출했다.

후진타오는 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을 지냈지만 장쩌민의 말을 들어야 했다. 군권을 장쩌민 측근이 장악했기 때문에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지 축출할 수 있었다.

2018년 개헌 이후 시진핑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신제 폐지’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시진핑으로서는 헌법을 개정하고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폐지한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조치였다.

이 아이디어는 누가 냈을까? 아마도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일 것이다. 2017년 9월 29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개헌 소조를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조장은 장더장(張德江) 당시 전인대 위원장이 맡고, 부조장은 왕후닝 당시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이 맡았다. 장더장은 같은 해 10월의 제19차 당대회에서 퇴임하기 때문에 이름만 올려놓은 것이고, 리잔수는 당시 시진핑의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사무적인 업무가 많았다. 그래서 이 소조는 주로 왕후닝이 운영했을 것이다.

왕후닝은 장쩌민과 쩡칭훙이 시진핑 곁에 심어놓은 가장 중요한 측근으로,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등을 섬기며 ‘삼조국사(三朝國師)’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는 중공 최고의 ‘브레인’이며, 그의 가장 중요한 직책은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를 위해 책략을 세우는 것이다.

황후닝은 개헌을 담당한 기회를 살려 시진핑에게 이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얼핏 보면 시진핑을 위한 것으로 보이고 또 시진핑의 마음에 들지만 사실은 매우 음험하다.

3. 시진핑에게 모든 일에 관여하게 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게 하기

시진핑은 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당·정·군의 최고 권력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시진핑은 중공중앙 전면심화개혁위원회 주임, 중앙사이버안전과 정보화위원회 주임, 중앙재경위원회 주임, 중앙외사위원회 주임, 중앙 전면의법치국위원회 주임, 중앙 국가안전위원회 주석, 중앙 대 대만공작영도소조 조장, 중앙군사위원회 국방군대개혁 심화영도소조 조장,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작전지휘센터 총지휘 등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한 외신은 “시진핑의 직함이 열 개가 넘는데도 또 늘어나고 있어 그를 ‘만능주석’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시진핑이 이렇게 많은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진핑이 모든 일을 몸소 실천하고 힘을 다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인가? 아니면 마음을 놓지 못해서인가?

미국 프린스턴대 청샤오눙(程曉農) 박사는 “시진핑이 이렇게 많은 직책을 짊어진다는 것은 사실 매우 피곤한 일”이라며 “그는 어쩔 수 없이 떠맡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힘이 되고 신뢰할 수 있는 자기 사람이 없다. 정치국 상무위원 몇 명은 모두 믿을 수 없다. 그가 하지 않으면 엉망이 돼버린다.

나는 이 분석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진핑은 집권 후 첫 5년간 ‘소조치국(小組治國)’을 통해 장쩌민과 쩡칭훙의 측근들 수중에 흩어져 있던 권력을 자신의 손에 집중시켜 큰일을 해냈다.

중공 제19차 당대회 때는 개인의 위상과 권세가 최고조에 달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큰 것을 잡고 작은 것은 놓아주며, 시간과 에너지를 방향성·전체성·장기성이 있는, 근본적이고 중대한 문제에 투입해 전략을 수립하고, 인재를 잘 등용해 실행해야 한다. 따라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가급적 다른 직무를 적게 겸하거나 겸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이 겸한 직무는 갈수록 많아져 대권을 독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일에 지쳐서 중미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고,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가 파괴됐고, 일국양제로 대만을 통일하는 것은 물거품이 됐다. 민원은 들끓고 위기가 곳곳에 도사리게 됐다.

시진핑에게 모든 것을 관리하게 하고, 하루 종일 숨 돌릴 새 없게 만들어 큰일을 생각할 시간도, 여력도 없게 만들고 모든 책임을 시진핑에게 돌린다. 이것은 왕후닝 등이 시진핑을 몰아넣기 위해 파놓은 또 하나의 큰 함정일 것이다.

4. 신진핑 신변에 측근 심어놓기

장쩌민과 쩡칭훙은 중공 딥스테이트의 총두목이다. 중앙에서 지방까지, 국내에서 해외에까지 곳곳에 그들의 심복을 심어 놓았다.

19기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왕후닝·한정·자오러지는 모두 장(江)·쩡(曾)의 사람이다. 리커창 총리는 후진타오가 발탁한 공청단파(團派) 인물이다. 왕후닝은 그가 장악한 선전기구를 이용해 끊임없이 시진핑과 리커창 사이에서 불화를 조장하고 이간질하는 역할을 했다. 왕양도 공청단파로 분류된다.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시진핑의 진정한 측근은 리잔수뿐이다.

‘제8 상무위원’으로 불리는 왕치산(王岐山) 중공 국가부주석은 반부패 캠페인에서 시진핑을 보조해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국내외의 장·쩡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시진핑과 왕치산 사이를 이간질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이 집권하기 전, 군권은 오랫동안 장쩌민과 그의 측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장·쩡의 두 측근이었던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와 궈보슝(郭伯雄)은 관직을 팔아 횡재했다. 이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궈보슝의 아들 궈정강(郭正鋼)은 “전군 간부의 절반 이상이 우리가 승진시켰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시진핑은 집권한 지 8년여 동안 베이징 위수구(衛戍區) 군정 고위관료 7명과 사령관 4명, 정치위원 3명을 교체했다. 왜 그랬을까? 아무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공 당국은 지난 10일 열린 신년단배식에 참석한 고위 관리들을 감시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시진핑 주변에 배치했다. 시진핑이 불안에 휩싸여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안다.

중공 내부 정적 간 ‘질 수 없는’ 전쟁의 막이 올랐다

2021년은 중공 내부의 시진핑 반대 세력이 시진핑을 끌어내리는 마지막 기회다.

미국 정국의 격변, 특히 미국 딥스테이트는 온 힘을 쏟아부어 4년 만에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쫓아냈다. 이는 중공의 딥스테이트를 크게 고무했다.

2021년에도 시진핑 반대 세력은 ‘개인숭배’와 ‘헌법 개정’, ‘대권 독점’ 등을 시진핑을 공격하는 구실로 삼고 시진핑 좌우, 안팎에 심어둔 장·쩡의 측근을 앞세워 시진핑을 끌어내리려 할 것이고, 시진핑은 반부패를 명분으로 계속 정적을 숙청할 것이다.

시진핑은 반부패는 “질 수도 없고 져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시진핑이 이미 위험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위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중공은 장·쩡의 주도하에 이미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당이 됐지만 시진핑은 여전히 당의 현상 유지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상의 4대 함정은 모두 장·쩡 및 그들의 측근들이 시진핑의 ‘당을 보전’하려는 마음을 이용해 파놓은 것이다. 만약 시진핑이 계속 당을 보전하려고 애쓴다면 반드시 큰 함정에 빠져 결국은 자멸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