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北 극초음속 미사일의 군사적·국제정치적 함의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2년 01월 17일 오후 6:23 업데이트: 2022년 01월 17일 오후 6:23

임인년 벽두에 평양 정권이 세계와 대한민국을 향해 거친 북한식 신년인사를 보냈다. 1월 5일과 11일 두 차례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포함해 네 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한 것인데, 이것들이 가지는 기술적·군사적·국제정치적 함의가 만만치 않다.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국 합참은 말을 아끼면서 애써 과소평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북한의 극초음속 기술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경제 빈국 북한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극초음속 발사체 보유국이 된다는 건 놀라운 일이며, 북한의 첨단 미사일에 의해 대한민국의 하늘이 속수무책으로 뚫리게 됐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비전문가들이 막연히 추정해온 것보다는 더 높은 수준에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있을 때마다 언론들은 “대내적 선전효과를 노리면서 동시에 향후 대미(對美) 핵협상에 대비해 고지를 선점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을 반복해왔지만, 이는 미사일 발사를 정치적 행동으로만 보는 단순한 분석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룬 기술적 성과는 평양 정권이 가진 강력한 핵동기(核動機)와 무수한 시험발사를 통해 축적된 시행착오와 진전에서 비롯된다. 북한은 6·25 전쟁 직후부터 핵을 통해 한국을 군사적·심리적으로 압도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한반도로부터 이탈시킴으로써 주체통일의 여건을 완성하겠다는 강한 동기를 가지고 핵무력 사업에 착수했으며, 그 과정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와 유엔의 제재를 감수하면서 줄기차게 시험발사를 강행해왔다.

1984년에 시작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김일성 주석 시대(1984~1994)에 15회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1994~2011)에 16회가 실시됐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2012~ )이 집권한 후에는 세 차례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포함해 무려 133회나 실시됐다.

그 때문에 최근 극초음속미사일 발사를 보면서 짧은 간격인데도 속도와 사거리가 급속히 늘어나는 것이 놀랍다는 입장을 보인 일부 언론들의 반응은 지난 수십년 동안 북한이 축적해온 기술을 간과한 것이다. 지금 세계가 보고 있는 것은 북한이 과거 오랫동안 누적된 성과들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가 지닌 최대의 군사적 함의는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미사일방어 체계가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군은 미국산 ‘PAC’ 미사일과 국산 ‘철매’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그리고 주한미군은 ‘사드(THAAD)’를 기반으로 하는 방어체계를 운용 중인데, 공히 탄도미사일 방어체계(BMD)로서 숫자가 충분한 것도 아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이런 방어체계를 돌파하는 발사체들을 개발해왔다. 2016년 러시아가 유럽에 배치해 미국이 중거리핵폐기조약(IMF)을 탈퇴하는 빌미가 됐던 이스칸데르미사일(SS-26)의 복사판인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는 변칙기동 탄도미사일이어서 요격이 어렵다. 통상적인 탄도미사일도 잠수함에서 발사되면 방어자는 날아오는 방향과 거리를 조기에 파악할 수 없어 요격이 쉽지 않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등장한 것이다. 극초음속 무기에는 항공기처럼 비행하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HCM)과 탄도미사일에 실려 발사된 후 공중에서 분리돼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극초음속 활공체(HCV)가 있다. 모두가 최종 단계에서 좌우고저로 방향을 바꾸면서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탄도미사일 요격용 방어체계로는 막아내기 어렵다. 특히,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낮은 고도로 발사하면 지구 곡면 때문에 먼 거리에 배치된 레이더로는 상당 시간 동안 발사 사실조차 포착하기 어렵다.

현재 극초음속 발사체를 실전 배치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뿐이다. 러시아는 극초음속 대륙간탄도탄(ICBM) ‘아방가드(Avangard)’와 공대지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킨잘(Khinzal)’을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배치한 이후 현재는 해상발사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치르콘(Zorcon)’의 실전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중국은 2019년에 극초음속 활공체 탄두를 장착한 ‘DF-17(WU-14)’를 선보인 이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금년 중에 독일에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다크 이글(Dark Eagle)’을 배치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극초음속 무기를 연구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 앞서 극초음속 무기의 실전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며, 북한의 방어돌파용 미사일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하늘이 속절없이 뚫리게 됐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한미군의 방어체계 무력화는 핵비대칭 상태에 있는 한반도의 군사적 불균형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남북관계를 더욱 왜곡해 한국은 더욱 심하게 북한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보면,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는 그동안 한국 정부가 공을 들여온 종전선언을 사실상 포기하고 미국을 향해 존재감을 과시한 정치적 행동이기도 하다. 종전선언은 한미동맹, 주한미군, 유엔사 등의 존재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서 미국이 한반도로부터 이탈하기를 원하는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하는 것임에도 그동안 북한은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 노력에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여왔다.

이것은 북한이 단순한 종전의 선언을 넘어 더 많은 유리점을 담아내는 합의를 원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더 핵심적인 이유는 미국이 종전선언에 합의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2021년 12월 워싱턴의 허드슨연구소(Hudson Institute)에서 개최된 한미안보연구회 주최 국제회의 참석 시 필자가 만난 미국 전문가들의 견해도 그랬다.

예를 들어, 헤리티지재단의 클링너(Bruce Klingner) 박사는 미국도 종전선언이 한국 내 좌파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동맹해체, 주한미군 철수, 유엔사 폐지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워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동맹관리 차원에서 한국 정부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종전선언 협의에 응해주고 있을 뿐 종전선언에 합의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견해를 피력했었다.

이는 한국의 종전선언 관련 한·미 간 최종합의가 임박했다는 일부 외교관들과 언론들의 주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며, 필자 역시 클링너 박사와 동일한 판단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는 평양 정권도 미국의 기류를 파악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이로써 문재인 정부의 ‘임기내 종전선언 성사’ 목표는 일단 좌절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종합컨대, 북한이 ‘게임 체인저’급 강대국형 핵병기들을 개발하는 것은 단순한 핵보유를 넘어 핵강국을 향한 강력한 핵야망을 드러낸 것이며, 이는 유화나 압박정책 또는 대화나 외교로는 북핵을 폐기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적어도 당분간은 북핵과의 ‘불편한 동거’가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공격력과 응징력을 통해 북핵 위협을 상쇄·억제함으로써 국가의 생존과 국민의 안정을 수호하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동맹을 통한 확고한 연합 대비와 우방국들과의 안보 공조는 필수다.

그에 앞서, 미사일방어체계의 무력화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장관에게 주어진 당면 안보 과제다. 북한이 주체통일 목표를 고수한 채 핵무력 고도화에 매진하는 현 상태에서 종전선언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은 평화적 공생을 위해 늘 중요한 과제이지만,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근원적 대책은 확고한 안보태세이며, 대화와 협력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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