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작품 실패했던 봉준호 감독이 대세 송강호를 섭외한 비결

이서현
2020년 02월 12일 오전 11:54 업데이트: 2022년 12월 20일 오후 5:16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쾌거에 지난 10일 밤 각 방송사에서는 ‘봉준호 감독’ 특집을 마련했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일한 배우와 스태프의 입을 빌어서 본 인간 봉준호와 그의 영화.

사람들이 그에 대해 한결같이 언급하는 건 ‘봉테일’과 ‘따뜻함’이다.

‘봉테일’은 영화의 전 과정을 세심하게 챙기는 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기생충’ 속 대사가 딱 봉준호 감독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꼼꼼히 챙기며 주문이 많은 감독이 가끔 피곤할 법도 할 터.

하지만, 지시가 아니라 협업하는 자세로 다가오는 그를 사람들은 무한 신뢰했다.

MBC 스페셜 ‘감독 봉준호’

17년을 함께하며 영혼의 단짝으로 불리는 송강호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도 그의 따뜻한 성품을 잘 말해준다.

2000년, 봉준호 감독은 영화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하며 의기소침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두 번째 작품을 구상하면서 꼭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가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 배우는 당시 한창 주가가 오른 송강호였기 때문.

봉준호 감독은 무작정 송강호에게 시나리오를 보낸 후 전화를 걸었다.

그만큼 송강호라는 배우가 절박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 컷

봉준호 감독은 조심스럽게 “시나리오 보냈던 감독입니다. 혹시…읽어 보셨나요?”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 송강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출연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 대해 송강호를 이렇게 언급했다.

무명 시절, 영화 오디션을 보러 가면 끝나고 나서 결과를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떨어지면 떨어졌다고 알려라도 주면 좋으련만, 그 마지막 배려를 기대하는 건 사치였던 시절.

송강호는 한 영화 오디션에 갔다가 낙방을 예상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휴대폰에 음성 메시지 하나가 남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디션 봤던 영화의 조감독입니다.

좋은 연기 정말 감명 깊게 봤습니다.

이번에는 맞는 배역이 없어서 같이 작업을 못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꼭 좋은 기회에 다시 뵙고 싶습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 | 싸이더스

이렇게 정성 들여 연락을 남겨준 조감독은 처음이었다.

송강호는 그때 다짐했다고 한다. 이 사람이 감독이 되면 반드시 그의 영화에 출연할 것이라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이다.

‘천재’로 불리는 봉준호 감독. 그러나 오늘의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아마도 사람들을 향한 그의 ‘진심’이 아닐까 싶다.