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빅 브라더 시대, 전체주의로 가는 공적 검열권

오세라비 /작가·미래대안행동 공동대표
2021년 12월 27일 오후 6:13 업데이트: 2021년 12월 27일 오후 6:13

N번방 사건은 외국 기업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발생…그런데 왜 카톡 사찰?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의 책 <1984>에 나오는 대화다. 사생활에 대한 검열권 행사와 통제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12월10일부터 시행된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불법촬영물 유포 및 유통 방지를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따라서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네이버, 카카오와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불법 촬영물 필터링이 적용되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들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단체채팅방도 마찬가지로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을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할 의무가 있다.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되자 카카오톡 등 평소대로라면 늘 이용하는 인터넷 메신저 사용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필자가 이용하는 카톡방이 100여 개 되는데 종전과는 달리 편하게 글과 동영상을 올리는 이용자들이 줄어 상당히 조용한 편이다. 사적 대화 카톡방은 적용 대상이 아니라지만 자신도 모르게 접속을 줄이고 자기검열을 하는 현상이 은연중 작용하는 듯하다.

그런데 N번방 사건에 대해 명확히 짚어야 할 쟁점은 여러 곳이다. 이 사건은 외국 기업 서비스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일어났다. 2018년 하반기 무렵부터 2020년 3월까지 발생한 사건으로,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물이 법망을 피해 유통된 사건이다. 국내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유포된 것이 아니다. 텔레그램은 첫째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으며, 둘째 서버 및 본사 소재가 불분명하다. 또한 텔레그램은 공개 서비스가 아닌 철저히 사적 대화방 구조로 N번방 사건도 애초 이런 점을 이용해 불법 음란물이 유통됐다.

카카오톡 사찰, 국가 통제사회 도래인가

N번방 방지법은 20대 국회 임기 한 달을 남겨두고 지난해 4월29일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N번방 방지법은 충분한 논의 없이 진행된 졸속 입법과 다름없었다. 국회 법사위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한 달여 남겨둔 3월 초에야 심사에 돌입해 처리됐던 것이다. 당시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긴급 성명서에서 “IT산업의 현실을 전혀 무시하고 이른바 ‘N번방’ 재발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졸속처리가 예상되는 이들 법안들은 이용자의 통신비밀의 자유 침해, 국내 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 고 지적했다. N번방 재발 방지를 내세워 공청회 등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21대 국회로 넘기라는 여론이 비등했던 것이다.

N번방 방지법 시행은 무엇보다 헌법 18조의 통신 비밀 보장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앞서 말했듯 애초 텔레그램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텔레그램이 운영되는 한 디지털 성범죄에 실질적 규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N번방 방지법 취지와 성범죄 단속과 처벌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를 법으로 규제하는 방법에 있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성범죄 방지를 이유로 대다수 개인의 정보·기본권 침해가 심각하게 대두된다. 이용자들이 잠재적 성범죄자가 아님에도 사전·사적 검열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용자들의 반발도 대부분 여기에서 기인한다. N번방 방지법은 일평균 이용자 10만 명 이상, 연 매출 10억 원 이상의 부가통신 사업자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서비스 업체에서 디지털 성범죄물이 유통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은가. 네이버, 카카오 등에서 이미 기술적으로 필터링이 되고 있다. 예컨대 포털 사이트의 악성 댓글만 해도 지금은 상당히 감소 추세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상에서 하루 수만 건씩 등록되는 댓글을 IT 기술을 활용해 악성댓글을 자동 분류하는 방안이 도입돼 운영하고 있다. 인공지능 검색 필터링을 사용해 욕설 등 특정 혐오 단어나 문장을 특정 기호로 자동 변환하는 기술로,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2012년부터, 카카오는 2017년부터 도입해 실시 중이다. 불법 촬영물 또한 포털 사업자들은 기술적으로 걸러내고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와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불법 촬영물 필터링이 적용된다면 모든 이용자의 게시물 및 콘텐츠가 해당된다. 불법 음란물을 탐지하기 위해서는 개인 대화, 채팅방을 모두 검열해야 한다. 이메일· 블로그, 공개 및 비공개 카페, 밴드 등 전체를 검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N번방 방지법도 졸속 입법 처리된 마당에 필터링 기술은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필터링 기술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개발돼 N번방 방지법 시행을 불과 3개월가량 앞두고 개발됐다. 충분한 기술적 검토와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되는 것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진선미 전 여성가족부 장관의 오픈채팅방 단속 논란을 기억하자

카카오톡 검열 논란은 N번방 방지법 시행 이전에도 있었다. 2019년 4월 2일 진선미 당시 여가부 장관이 오픈채팅방 단속을 시작한 데 따른 논란이었다. 당시 여가부는 ‘오픈채팅방 내 불법촬영물 유포 점검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지역 경찰관서와 협업해 합동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법적·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가부의 오픈채팅방 단속은 즉각 논란에 휩싸였다. 카카오톡 검열, 개인 사생활 침해, 통신 비밀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배는 규제 만능의 ‘통제 국가’로 가는 길이라는 격한 비난을 받았다. 결국 동월 24일 여가부는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오픈채팅방 단속 계획을 철회했다. 하지만 지난 10일부터 시행된 N번방 사건은 결국 여가부의 숙원 사업 한 가지를 해결한 셈이 됐다.

청소년 N번방 접근 경험 통계 조작 사건

여가부를 비롯해 여성계는 N번방 사건이 터지자 학교 및 공기관 등의 디지털성범죄예방교육을 더욱 확대했다. 그리고 청소년 대상 ‘N번방 끝장내기 캠페인’을 실시하며 설문조사를 벌였다. 여기서 대전 서부청소년성문화센터 전 센터장이 ‘N번방 끝장내기 캠페인’ 통계조작을 지시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대전 서부청소년성문화센터 전 센터장은 2020년 4~5월까지 청소년 1,000명 대상 ‘N번방 끝장내기 캠페인’ 설문조사를 센터 팀장과 팀원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설문조사 참여자가 현저히 저조하자 전 센터장은 팀장과 팀원에게 청소년인 척 응답하라고 조작 지시를 3차례 했다. 팀장과 팀원은 센터장의 지시가 불법이라며 따르지 않았으나, 센터장은 6월 3일까지 결과보고서를 발표해야 한다며 설문 조작을 진행하라 압박했다. 팀장과 팀원은 견디다 못해 청소년(초중고) 응답자수를 늘려 조작된 통계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중앙일보 관련기사).

조작된 설문조사 결과는 대전 지역 언론 총 10곳에 그대로 보도됐다. 이에 대전 지역 청소년들의 N번방 접근 경험 12%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전 센터장은 이러한 결과를 그대로 언론 보도 자료로 배포했다. 청소년성문화센터는 여가부의 지원금을 받고 운영지침을 따르는 기관으로, 전국에 58개소가 운영 중이다. 센터장이 통계 조작을 지시한 것은 무고한 청소년들을 N번방 접근자라는 잠재적 성범죄자로 만든 중대한 범죄 행위였다. 결국 불법 통계 조작 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대전 서부청소년성문화센터 팀장과 팀원은 변호사를 선임해 전 센터장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렇다면 통계 조작이 대전에서만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N번방 사건을 빌미로 밀어붙인 N번방 방지법에는 이러한 불법 통계 조작 사건은 간과한 케이스다.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억압받는 자유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역설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이 전면 통제받는 시대로 향하고 있다. 이미 빅테크 기업이라 불리는 트위터·페이스북·구글·유튜브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르지 않을 경우 검열·삭제·차단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전 지구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는 QR코드를 찍어야 음식점·카페·일반상점 출입이 가능한 통제·감시 사회를 더욱 강화했다.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국가 차원의 사적검열과 통제사회가 도래했다는 두려움이 든다.

여기에다 N번방 방지법까지 시행되면서 표현의 자유는 탄압받고 자유는 억압당할 소지가 크다. 정보통신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대다수는 인터넷으로 연락과 정보교환을 하며 학습을 한다. 물론 정보통신 사회 특성상 최선의 해결책은 없으며,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작동한다. 그럼에도 가공할 속도로 발전하는 AI 알고리즘이 인간의 삶을 인도하고 정신을 통제하는 세상이 돼 가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빅 브라더에 저항하던 윈스턴 스미스가 철저히 개조당해 마지막에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는 말을 남기고 죽임을 당하듯 결국에는 세뇌와 지배를 당하고 말 것인가.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